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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사우스포 Apr 16. 2020

‘22세 현인’ 조명섭 트로트 열풍의 의미

‘신라의 달밤’에서 위로받았던 소년이 커서 사회를 위로하다 

요즘 코로나 19로 우리 사회가 힘들지만 덕분에 한국에 대한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드라이브 스루’와 정확성이 뛰어난 진단 키트를 활용해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헌신적이고 순발력 있는 인재들 덕분이다. 케이팝에선 BTS가, 영화에선 기생충이, 성악에선 조수미가 놀랍지만, 인재는 다른 여러 곳에서도 넘쳐난다. 요즘 트로트를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고 있는데 조명섭이란 청년이 특히 그렇다.   

   


한 청년이 트로트(Trot)라는 음악 장르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있다. 예전엔 나이 든 어른들만을 위한 장르에 불과했지만 이젠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장르의 노래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가수 현인도 일제 강점기에 성악을 공부했고 탱고, 맘보, 샹송, 칸초네 같은 서구 리듬을 도입해 삶의 고단함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했는데, 이것이 청년 조명섭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이 변하니까 문화도 변하고 문학도 변해가는 걸 느끼는데, 이것을 요즘은 트로트를 통해서도 실감한다. 송가인 열풍으로 시작된 트로트의 열기가 뜨겁다. TV 프로 「미스터 트롯」의 출연자들은 그 실력이 놀랍다. 요즘은 나이가 있는 어른들도 유튜버가 되려고 하고 있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곤 한다. 가족을 위해서 살았던 만큼 이젠 자신을 위해서도 살아야 한다는 걸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대개 평균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 사소한 일에 발끈 화를 내고 답답하고 힘든 현실에 갇힌 듯해 짜증도 낸다. 그럴 때 노래방을 찾거나 술을 마시며 일탈을 꿈꾼다. 살짝 흥분되고 살짝 설레고 때론 후련함을 꿈꾸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못해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있는 분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고 있을까? 답은 여럿일 테지만 그중 하나는 분명 트로트이다.      


그 때문일까. 요즘 트로트에 빠져 지내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웃을 일이 없는 요즘 가수 조명섭 때문에 웃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의 청년이 높이 빗어 올린 올백 머리, 정갈한 양복과 넥타이, 예스러운 말투를 구사한다. 그는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고 아픈 곳을 치유하는 의사 같은 가수가 되겠다고 했었는데, 지금 그의 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팬들은 고급스러운 목소리에 때 묻지 않은 인성에 흠뻑 빠져 있다.      


유튜브를 찾아 그의 노래를 들어보니 더욱 놀랍다. 현인이 부른 「신라의 달밤」을 들으며 트로트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처음 느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선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을 보는 듯하고, 또 1950년대를 살던 가수가 백 투 더 퓨처 속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 시대로 온 듯하다. 숭늉과 쌍화차를 마시고 아재 개그를 하지만 그가 내뱉는 인생론이 예사롭지 않아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가 된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청년이 할머니 할아버지뻘 되는 어른들뿐 아니라 중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인간의 뇌는 단순하지 않다. 우리의 뇌는 납득이 되고 공감이 될 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들이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분명 공감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놀랍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힘을 22세 청년은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뛰어난 작가들에게서 보듯이 신은 재능을 거저 주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가수 조명섭의 삶도 예외가 아닌 것이 그는 7세부터 9세까지 장애가 있어서 2년을 꼬박 방에 누워서 지냈다고 한다. 가정 형편도 어려워서 어린 그는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12살 때 우연히 뉴스에서 「신라의 달밤」을 들었는데, 그 멜로디와 가사가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12살 시절 우연히 듣게 된 노래에 감동을 받았던 소년이 현인의 대표곡―「신라의 달밤」, 「고향 만리」, 「굳세어라 금순아」, 「꿈속의 사랑」, 「럭키 서울」 등―을 부르기 시작하자 그 작은 날갯짓이 한국사회라는 큰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 똑같은 노래도 누가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미치는 힘을 문외한인 나도 느끼면서 기상학자 로렌츠가 말한 ‘나비효과’가 정녕 틀린 말이 아니란 걸 실감한다.      


요즘 한국은 코로나로 힘겨움도 지나쳐 때론 짜증도 나지만 그래도 지친 시민들에게 흥겹고 경쾌한 목소리로 위로를 주는 좋은 가수들이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 조명섭을 찾는 대중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먹구름 같은 삶을 사는 누군가에게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오는 빛줄기나 무지개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참 멋진 일이라는 것을 조명섭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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