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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사우스포 Mar 26. 2020

우연한 마주침이 문득 삶을 바꿀 때

자우림과 구글 범프

인디밴드 자우림(紫雨林)이 데뷔하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홍대의 한 클럽에서 목요일 무대에 섰는데 당시 인기 밴드는 토요일 밴드였다. 토요일 무대에 섰던 밴드가 방송 일정이 잡혀서 자우림이 대신 서게 되었다. 그날 마침 「꽃을 든 남자」(1997)란 TV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던 제작팀이 왔고 자우림을 눈여겨본 뒤 영화 타이틀곡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때 쓴 곡이 「헤이헤이헤이」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지만 이는 어쩌면 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드라마 「도깨비」 나무위키 시놉시스에 보면 “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머물다간 순간이 있다.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가는 순간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신은 누군가의 인생 속에 머물기도 하지만 작가의 문장에도 머문다는 걸 「도깨비」 속 대사를 들으며 느꼈다.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이렇게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것이 광고의 전략이고 기업의 힘이다. 구글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식당을 보고 알게 되었다. 구글에선 식당의 의자와 의자 간격을 좁게 만들어서 자리에 앉으려면 옆 사람과 부딪힐 수밖에 없다. 커피를 마시거나 화장실을 가려면 긴 로비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렇게 불편하게 디자인한 까닭은 직원들이 억지로라도 마주칠 수밖에 없도록 하려는 철학의 소신 때문이다. 이 소신을 구글 범프(google bump)라고 부른다. 


구글은 자우림에게 찾아온 우연한 마주침을 의도적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로비를 오가다 보면 인사를 하게 되고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창조적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교류된다. 철학에선 사유자가 우연히 만난 대상이 사유를 촉발하고, 일상에선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꽃이 내게 예상치 못한 행복을 선물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연한 마주침이 갖는 의미를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Lucretius)가 간파하고 있다.      


어떤 물방울이 비스듬히 방향을 바꾼다. 바로 그 찰나적인 순간의 비껴남이 예기치 않은 충돌을 일으킨다. 이 충돌이 또 다른 충돌로 이어지면서 사건이 생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운명이 깨진다.     
 

그래서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사람이 변하려면 우발적 마주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사실 변화는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소한 관찰이 켜켜이 쌓여 생긴 결과물에 가깝다. 변화도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을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개입된 활동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습관을 바꾸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야 하는 것이다. 


결과가 늘 똑같다고 불평하고 있다면 그것은 삶에 ‘우연한 마주침’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사회생활이란 단어에는 조직의 규칙이나 역사, 내면에 대한 탐구, 타인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지만 이런 것들이 제대로 활성화되려면 뜻밖의 만남, 예기치 못한 사건이란 촉매가 필요하다. 어설프게 철든 어른으로 살지 않으려면 우리는 나와 다른 관점과 생각에 노출되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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