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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승 Aug 07. 2022

하이먼 민스키의 자본조달 유형 - 스타트업에 적용해보기

얼마 전 ‘광기, 패닉, 붕괴: 금융 위기의 역사'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다. 2006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된 책입니다만, 최근 코인 광풍 사태나 소위 말하는 ‘스타트업의 겨울'과 같은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었기에 간단하게 기록해보았습니다.


금융위기의 패턴


인터넷에서만 들어본 네덜란드의 튤립 거품부터, 일본의 부동산 버블, ‘00년대의 닷컴 버블 등 자산 가격의 거품 형성과 붕괴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 위기는 일정한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든 역사적 현상은 개별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적어도 책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패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스키에 따르면, 경기 확장 국면에선 투자자들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태도가 증폭되고, 투자에 대한 수익성을 상향 조정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위험 평가와 위험 회피 성향도 줄어들어 자연히 돈을 빌려주려는 의욕이 증가하고, 신용이 팽창됩니다. 책에서 ‘변위요인'이라고 말하는 외부 충격은 이러한 신용 팽창을 가속화 하고, 경제에 대한 낙관적 관점을 부여합니다. (ex- 일등 국가 일본, 동아시아의 기적 등) 그러다 갑자기 자산 가격의 상승이 멈추는 현상이 발생하고, 이에 따른 불안 국면이 이어지면서 버블이 붕괴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자본 조달의 3가지 유형


다음으로 흥미로운 주제는 민스키가 설명하는 자본 조달의 3가지 유형입니다. 민스키는 영업이익과 채무 원리금 상환 관계를 기준으로 헤지/투기/폰지 금융 이라는 3가지 유형을 구분합니다.   

헤지금융: 예상 영업이익이 이자와 채무 원금의 분할 상환액을 지불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만으로 유지가 가능한 지속 기업)

투기금융: 예상 영업이익이 이자를 지불할 수 있을 만큼은 충분하지만 만기시점까지 잔여 채무 원리금의 일부 혹은 전부를 상환하려면 신규 차입이 필요한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이 나긴 하지만, 투자와 대출이 필요한 스타트업)

폰지금융: 예상 영업이익이 약정된 지급 일정에 따른 이자를 지불하기에도 부족한 경우, 이자 상환을 위해 추가 차입 또는 보유 자산 매각이 필요한 경우 (매출과 영업이익이 없이 투자금 혹은 대출만으로 유지되는 스타트업)


2022년 스타트업 현실에 대입해보기


책을 읽으면서 제가 지난 4년간 버즈비터즈를 운영하면서 경험한 스타트업의 현실에 위 이론을 대입하면서 비교-분석해보니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책의 이론과 요즘의 현실을 나름대로 분석해본 것인데, 제 생각이다 보니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서, 국내에도 확장되기 시작한 스타트업 투자는, 시드에서 IPO까지 가는 일련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일부 기업들을 탄생시켰고,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와 수익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유동성이 풍부해진 상황을 책에서 설명한 ‘변위요인'에 대입해 보았습니다. 지난 2년간 자금이 대폭 풀리면서 이자도 싸지고,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도 매우 빠르게 상승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개선되면서, 더 이상 유동성은 공급되지 않고, 자산가치도 증가하지 않으며, 많은 스타트업들의 투자가 어려워지는 ‘겨울'의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많은 초기 기업은 대부분 ‘폰지금융’ 상태입니다. 영업이익은 커녕 매출이나 고객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도 많고, 많은 트래픽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수익 모델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경기 확장 국면에서는 이러한 폰지금융 상태의 스타트업도 낙관적 전망 덕분에 ‘스토리와 미래에 대한 기대만으로’ 많은 투자유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산가치의 상승이 멈추고, 불안 국면이 이어지면서 폰지금융의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익성이 낙관적이었던 시기에 투자를 유치했던 방식과 논리(스토리, 매출과 관계없는 지표, 미래에 대한 희망적 전망)로는 더 이상 투자 유치가 어려워진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적어도 투기 금융 혹은 헤지 금융 수준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매출과 영업이익)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상, 폰지금융 상태로는 더 이상 기업의 존속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몇 가지 생각들


어떤 사람들은 기업이 수익을 내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더 큰 가치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수익보다는 다른 것(트래픽이나 고객 가치 창출)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볼 땐, 특정 사상이 더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시장의 상황에 따라, 특정 방향성이 더 인정받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경영자의 철학과 비즈니스의 특수성에 따라, 시장의 상황과 관계없이 폰지금융 상태로도 지속적인 가치 실현과 이를 통해 기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분명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시장의 상황에 따라, 회사를 지속하기 위해 투기-헤지 금융 수준으로 기업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기사를 보면, 이러한 상황을 일찍부터 예견하고 폰지에서 헤지 금융으로 빠르게 탈바꿈에 성공한 기업들의 뉴스도 보이고, 고객에게 훌륭한 가치를 전달해줌에도 불구하고 폰지 금융 상태를 빠져나오지 못해 채무불이행에 빠진 기업들의 소식도 들립니다. 제가 고작 이런 책 한 권 읽었다고 세상 만사에 다 통달할 순 없겠지만, 경영자로서 이런 저런 상황에 항상 대비하고 신중하게 방향성을 설정해야한다는 점을 새삼 배우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06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되었기에 오늘 날의 스타트업 현상 같은 걸 미리 예견하진 못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그 이후로 금융이 엄청나게 고도화되고 몇 차례의 경제 위기와 그것을 극복한 현대 사회를 살고 있지만, 큰 틀에선 책에서 설명하는 패턴을 여번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 유지되는 한, 이러한 양상은 지속적이고 주기적으로 발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 다소 길고 어려워서 읽는 데 고생하긴 했지만 경제에 관심이 많거나, 경영을 하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시간을 내서 읽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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