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사우스포 Apr 22. 2020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아버지란 누구인가?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난 내 인생의 모든 날 동안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일흔이 넘어서도 다 장성한 자식들과 말을 섞지 못해 눈물짓는 분들을 본 적이 있다. 한때는 교장 선생님으로, 대기업 임원으로, 또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는데,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가족이 없다. 빈손으로 시작해서 가족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일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회한만 남는다. 아내는 먼 그대가 되었고 자식들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었다.     


행복한 가족은 미리 누리는 천국이라지만 우리는 이런 천국을 얼마나 누리고 살고 있을까? 조급한 마음에 가족이란 무엇일까 묻게 된다. 낯선 세상으로부터 밀려날 때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존재는 가족이지만 그걸 일찍 깨닫는 이는 많지 않다.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17살에 부모가 된 나이 어린 부모와 조로증을 앓는 16살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 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김애란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부모가 됨으로써 한 번 더 자식이 되는 것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또 부모가 되면 아기를 통해 감각이란 걸 다시 경험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처음엔 자신의 눈으로, 그다음엔 아기의 눈으로 본다. 딸랑이 소리 하나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와 그걸 보고 웃는 부모의 웃음 속에는 사람에 대한 경이와 겸손이 배어 있다. 부모는 미숙한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경험하면서 성숙해지는 걸까?     

 

그런데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집 근처 요양병원 앞을 지날 때면 출입문이나 2층 창가에 앉아 계신 분들을 본다. 때론 하루종일 계시기도 한다. 차가 들어설 때마다 그분들은  퀭한 눈으로 주차하는 차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내심 자식이길 바랬으리라.  세상의 모래알 같은 수많은 인연 중에 우리는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지만 그 특별한 인연의 끈이 먹고사는데 바빠 뚝뚝 끊어지곤 한다. 


부모와 자식의 애정 기는 예상외로 빨리 끝난다. 그 후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난감하기 일쑤다. 가장인 아버지는 일이 먼저 일 때가 많고 또 자녀는 빨리 어른이 된다. 열심히 일할수록, 자녀의 세상이 넓어질수록, 아버지의 자리가 좁아지는 게 현실이다. 어머니의 자리는 더 좁아진다. 이것을 문학과 영화가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래서 가족이란 무엇일까? 스스로 묻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E.T.」(1982)가 있다. 홀로 지구에 남게 된 외계인 E.T. 와 엘리엇이란 소년의 우정을 그린 영화이다. E.T.를 태운 자전거가 달을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장면과 엘리엇과 E.T.가 서로 손가락을 맞대는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런데 감독은 외계인과의 만남이란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장면 둘을 끼워 넣었다.      


작별의 순간


핼러윈 파티 때 외계인 E.T. 에게 입힐 옷을 찾느라고 삼 남매가 차고로 가서 옷 박스를 뒤진다. 그러다  주인공 엘리엇이 한 박스에서 아빠 옷을 꺼내 아빠의 체취를 맡았다. 또 한 번은 형과 입씨름할 때 엘리엇은 아빠라면 자기 말을 믿어주었을 것이라고 서운해한다. 형 마이클은  바람이 나 자신들을 버리고 멕시코로 도망친 아빠를 그리워하는 동생을 타박하는데,  E.T. 는 외로운 엘리엇의 친구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보여준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문학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버지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의 부재와 부권 상실은 문학이란 활자를 통해 형상화된다. 소설가 김원일은 ‘아버지의 부재’란 모티프에 남다른 애착을 보인다. 『아들의 아버지』는 여덟 살 이후 만나지 못한 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해 가며 쓴 김원일의 자전적 소설이다. 아버지의 부재란 모티프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전통적으로 자녀교육의 주체는 아버지였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세상이 열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계획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었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사물을 우리의 모습대로 본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먼저 산 멘토로서의 아버지의 역할은 중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이탈리아 하면 떠오르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