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기술을 다루고, 대하는 무게감과 부담
<오펜하이머, 기술, 무게감, 갈등, 인공지능>
오펜하이머를 보는 내내 여러 생각과 기억이 떠올랐다.
카카오브레인이라는 꽤 앞선 인공지능 기업에서, 경영전략을 총괄한다는 건
오펜하이머의 상황과 내적갈등과 조금은 비슷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술과 IT기기를 빠르게 사용하고 선호하지만,
심리학을 전공하고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서,
인공지능기업의 의사결정권자로 재직하는 동안 여러 내적갈등을 했었다.
(그래서 내가 진행할 트레바리 북클럽이 테크나 성공같은 것이 아니라, '좋은 삶'을 사는 방식이 주제이다)
오해를 방지하자면, 나는 인공지능을 원자폭탄같은 위험한 무엇이라고 보는 입장은 아니고, 세상이 인공지능과 로봇때문에 디스토피아 영화처럼 될 거라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
다만,
(나를 직접적으로 잘 아는 분들은 익히 알텐데)
굳이 구분하자면 테크가이가 아니라 심리학도-철학자의 성향에 가까운 내가
인공지능을 다루는 기업의 부사장-경영전략실장으로서
'그래서 인공지능으로 어떻게 돈을 벌거냐'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다보니
때로는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책임감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역설적으로 '카카오브레인 경영전략실장/부사장'으로서의 직업의 윤리와 의무가 있기에
'우리회사가, 카카오가 돈을 버는 방법은 무엇이냐'에 대해 고민하고
직설적으로 전달하고 설득하고 제안할 때에는
돌려말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더 솔직하게 얘기하고자 했었다.
.
묘하게도 어제오늘에 걸쳐 '인공지능, 직업, 삶' 등에 대해 여러 강의나 코칭, 티타임을 하면서
카카오브레인 재직 시절의 얘기를 공유했었는데
오늘 오펜하이머를 보면서 더 생생하게 떠올랐다.
가령, 내가 인공지능기업의 부사장으로서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방식은 이런것이었다.
cut the crab.둘러서 회피하거나 미사여구 말고 과격하지만 솔직하게 얘기하자.
-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인공지능으로 돈을 벌려면, 어떤 직업들을 대체해야합니다.
- 그런데 기왕 대체하려면 고소득 전문직을 대체하는 것을 시도해야해요.
- AI가 CS직을 대체하면 그 급여테이블 정도의 매출을 낼 수 있는 거구요. 많은 돈을 들여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들어서, 그걸 할건가요?
- 고소득 전문직, 그 중에서도 주니어말고 시니어를 대체하면 투자비용 이상의 이익을 그나마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 우리가 뭘 만들던, 미안하지만 우리가 예상 못한 어떤 일자리들은 사라질 겁니다.
- 사업에 대해 쉽게 얘기하자면, 기술로 대체하려는 사람들의 연봉이 곧 매출 기대값과 비례합니다
- 기술이 발전하면, 역사적으로 새로운 직업도 생겨나니까 괜찮다는 식의 표현은 사실 면피하려는 기업들의 의도적 혹은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발언입니다.
- 우리의 기술과 서비스 때문에 A라는 사람이 직업을 잃는다고, 그 A라는 사람이 새로 생긴 직업에 취직되는게 아니니까요.
- 제 애플워치가 고장났다고, 동네 귀금속시계방에 가서 시계공 아저씨에게 고칠수 있는 건 아닌것 처럼요.
-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들을 진짜로 기술로 이롭게 하는게 맞는지) 의심해봐야합니다.
- 우리의 알고리듬과 추천시스템, 기가 막힌 UX, 생성 AI의 컨텐츠들을 어디다 써야할지 신중해야 합니다.
- 우리가 생각하는 이 프로덕트를 사람들이 오랫동안 쓰고, 들여야보고, 이른바 체류시간과 리텐션이 높아지면,
"그래서 사람들의 삶이 더 좋아지고, 더 행복해지는게 맞나요?"
- 우리의 기대와 정반대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지고, 핸드폰 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대신 뭘 다 해주면
사람들이 오히려 불행해지는건 아닌가요?
- 그런 '지표'들을 높여야 좋은 서비스로 평가받고 돈도 벌고 성과로 인정받을수도 있기는 한데, 진짜 수십만/수억명이 이걸 나나 내 가족이 엄청 많이 사용해도 괜찮나요?
- 굉장히 파워풀한 기술로, 어떤 걸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수도 / 즐겁게 할수도 / 직업을 잃게 할수도 / 인생이 바뀔수도 있는데
우리는 '돈을 벌면서도,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지 않고 더 좋은 삶을 살게 할 수 있을까요?'
.
오펜하이머와 원자폭탄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1년 남짓의 AI기업 경영진을 하는 시간동안
심리학도로서/두 아이의 아빠로서/개똥철학자로서/아날로그 선호자로서
자꾸 떠오르는 상상과 그에 따르는 고뇌들을 자주 했다는 사실이
귀한 시간이었으면서도 상당히 머리아픈 시간이기도 했다.
그 뒤 약 1년 사이에 어마한 AI기술과 프로덕트들의 발표,출시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이제 AI회사의 경영진이 아닌 벤처투자자이니
그런 종류의 부담감은 이제 없지만,
여전히 일말의 불안감은,
'과연 IT대기업 주식회사와 거대 모델들을 가지게 된 AI기업들이, 이 파워풀한 도구로 무엇을 하기로 결정하느냐'에서
인본주의/철학/행복/공감/윤리 등이 의사결정에 중요한 가치일수 있느냐이다.
돈을 벌어야하는 / 주식회사 들은 강력한 기술로 어떤 선택을 하는게 좋을까?
혹은 그런 고민은 망하지 않고 살아남고난 다음에나 꺼내야할 배부른 소리일까?
2023년 8월의 나는 이제 그런 책임감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벤처투자자/GP/펀드매니저로서는 어떤 기준과 생각으로 기업들에 투자하는게 좋은 것이냐?
어디까지 고민하는 것이 '펀드매니저'로서의 직업윤리 상 적정선이냐?
인간을 이롭게 하면서 돈도 벌고, 우리도 지분투자 이익률이 높은 기업을 찾는 건 가능한 것이냐?
등에 대해 매일 고민하게 된다.
인공지능의 영향으로, 공상과학 소설/영화의 디스토피아처럼 세상이 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더 불행해질 가능성'은 높다고 보기에
AI를 가진 기업들이 좋은 결정을 해주길 기대하면서
가끔씩 테크리더들을 만나 이런저런 인공지능과, 아이들의 미래와, 내 삶에 대한 개똥철학을 얘기하곤 한다.
아마도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정도까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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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5살 로이, 7살 소이가 살아갈 미래가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최소한 우리 가족은, 더 즐겁게 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