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위로에 내 마음은 따뜻해지고 01.
어떤 위로에 내 마음은 따뜻해지고 01.
01. 배낭여행과 놀람교향곡
# 놀람 1악장. 2000년 2월초, 여행 첫째 날, 런던 히드로 공항
쿵쾅쿵쾅 두근두근 뛰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런던 히드로 공항에 발을 내딛었다. 캬~ 뭔가 서울과는 공기도 냄새도 다른 느낌이다. 여러 나라의 냄새들이 뒤섞여 있어서 뭐라고 콕 집어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달콤한 향기. 어쩌면 몇 미터 앞서 가는 사람들의 향수 냄새였을지도 모를 달달한 향내에 취해서 한껏 숨을 들이마셔 본다. 밍밍하고 지겨운 맛이 무한 반복되는 직장생활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났다는 기쁨과 자유가 공기방울을 타고 온 몸에 퍼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속에서 느껴지는 활기찬 에너지가 좋았다.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한 설렘이 물씬 느껴진다. 진지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체크하는 사람들! ‘공항을 빠져나간 후의 일정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거겠지?’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 ‘오랜 비행으로 체력이 바닥났나보군.’ 심각한 표정의 사람들! ‘뭔가 문제가 있나 보네. 쯧쯧. 안됐다.’ 정말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한가롭게 살펴보면서 내가 서울에서 맡긴 수하물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같은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이 모두 짐을 찾아서 공항을 빠져나갈 때까지 우리의 짐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엄밀히는 서울 출발, 북경 환승, 런던에 도착한 30여명 사람들의 짐만 행방불명 상태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러 갔을 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너무 짧았던 환승시간 탓에 사람은 비행기를 갈아탔지만, 짐은 미처 옮겨 싣지 못해서 아직 북경에 있다는 것이다. 다음 비행기로 실어올 수 있는데, 그 다음 비행기가 4일 뒤 낮에 온다는 황당한 시추에이션이었다. 말문이 턱 막혔다.
오 마이 갓! 뭉크의 절규가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4일 뒤 아침에 네덜란드로 이동해야 한다고!’ 회사에 휴가를 간신히 내고 큰맘 먹고 밀어붙인 7박8일의 짧은 여행이라 영국 3일, 네덜란드 하루, 프랑스 3일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한 치도 허투루 쓸 수 없는 금쪽같은 시간들이다. 7일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돌아다닐 계획이고, 나라별로 교통편과 호텔은 이미 한국에서 예약을 해 놓고 출발한 상태였다. 우리(나랑 미선 언니)는 그 짐을 찾기 위해서 영국에 하루를 더 머무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수하물 분실 신고서를 작성한 후에, 최대한 빨리 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달라고 항공사에 거듭 요청했다. 서바이벌 키트도 받았다. 하루 이틀 정도 버틸 수 있을만한 각종 세면도구, 속옷, 양말 등이 들어 있는 비상용 파우치였다. 수하물 지연 보상금 명목으로 1인당 50파운드의 현금도 받았는데, 연고가 없는 곳에 여행 온 사람들을 위한 생필품 구매 용도라고 한다. 그렇게 30여명의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 놀람 2악장. 셋째 날, 런던 숙소
여행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같은 애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여기저기에서 자주 마주쳤다. 수하물 분실자 30여명이 모두들 삼삼오오 제각각 자유여행을 하는 관광객이다 보니 동선이 뻔했던 것이다.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트라팔가 광장, 하물며 지하철역에서까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영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어느새 동지애와 전우애가 느껴지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사이가 되었다. 추운 날씨에 건강은 괜찮은지? 수하물 지연 보상금으로 어떤 생필품을 샀고, 그 품목은 쓸모가 있는지? 모두의 초미의 관심사인 수하물 관련해서 연락 받은 것은 있는지? 어느 관광지에 갔었고 어떤 점이 재미있었는지? 등등.
