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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 Dec 04. 2023

사랑의 사건, 진실, 응답: 『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머무는 박상영과 머물지 않은 박상영

 박상영은 한국 문학에서 경시되었던 가벼움의 그물로 퀴어를 포획한다. 한국 문학에서 퀴어는 단편적으로 그려져 왔다. 성소수자가 소설적 배경이 되지만, 연대와 유대의 관계로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거나  성소수자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갈등하는 진지한 서사가 주를 이루었다. 박상영은 한국 퀴어 문학의 경직된 움직임을 부순다.


 박상영의 소설에서 퀴어는 더이상 간접적 대상이 아니다. 동성애자가 소설의 중심 인물이며 1인칭 화자이다. 더 나아가 소설의 중심 인물과 작가의 거리를 좁힌다. 박상영 소설의 1인칭 화자는 대체로 박상영을 연상시킨다. ‘영’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따오거나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고 2-30대의 비슷한 나이대, 소설을 쓰는 것과 같이 자신의 정보 일부를 투영시킨다. 그 과정에서 퀴어 인물은 현실에 실존하는 작가와 연결되며 하나의 실재한다는 감각을 가져온다.  또한, 박상영의 퀴어 인물들은 정체성에 대해 갈등하지 않는다. 규범적 젠더 문화로 인해 동성애자로서 어려움이 드러나지만 내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서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퀴어를 대상화해 보았던 기존 퀴어 소설 속 정체성 서사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있다.


 박상영은 퀴어에 경직된 움직임을 부수는 동시에 유머와 웃음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을 부여한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유머와 웃음으로 무장했다. 박상영의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부터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이어지는 그의 소설은 기존 퀴어 문학에서 볼 수 없었던 유쾌한 존재로의 퀴어 인물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꿈 그거 좋지. 그러나 이거 하나는 기억하게. 기회는 기차와도 같아.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지
 기차는 매일 매시간 돌아오는데 도대체 무슨 개 같은 소리일까 생각하며, 그렇게 나의 첫번째 회사생활을 정리했다.
『대도시의 사랑법』, 문학동네, 2019, 79쪽


 박상영의 유머적 태도는 그의 소설이 가볍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유머는 인물들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견뎌내는 하나의 생존방식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상황은 대체로 가볍지만은 않다.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의 ‘나’는 운동권 연인과 보수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속 ‘나’는 실패한 영화인이 되어 제대로 된 영화도 만들지 못한 채 술에 취해 소동을 일으킨다. 박상영 소설 인물들은 대개 삶의 실패와 이별을 체험한 존재이다. 무엇이 되고 싶지만 되지 못하는 애매한 실패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유머는 비극적 삶을 견디는 나름의 생존방식인 것이다. 인물들이 아프고 취하고 울고 있어도 박상영의 유머는 이들의 생존과 사랑을 한 번 더 믿게 한다.


 초기 박상영의 소설은 중·단편의 형식을 취했다. 단편 소설집이었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와 연작이자 중편 소설의 형태로 엮인 『대도시의 사랑법』이 초기 박상영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시기 박상영은 유머적 태도를 지닌 인물들이 비극적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나 끝내 현실에 머무르는 순간을 주로 다룬다. 이때의 소설은 유머적 태도의 인물이 비극적 도시 현실의 대립된 채 귀결되는데, 인물과 현실의 간극에서 찾아오는 감정에 집중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박상영 초기 소설의 중·단편 형식은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나아가 머무는 박상영과 움직이는 박상영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기존 반복되었던 작가를 연상시키는 ‘나’라는 1인칭 화자와 퀴어 인물, 유머적 태도는 유지되고 있다. 반면, 2-30대의 서울에 거주하던 인물이 주를 이루었던 화자는 10대의 대구로 연상되는 D시에 거주하는 10대의 인물로 변화했다. 무엇보다도 해당 작품에서 박상영이 보여준 가장 큰 변화는 중·단편 형식을 벗어나 장편소설의 형식을 처음으로 시도한 부분이다.


장편소설이라는 선택

 작가가 소설을 쓰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단편과 장편 중 어떤 형식을 선택할 것인지일 것이다. 이는 곧 단편 소설과 장편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박상영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기존 중·단편 소설의 형식을 추구했던 작가가 처음으로 장편이라는 형식을 택했다는 것은 주요한 문학적 선택으로 보인다.


 관련하여 신형철의 장편소설론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형철에 따르면,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이 지니는 역할은 엄연히 다르게 정의된다. 단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묻고 삶 속에 존재하는 파열선으로 포착하는 작업이다. 이때 ‘파열’이라고 하는 것은 삶을 붕괴시키는 타격 중 하나이며,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 타격의 결과를 깨닫는 게 하는 순간이다. 단편소설은 이러한 파열의 순간들을 담아내야 한다.  다시 말해, 단편소설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그 순간을 포착한 예술인 것이다.


