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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성 Mar 05. 2024

4년 만에 떡국 끓이기

임시로 스톡홀름에 삽니다 4

"이번 주말이 음력설이라고 하던데, 특별한 계획이 있어?"


"음, 아니. 같이 음력설을 지내는 중국 사람들이 올해에는 스톡홀름에 없어서"


아침에 페퍼민트 차를 만들면서 학과 동료와 음력설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별생각 없이 주고받은 대화였지만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자란 이 사람이 어떻게 주말이 음력 설인 것을 알았으며, 한국 사람들이 음력설을 지낸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고, 또 음력설을 Chinese New Year가 아니라 Lunar New Year라고 불러주는 센스는 또 어디에서 나왔을까 와 같은 생각들. 


스웨덴에서 살면서 명절 챙기기는 점점 나와 거리가 먼 일이 되었다. 명절에 한국에 있었던 적은 2018년 이후 한 번도 없었고, 학생 네트워크가 끈끈했던 룬드 시절과는 달리 스톡홀름에서는 한국 사람들과 모여서 명절을 챙기는 일이 흔치 않았다. 대신 2020년 이후 지금까지는 주로 추석과 설을 학과의 중국인/중국계 동료들과 챙기곤 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그 친구들이 중국으로 돌아가거나, 스웨덴을 떠나서 그냥 가족하고 전화 한 통화하고 조용히 설을 넘기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아침의 짧은 대화를 통해 내가 설에 아무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학과 동료는 나와 내 오피스메이트를 설날 저녁에 초대했다. 의외였다. 일본 사람인 파트너가 비록 일본에서 설날을 챙기지 않지만, 직접 교자 만두를 만들 것이라고 했고, 삼삼오오 모여서 음식을 만들던 시절의 추억을 되찾고 싶어서일까, 나는 갑자기 계획에 없던 떡국 만들기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4년 만에 다시 떡국을 끓이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여러 블로그에서 레시피를 찾아보고, 붉은 고기를 먹지 않는 친구를 위해 닭고기로 떡국을 끓여도 괜찮을지 고민해 보고, 떡국용 떡과 국간장은 어디서 구할지 알아보고. 그렇게 평화롭던 토요일 오전이 갑자기 바빠졌다. 역시 국간장이나 떡국용 떡 같은 재료는 다른 한국 식재료보다 구하기 쉽지 않았다. 두세 군데 아시안 마켓을 다닌 다음에 혹시 떡국을 못 끓이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만, 다행히도 마지막으로 스톡홀름에 있는 한인마트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나는 필요한 재료를 모두 구할 수 있었다. 한인마트를 찾은 덕에,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한국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도 전할 수 있었다. 

아마 스톡홀름에서 이보다 맛있는 교자 만두를 먹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끓여보는 떡국이고, 닭고기를 넣는 버전의 레시피는 처음이었지만,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학과 동료의 일본인 남편이 만든 교자 만두도 (역시 돼지고기가 아니라 닭고기를 넣고 만든) 식감이 훌륭했다. 한국, 일본, 루마니아, 자메이카 사람이 모였으니 설날을 챙기는 문화권에서 온 사람은 사실 나 혼자였지만 함께 만든 음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명절 분위기가 넘쳤다. 남은 떡국을 가져오려고 준비한 통이 무색하게, 우리는 지름 30cm 웍 하나에 가득 찬 떡국을 비웠다. 

비주얼이 썩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냄새를 맡으며 난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마늘 냄새가 진하면 실패할 수 없는 한식

스톡홀름에 와서 잃어버린 나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는 요리를 하고, 남들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이었다. 오히려 내가 사는 집의 부엌은 점점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요리를 게을리했고, 남을 식사에 초대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설날 저녁의 즐거운 한 때 덕분에 내가 잃어버렸던 즐거움이 생각보다 큰 것이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스웨덴에서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이 즐거움을 조금 더 찾고자 한다. 춘절 연휴를 보내고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온 중국인 동료 부부에게 지난번에 얻어먹었던 생선과 닭고기 요리를 갚는 일이 아마 다음 기회가 아닐까 싶다. 


P.S.  떡국 레시피를 간단하게 공유한다. 기본적인 레시피는 이 링크에 나온 것을 토대로 한다. 

해당 레시피는 소고기를 사용하는 것인데, 나는 붉은 고기를 먹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서 닭고기 다짐육을 사용했다. 닭고기가 맛이 깔끔하지만 감칠맛이 덜할 수 있기 때문에 원래 레시피에는 없지만 표고버섯을 추가했다. 말린 표고버섯을 온수에 세 시간 정도 불린 다음에, 물을 레시피보다 조금 넣고, 대신 표고버섯 불린 물과 표고버섯을 같이 넣었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표고버섯을 거의 처음 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원래 다양한 버섯은 먹던 친구라서 그런지 큰 거부감은 없는 것 같았다. 


2024년 2월 10일을 회상하며, 스톡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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