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로 스톡홀름에 삽니다를 시작하며
박사 과정의 '나머지 절반'을 지나오면서 느낄 생각을 기록하고 공유하고자 새로운 매거진을 만들었다. 내 전문 분야의 지식이나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는 논의, 혹은 새로운 발견은 따로 매거진을 만들어서 담을 생각이고, 이 매거진에는 신변잡기 혹은 신세한탄에 가까운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짧지 않은 해외 살이 경험이 묻어 나오고, 해외 생활을 하지 않는/않았던 독자에게도 울림이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그럴듯한 이름 짓는 것은 이 매거진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으면 좋겠다는 내 목표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호들갑'을 조금 떨어서라도 눈에 들어오는 제목을 지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신념과 거의 정반대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일이 잘 될 리가 없다. 처음에는 파격적으로 '시한부 스톡홀름살이'와 같은 제목이면 어떨까 고민했는데, 시한부라는 이름은 실제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분들에게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생각은 재빠르게 접었다. 나의 처지와 관계있는 여러 단어들, 이를테면 외국인 노동자라든지, 박사 과정 학생이라든지, 인구학자라든지, 해외에 사는 싱글 남성이라든지 이런 표현들을 적당히 잘 녹이는 방향도 고민해 봤지만, 그 무엇도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이미 다른 작가님들이 브런치 이름이나 매거진 제목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서 신선하지 않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인구학자로서의 정체성은 앞서 말한 좀 더 전문적인 글을 담는 매거진에서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기에 아껴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 고민은 잠시 미뤄두고, 매거진의 영문 주소를 'life in stockholm'으로 할지, 'live in stockholm'으로 할지 고민하다가 후자로 정하면서 매거진 제목도 가닥을 잡았다. '스톡홀름에서의 삶'은 내가 주로 다루고자 하는 모습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공부&일을 제외한 내 삶은 퍽 단조롭고, 매거진을 새로 열 만큼 흥미로운 소재도 아니다. 나는 내가 스톡홀름에서 살아가면서 느낀 점, 특히 이곳에서 머무를 시간이 1년 혹은 2년 안에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지한 채로 살아가면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적을 공간이 더욱 필요했다. 스톡홀름에서의 삶이라는 단어는 가끔 소름 끼치게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임시 (temporary) 거주 허가증에 기대어 스톡홀름에 살아가는 나의 일상은 온몸으로 느끼는 현실이다. 그래서 매거진 주소는 live in stockholm으로 정했고, 여기에 담기는 글은 내 스톡홀름살이의 불확실함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자 '임시로 스톡홀름에 삽니다' 시리즈가 될 것이다.
내가 왜 지난 3년 동안 스톡홀름에서 조용히 잘 살다가 이제 곧 스톡홀름을, 그리고 아마도 스웨덴을 떠날 것처럼 이야기하는지, 왜 그런 결정을 내려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동안 이곳에서 박사과정 학생이지 연구원으로 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꾸준히 풀어나갈 생각이다. 학기 중에는 일주일에 한 편 정도의 글을 쓰는 것도 무리라고 느껴질 때가 있지만, 운동은 시간 날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해야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말처럼, 창작의 욕구도 에너지가 남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을 습관으로 만들어야 창작욕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에 이 매거진과 인구학 이야기를 좀 더 담은 매거진 두 개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커버 이미지: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사무실에서 도보 10분 거리라는 장점 이외에도 봄가을에는 예쁜 노을을, 운 좋은 겨울날에는 근처 해변가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을 지닌 곳이다. 집주인이 이런 점을 고려해서 렌트를 올려 받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