어떤 사람들은 아토피 증세가 하루하루 점점 심해지는 나를 걱정해 주기도 했다. 나는 직장생활 시작하면서 환경 변화와 스트레스로 인해 성인 아토피가 생긴 케이스인데, 얼굴에도 증상이 있어서 누구나 육안으로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배낭을 분실한 스트레스, 과연 네덜란드로 가기 전에 배낭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서의 피로감이 겹쳐져서, 아토피 증세는 악화일로에 있었다. 설상가상인 것은 나의 소중한 아토피 연고와 보습제가 분실한 배낭 속에 있다는 사실. 급하게 런던의 약국에서 대체품을 구매했지만 효능이 신통치 않았다.
둘째 날에는 서로에 대한 위로를 건네고, 희망을 가져보자는 말을 나누었던 반면, 셋째 날부터는 자포자기 심정을 나누는 모습으로 차츰 바뀌어 가고 있었다. 어떤 중년의 여자 분은 예전에도 수하물을 분실해 본 적이 있는데 못 찾았었다며 결국 못 찾을 수도 있으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여행이나 즐기라는 얘기를 했다. 또 다른 중년 여성은 우리는 짐을 분실한 것이 아니라 단지 늦게 받는 것이니 다시 찾는 것은 확실할 텐데, 다만 여행을 충실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은 받아야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항공사에 컴플레인을 해서 보상을 받아야겠다고 단단히 벼르면서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중년의 남자 분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면서, 자기도 예전에 컴플레인 해 봤는데 소득이 없었다며 기운 빼지 말라했다. 그렇게 서로가 나누었던 안부에는 위로 ․ 희망 ․ 심란함 ․ 절망이 복잡 미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셋째 날 여행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수하물 도착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항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당초 안내 받은 항공편으로 수하물이 런던에 도착하는데, 그대로 받기를 희망하는 지 묻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네덜란드로 떠난 뒤에 오는 수하물이 무슨 소용인가? 설마 했는데 역시나 이런 결론이라니! 전우(?)들과 불길한 결말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니 놀라움은 여전했다. 망설임 속에 선뜻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미선언니와 나는 그 짐 없이 며칠 살아본 노하우로 나머지 일정도 지내 볼 요량으로 차라리 수하물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하고, 매듭을 지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적막이 흘렀다. 정말 잘 한 선택일까? 후회는 없을까? 남은 일정 동안 여행을 잘 할 수 있는 것 맞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 놀람 3악장. 6일째, 루브르 박물관
유럽 여행이 처음이었던 미선 언니는 여행 컨셉 짜는 것을 나에게 일임했었다. 단지, 내가 영국을 먼저 가 본 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뭘 하면서 보내야 7박8일을 알차게 쓸 수 있을까?’ 시내를 벗어난 교외에서 마주하는 멋진 자연 경관, 맛과 향이 탁월한 미식 체험, 뮤지컬이나 오페라 공연 관람 등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지만, 학창시절 교양과목 중에서 서양미술사를 가장 흥미롭게 들었던 나는 미술관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뮤지움에 이어서 프랑스 파리에서는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등에 가는 것이 주요 스케줄이었다. 매번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미술관에 입장해서 하루 종일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감탄과 감동 속에서 날이 저물어, 뿌듯한 마음으로 퇴장을 하곤 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는 날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볼 생각에 한껏 들떴다. 드디어 ‘모나리자’를 마주한 순간! 생각 보다 너무 작은 크기(가로 53cm x 세로 77cm)에 깜짝 놀랐다. 일반적인 신문을 양쪽으로 펼쳐서 세로로 들었을 때의 사이즈 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예상했던 크기의 1/4도 안되는 크기였는데, 나는 무슨 근거로 모나리자가 그렇게 클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제 마음대로 크기를 상상해 놓고는 실망이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모나리자님~'
어쩌면, 폭 9미터 x 높이 6미터가 넘는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같은 대작들을 먼저 본 뒤에 마주해서 더 놀랐을지도 모르지만 예상 보다 작아도 너무 작아서 실망감이 들었다. 그리고, 방탄유리 속에 갇혀 있어서 또 놀라고, 너도나도 마구마구 사진을 찍고 있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하는 미술관들도 많은데 이렇게 자유롭게 사진을 찍게 해도 되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모나리자에게서 받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준 것은 대리석 조각 작품들이었다.
