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플레이스>의 괴물
우리의 감각기관 중 귀에만 덮개가 없다. 눈에는 눈꺼풀이 있고, 입은 열고 닫을 수 있게 되어있다. 코에는 콧구멍을 막을 덮개 같은 건 없지만 스스로 기도를 차단시켜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귀에는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소리를 자체적으로 차단시킬 장치가 마련되어있지 않다. 우리는 감각기관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소리와 관련된 세계와 관계할 때 덮개가 없는 귀를 가진 우리는 완전한 수동성에 내몰린다. 물론 손가락을 이용해 귀를 막을 수는 있지만, 결코 만족스럽지 않다. 눈이나 코, 입처럼 완전히 세계를 차단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즉 어느 정도로만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꽉 틀어막아도 소리는 들리기 마련이니까.
모든 감각이 마찬가지지만 우리의 감각은 우리의 정서, 기분과 직결되어있다. 오늘 왠지 모르게 기분이 우중충하다면, 분명 오늘 어떤 불쾌한 감각을 경험했을 것이다. 출근길에 구역질나는 쓰레기 냄새를 맡았다거나, 오늘 점심에 나온 음식이 맛없었다거나. 귀 또한 그렇다. 아니, 어쩌면 다른 어떤 자극보다 더 민감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위층에 사는 이웃이 못생겼다고 이사를 결심하진 않지만, 자려고 누웠는데 위에서 부부 싸움 하는 소리가 들릴 때 우린 이사를 결심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다른 감각보다 귀에 더 신경을 써야하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다니고, 너무나 달콤한 향과 맛이 나는 음식을 찾아다니듯이, 좋은 소리를 찾으러 다녀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지나치게 시각과 미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보인다. 화려한 외모를 가진 연예인들이 항상 주목을 받고,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인기니까. 과거 명창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나, 밤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잠들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정말 우리 시대는 너무 청각에 소홀한 것 같다. 눈은 그렇게 호강시킬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혀에는 다채로운 맛을 선사하지만, 귀에 밥을 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귀에는 어떤 밥이 필요할까. <콰이어트 플레이스>에 나오는 괴물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괴물은 무슨 소리가 들리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차별적 공격을 가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모든 소리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바람소리, 물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듣고는 흥분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음성과 기계음에만 파괴적 본성이 작동한다. 왜일까. 이 괴물은 인간을 죽여 자신의 영양분으로 삼는 것 같진 않다. 물론 플라스틱이나 철로 된 기계를 먹는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저 그런 소리를 혐오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이것은 인간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기계음과 음성에 노출되어있다. 자연의 소리를 다 덮어버리려는 듯한 공사장 소음과 자동차 경적 소리, 그리고 무엇이 그리 잘났는지, 이 넓은 대지에서 주인인 양 떠드는 인간들의 소리. 우리는 이런 것들로 인해 우리 자신도 모르게 피폐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조용해 보이는 집 안에서도 냉장고는 24시간 돌아가며 육중한 기계음을 내뿜고 있는데 그 외의 공간에서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언제부터였을까. 자연의 소리를 잃어버린 것이.
귀에 밥을 준다는 건 적극적으로 기계음이나 사람들의 음성으로부터 떨어져 물소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 속 괴물로 변해 적극적으로 그런 소리들을 제거해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혐오스런 소리들이 다 벗겨진 날 것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영화 속 괴물처럼 우리도 튼튼하고 건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우리는 괴물로 변신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 앞장서서 불쾌한 소리들을 차단하고 귀에 영양분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