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도 가짜 뉴스가 나온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쓴 수법
코로나가 올 한 해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신천지는 이단이라 쳐도 극우뿐 아니라 일부 교회가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을 하고 있다. 광화문 집회를 고집하는 이들은 가짜 뉴스를 퍼 나르는데도 열심이다. 이 어려운 시국에 왜 그렇게 행동을 할까 싶지만 이런 모습은 지금만 이슈가 된 것이 아니다. 성경에도 가짜 뉴스가 나온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여자에게 묻는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게 정말이냐?”
여자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이슈에 대해 뱀이 뜬금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자 여자가 대답한다.
“동산 안에 있는 나무들의 열매는 먹어도 되지만 하나님은 선악과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라. 그러면 너희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
근데 뱀이 그 말을 무시한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아.”
바로 이 장면이 인간의 타락, 죄의 시작을 설명하는 유명한 대목이지만 이 장면은 동시에 가짜 뉴스가 어떻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뱀이 하와에게 쓴 대화의 방식이 사실은 가짜 뉴스가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2017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트럼프가 바로 이 방법을 사용해서 큰 효과를 보았다. 그가 사용한 전략은 간단하다.
첫 번째, 뜬금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두 번째, 자기가 말한 내용에 대해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세 번째, 상대가 자신의 말에 반론을 제기해도 무시해버린다.
지금 트럼프 보면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그리고 사방팔방에서 일어나는 이슈에 대해서 트윗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자기가 제기한 의문에 대해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해도 무시해버린다. 이것이 뱀이 하와에게 사용한 수법이기도 하고 많은 선거전략가들이 선거에서 쓰는 수법이기도 하다.
누가 터무니없는 이런 방식에 속아 넘어갈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이상하게도 트럼프나 선거전략가가 쓰는 수법에 걸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우파들 뿐 아니라 일부 한국 교회가 어리석게도 이 수법에 걸려들었다. 이 수법은 영화 <터미네이터>에도 등장한다. 2009년에 출시된 터미네이터 시리즈 네 번째 영화--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에서 인공지능 스카이넷 Skynet이 뱀이 여자에게 쓴 방식을 인간에게도 쓰고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 4의 스카이넷이 쓴 수법
스카이넷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여자 이미지로 노출시킨다. 인공지능은 인간 저항군 리더를 붙잡기 위해 사이보그를 인간으로 위장시켜 침투시킨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너무 철저하게 적용한 탓에 사이보그는 자신을 진짜 인간으로 여겨서 인간 리더를 돕게 된다. 스카이넷은 사이보그와 마주치자 자신이 왜 그를 인간으로 위장시켜 침투시켰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절망에 빠지면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싶어 해.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었어.
스카이넷이 하는 말 중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란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이 있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신념이 있다. 유혹은 언제나 내가 믿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진 사람을 타깃으로 삼은 뒤 이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 예전에 독일의 히틀러가 이 방법을 썼다.
독일은 1차 대전을 일으켰지만 패전국이 되었다. 전후 어마어마한 전쟁 배상금을 내야 했다. 돈을 벌면 그것이 나라를 위해 쓰이는 게 아니라 배상금으로 나갔기 때문에 독일 국민들의 생활은 날로 피폐해졌다. 하루 이틀도 아니었기에 국민들은 고단한 삶에 지쳤다. 이런 지친 국민의 낮아진 자존감을 히틀러가 세워주었다. 게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경제도 수직 상승시켰다.
자존감을 세워주고 무너진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리더에게 No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자기를 잘 살게 만들어주었는데 그런 리더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어렵다. 바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 믿고 싶은 것을 주는 사람에게 No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유혹은 항상 이런 전략을 사용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리더들은 언제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족시켜주려고 노력한다. 인공지능은 바로 그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인지 편향
TV 뉴스를 보면 알듯이 요즘 한국에서는 보통 50대부터 시작을 해서 60대 이후의 세대에서 문제가 많이 일어난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바로 상식만 가지고 있어도 분별할 수 있는 그런 뻔한 거짓말에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가짜 뉴스를 본다.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인들과 공유하고 타인들에게 전파한다. 이런 행동을 심리학에선 인간의 인지 편향이라고 설명한다.
인지 편향에는 여러 이론들이 있는데 그중 두 가지가 있다. 동조 이론과 확증 이론이다.
첫째, 동조 이론에서 보면 인간은 자신의 생각이 주변 사람들과 다르면 불안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청소년기에 생각이 틀려도 유행하는 패션을 따라 옷을 선택하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을 함께 좋아하고, 친구들이 가는 맛집을 가보는 것이다. 지하철에서도 줄이 엉망이다가도 두세 사람이 줄을 서면 다들 따라서 줄을 서게 된다. 이렇게 해야 할 얘기도 많고 편하다. 이것이 동조 이론이다.
둘째, 확증 이론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과 일치하는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나머지는 객관적인 진실이 드러나도 무시해버린다. 요즘 유튜브 동영상에 보면 UFO, 달착륙, 세월호 같은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확증 이론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음모론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위험지수가 90퍼센트 이상이라고 판단을 하면 된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속지 않으려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여러분은 타인으로부터도 속지 않아야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속지 않아야 한다. 가짜 뉴스에 속지 않으려면 우리는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자기 점검을 소홀히 하면 우리는 남으로부터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속게 된다. 축구선수가 경기가 끝난 뒤 게임을 리플레이하면서 분석하고 바둑 기사도 복기를 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승자는 보았지만 패자는 놓친 그 한 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이해라는 틀 안에서만 보고 생각한다. 승자는 그 범위를 너머를 보았지만 패자는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자기 점검을 놓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TV 뉴스나 주변에서 여러 번 보았듯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틀렸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그걸 문학에선 한 겹 인생이라고 말한다. 문학은 두 번째 삶이라고 부른다. 나의 인생은 아니지만 우리는 서사로 묘사된 타인의 인생을 보면서 내가 가진 한 겹을 두 겹, 두 겹을 열 겹, 열 겹을 백 겹 천 겹으로 만들어서 내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기--자기 점검--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가짜 뉴스에 속아 넘어간다. 우리는 현재라는 참으로 고민이 많은 시기를 살고 있기에 생각하는 힘, 고민하는 힘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이 힘이 없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내가 맞추게 된다. 그러면 여러분은 타인의 삶을 살게 된다. 나의 삶을 살려면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가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고민하는 힘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한다. 그것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을까? 내 생각도 처음엔 다른 누구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 생각을 자꾸 듣다 보니까 어느 순간 그 생각이 내 생각이 된 것이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는 그 생각을 한 사람을 따라가게 된다. 이게 세뇌되는 방식인데, 바로 가짜 뉴스를 확산시키는 사람들이 이 방식을 부정적으로 사용한다.
신 역시 아담과 하와에게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천국을 그들의 마음속에 조금 넣어 놓았다. 그 천국이 바로 자유의지이고, 왜라는 질문이다. 자유의지는 신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달라도 이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다. 일부 교회가 흔들리는 것은 바로 고민하는 힘을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힘을 넓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판적인 독서이다.
읽되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어떤 것은 의문을 제기한다. 특별히 한국사회를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가 길을 잃지 않으려면 때로는 남에게 속지 않고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자기 자신에게 조차 속지 않으려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지를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느낀다. 요즘 부쩍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것은 그만큼 깊은 독서를 하는 이가 줄어든 탓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