‘밀로의 비너스’와 ‘사모트라케의 니케’ 같은 작품들 앞에서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꽤 오랜 시간 바라보며 머물렀다. ‘승리의 여신’을 의미하는 ‘니케’는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역동성이 느껴져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우리에게 친숙한 ‘나이키(Nike)’라는 브랜드와 로고의 탄생에 영감을 준 작품이라 하니 더 신기했다.
# 놀람 4악장. 8일째 김포공항
7박8일 동안 너무 많이 걸어 다녀서 발에는 물집이 잡혔고, 그 동안의 피로를 티내듯이 입술에도 수포가 올라왔고, 아토피 증세까지 더해져서 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많은 명작들을 직접 눈앞에서 마주했다는 감동은 몸의 고단함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2000년에는 아직 인천공항이 개항하기 전이어서, 나와 미선언니는 김포공항을 통해서 귀국을 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분실물센터에 가서 헤어졌던 수하물과 다시 만났다. 영차! 커다란 배낭을 짊어 메는 순간 우리 둘은 박장대소했다. 깔깔깔! 웃음이 한참을 멈추지 않았다. 짐을 찾아 기뻐서가 아니라 ‘이 무거운 것을 메고 다녔으면 여행을 더 못했을 뻔했다’는 생각이 더 강렬해서였다.
요즘에는 꼭 필요한 물품만 최소한으로 챙겨서 여행을 떠나는 편이지만, 여행 초보였던 그 시절의 나는 ‘이것도 필요하겠지? 저것도 필요하겠지? 외국에서 사려면 서울 보다 비싸겠지?’라며 짐을 잔뜩 챙기곤 했었다. 그렇게 채워진 20kg이 넘는 배낭 속에는 꼭 필요한 물품도 물론 있었지만, 며칠 정도 없어도 지장이 없을만한 것이 더 많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묵직한 배낭을 메기도 하고 내려놓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스쳐 갔다. 굳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 지장이 없는 물건들을 가지려하고, 하지 않아도 될 고민들을 이고지고 살아가느라 마음 고생하는 시간들이 지난날의 나를 괴롭혔다는 것을.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미선언니와 함께 항공사에 컴플레인을 했다. 수하물을 완전히 분실한 것도 아니라서 보상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불편함이 있었는지 문서로 작성해서 회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꼼꼼한 미선언니는 무려 3페이지 분량으로 여러 가지 불편함을 조목조목 적어서 보냈는데, 아토피 연고가 없어서 내가 무척 괴로워했다는 내용이 꽤 비중 있게 중요하게 포함되었다. 명백한 사실들만 작성했기 때문에, 미선언니와 나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회신을 했다.
거드름을 피우며 ‘컴플레인 해 봐야 별다른 소득 없으니 기운 빼지 말라’했던 중년 남자 분의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는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일단 해 보자.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잖아’라는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며칠 뒤 매우 정중한 사과 연락을 받았고, 그 당시에 배낭을 분실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최고 보상액 52만원을 1인당 받았다. 우리가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사에 지불한 비용(항공료, 숙박비, 나라간 이동 교통편 예약비)이 104만원이었는데 정확히 절반을 돌려받는 셈이었다. 52만원이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을 테지만. 금액을 떠나서 ‘안 되겠지? 안 될지도 모르는데 귀찮다’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이니 이런 것도 해 보자’ 했던 것에 대한 보상은 예상보다 놀라웠다.
비록 배낭 분실로 인해 첫 시작부터 순탄하지 못했던 여행이었지만, 어쩌면 그 영향으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쌓였고, 밍밍했던 일상에는 감칠맛 하나가 더해졌다. 약간은 싱거운 찌개에 비밀의 재료 하나가 추가되면서 감탄을 자아내는 맛으로 변한 것 같다고 할까?
@ 놀람 교향곡 2악장 감상
https://www.youtube.com/watch?v=qG5Z9LzbQpQ
@ 놀람 교향곡 1~4악장 감상
https://www.youtube.com/watch?v=4eFY4iMk8q0
@ 곡 해설 출처 : 네이버캐스트
클래식 명곡 명연주 _ 하이든, 교향곡 제 94번 ‘놀람’
(J. Haydn, Symphony No. 94 in G major ‘Surprise’)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68297&cid=59000&categoryId=5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