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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사우스포 May 25. 2020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생각의 자극이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과정 

우연히 마주친 한 구절 한 문장이 나의 감수성을 예민하게 만든다는 걸 느낀다. 삶의 속도가 빨라지다 보니 말의 길이도 짧아졌고 시선이 머무는 시간도 짧아지고 있다. 영상이든 글이든 재미가 없으면 즉시 다음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0.2초라는 찰나 같은 순간에도 시선을 붙잡는 생각이 있고 문장이 있다. 언제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문장이 생각난다.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생각의 자극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도 이것을 포착하는 예민한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감수성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후천적으로도 얻어진다. 나는 후자에 해당한다.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감수성을 키워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내 시선을 끄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뭐든 잠깐이라도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걸 만화 『송곳 3』 속 한 문장을 읽으면서 배웠다.     

 

평상시 합리적인 지휘관만이 위기 시에 불합리한 작전을 관철시킬 수 있습니다.      



최규원 작가는 리더십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이 문장을 읽는 5초 남짓한 순간 나는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12척으로 300척이 넘는 일본 해군을 격파했는지, 맥아더 장군이 성공확률이 5000분의 1이라던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머릿속에서 번득였다. 우연한 마주침은 내가 모아놓기만 했던 막연한 정보들을 ‘관점’으로 변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경험을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Jim Collins)도 했다. 지인과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적이다”(Good is the enemy of Great)란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0.2초라는 찰나 같은 순간에 신은 콜린스에게 영감을 주었다. 같은 시기, 같은 조건, 같은 업종으로 출발했는데 왜 어떤 기업은 위대한 기업이 되고 다른 기업은 그렇지 못했을까, 라는 궁금증이었다. 그 결과물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이다. 


경험으로 볼 때 독서가 우연한 마주침을 의도하지는 않지만 그 만남의 확률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뭘 하고 있거나 어떤 생각이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았다면 거기엔 나와 연결되는 뭔가가 있다. 그 순간을 놓쳐선 안 된다. 생각의 자극은 0.2초라는 아주 짧은 순간 일어나지만 이 찰나 같은 순간이라도 신이 머물기만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상의 논리를 뚫고 나가는 자유로운 발상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순신, 맥아더, 콜린스에게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지만 이것을 찾는 방식은 작가마다 다르다. 꿈을 이루기 위한 조건들이 있다. 졸업장이 필요하고 영어 공인점수와 인턴 경험도 필요하다. 하지만 인생의 신호들이 동시에 파란불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스티븐 킹(Stephen King)조차 영감이 오는 순간을 기다리지 않았다. 글이 써지든 안 써지든 스스로 정한 분량을 채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뮤즈의 신이 찾아왔다. 


0.2초라는 찰나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영감은 막연한 기다림 같지만 그렇지 않다. 구글 범프가 보여주듯 작가 킹도 우연한 마주침을 위해 하루를 3 등분한다. 오전은 무조건 글쓰기, 오후는 낮잠과 편지, 저녁은 독서, 가족, TV 시청이나 급한 원고 교정하기. 그리고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매일 쓴다. 초고는 무조건 3개월 이내에 완성하고 하루에 쓰는 분량도 정해져 있다. 2천 단어를 쓴다. 한 달이면 1만 8천 단어, 책 한 권 분량이 된다. 


스티븐 킹은 플롯을 짜지 않는다. 우리 인생에 각본이 없듯이 인생에도 각본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도가 빠르지 않음에도 이야기의 흡입력이 엄청난 것은 이것이 진짜 인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매일 글을 쓰면서도 일 년에 70-80권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소설엔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다 이런 방식으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르한 파묵(Orhan Pamuk)도 소설 『새로운 인생』을 “어느 날 나는 책 한 권을 읽었고 내 인생 전체가 바뀌었다”라고 쓴 것을 보면, 노벨 문학상을 탄 작가에게도 분명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0.2초는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이 찰나 같은 순간의 판단으로 독자는 책을 계속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고 스티븐 킹은 새로운 작품의 아이디어를 그려낸다. 


문학과 함께 하는 삶은 논픽션이 보여주는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다. 늘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똑같은 일상은 단 하루도 없다.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보는 감각을 가져야 한다.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는 그저 장난스러운 말 같지만 이런 사고를 이해할 수 있어야 다른 경쟁자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다.


구글이 성공한 이유는 아무도 정의해놓지 않은 불확실한 길을 간 것이고, 그 길에서 부딪힌 문제들과 기꺼이 씨름한 것이다. 이 둘을 해낼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판단력이고 초심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처음엔 “사악해지지 말자”를 판단의 기준으로 정했고 후에는 그것을 “옳은 일을 하라”로 바꾸었다. 구글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사업이 예술을 닮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구글은 인공지능을 통해 소비자가 속한 삶의 컨텍스트를 읽어 보이지 않는 소비자의 욕망을 보이게 만들려고 한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성공의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큰 시대가 되었다. 삶이든 사업이든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려면 0.2초라는 순간 속에 머물다가는 신의 발자취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이런 안목은 시적 통찰을 통해서 얻어진다. 


애플은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했다.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시키는 낯선 사고를 한 덕분에 그들은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었다. SF 소설은 그나마 낫지만 『오디세이』나 단테의 『신곡』을 읽는 일이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문학을 읽으면 돌을 뒤집듯 익숙한 것을 뒤집어서 생각의 시야를 확대하여 이면을 보고 느끼지 못하던 것을 느껴보게 된다. 


「도깨비」에서 김신(배우 공유)은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변덕스런 날씨였더라도 신이 머물다만 갔다면  그 날의 날씨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의 영감으로 쓰여진 좋은 글은 살아가는 데 언제나 도움이 된다. 특히 문학은 상상력을 자극하여 인생의 흐릿함에 윤곽을 그려준다.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를 느낄 수 있으면 콜린 파월(Colin Powell)이 “전 군인이 되려고 입대했지 장군이 되려고 입대한 게 아니었습니다”라고 한 말의 의미를 알게 되고, “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관입니다”라고 한 말도 알게 된다. 겉보기에는 달라 보여도 세 문장은 모두 익숙한 생각을 뒤집어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연습을 시킨다. 문학은 삶을 호쾌하게 뒤집는 반전의 미학이다. 


내가 느낀 문학의 최대 매력 중 하나는 통념을 뒤집는 철저한 불합리성이었다. 작가는 우리 시선을 붙잡을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소설 한 편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작가에게든 독자에게든 변화는 다르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바다가 아름다운 건 그것이 끝없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단풍이 물드는 건 엽록소가 빠져서 생긴 죽음의 징후이지만 나뭇잎은 이때 가장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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