 반면, 장편은 순간의 포착을 넘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장편은 질문을 발생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답의 방향성까지 찾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에 신형철은 장편소설이 “특정한 세계에서 특정한 문제를 설정하고 특정한 해결을 도모하는 전략”이라고도 설명했다. 이는 장편소설이 스토리텔링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형식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장편은 대체로 일반적인 3단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신형철은 장편소설이 “사건- 진실- 응답”이라는 3부 구성으로 이루어졌음을 기술한다. “사건” 단계에서는 서사의 주를 이루는 사건이 발생하고, “진실” 단계에서는 해당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며, “응답” 단계에서는 주체가 진실에 응답한다. 따라서 장편소설은 3단 구성의 서사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의제를 제시하고 문학적 판단이라는 기능을 통해 해결을 모색하는 예술인 것이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박상영의 초기 중·단편 작품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한다. 유머적 태도의 인물과 비극적 현실의 대립에 그치지 않고, D시라는 세계를 통해 퀴어 인물이 겪는 사랑의 사건 속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을 도모한다. 이 과정에서 박상영은 ‘나’라는 1인칭 화자를 통해 사랑의 사건, 진실, 응답을 보여주고 있다.


사건- 사랑이 사건이 될 수 있는 이유

 장편소설의 1부 에서는 어느 순간에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일이 일어나지만, 당사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즉,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사건’은 단순히 발생한 일 자체로 성립되지 않는다. ‘사건’은 현재 주어지는 것들로 규정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자신의 상태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이는 곧 새로운 존재방식의 재창조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사건은 한 사람을 새롭게 변화하게 하는 일인 것이다.


『1차원이 되고 싶어』 속 사건은 단연코 ‘나’가 윤도를 사랑하는 일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 전이 열린 날, 비어있는 독서실에서 ‘나’는 윤도를 처음 만나게 된다. 윤도는 축구를 할 때면 벤치에 앉아 『해리포터』를 읽던 ‘나’를 기억하는데, 이 순간부터 ‘나’의 마음에 윤도가 침입한다. 이후 ‘나’는 윤도와는 음악 취향을 공유하고 동네의 오락실과 수영장, 윤도의 컨테이너를 오가며 가까워진다. 그러나 ‘나’는 윤도를 사랑하지만 윤도의 마음, 나아가 윤도라는 존재를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윤도의 세계는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내 비밀의 무게에 짓눌러 남들도 자신 몫의 비밀을 짊어지고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짐작도 하지 못할 만큼 나는 어렸고, 어리석었다.
『1차원이 되고 싶어』, 문학동네, 2021, p. 125


 윤도를 사랑한다는 건 10대의 ‘나’로서는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사랑이 규정되기 어려운데에는 2가지 측면에 기인한다. 하나는 ‘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D시이기 때문이다. D시는 보수적인 지방으로 특유의 교육열이 발달한 곳이다. 지방으로의 폐쇄성과 교육열이 만나 기형적이 사교육 문화가 만연하게 퍼져 있는 곳이다. 기형적이고 보수적인 D시에서는 동성애자인 ‘나’의 설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나’의 친구 무늬는 동성연애 사실을 들킨 뒤, 학생부에 소환되어 징계를 받는다. 부모님에게는 회초리로 피멍이 들도록 맞는다. ‘나’ 아는 동생인 태리 역시도 친구들 사이에서 “호모 게이 새끼”로 낙인이 찍히며 괴롭힘을 당한다. 이처럼 D시에서 동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용기와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남자를 좋아하는 욕망을 위장한 채 흐릿한 존재감으로 살았던 ‘나’가 윤도와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건, 이전의 흐릿한 ‘나’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미한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중략)…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고 때문에 내 욕망을 발설하는 것이 일종의 금기임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부터인가 나는 카멜레처럼 보호색으로 나를 위장해왔는데…
p. 39-40


 다른 하나는 ‘나’가 사랑하는 대상인 윤도가 쉽게 규정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윤도를 좋아하게 된 이후로 윤도와 가깝게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가끔은 친한 친구 이상의 행위를 이어 나간다. 이를테면 윤도의 비밀 공간인 컨테이너를 ‘나’와 공유하고 그곳에서 ‘나’ 부둥켜안은 채 잠에 드는 일 같이 말이다. 동시에 윤도는 ‘나’와 멀어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윤도는 ‘나’의 전화와 단둘이 공유하는 미니홈피의 글을 무시한 채 ‘나’에게서부터 잠적을 반복한다. 또한, 윤도를 둘러싼 부정적인 소문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렇듯 ‘나’가 사랑하는 윤도라는 대상은 미스터리이다. 윤도라는 인물은 이전의 ‘나’로서는 쉽게 규정될 수 없는 존재이자 사건이다. 그렇기에 ‘나’가 윤도를 사랑하는 순간, 이전의 ‘나’는 알지 못했던 사건으로 나아가게 된다.


윤도의 마음은 분명 나와는 다른 것 같았다. 함께 있을 때 우리 사이의 거리가 0에 가까운 것과는 달리,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윤도는 내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 간극이 나를 안달나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조차 내 과잉된 자의식이 빚어낸 오해일 수도 있지만.
p. 186-187

 

 ‘나’가 윤도를 사랑하는 건 ‘나’의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 존재감을 지운 채 살아야 했던 나에게 적극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도록 요구하는 일이며, 윤도라는 개인을 통해 타인을 깊숙히 들여다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는 10대의 ‘나’로는 규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가 윤도를 사랑한다는 건 ‘나’를 재정립하는 사건으로 성립된다.


진실 – 사랑의 실패자

 소설의 2부에서는 인물이 다른 사람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이 겪었으나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사건’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 즉,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단계이다. 『1차원이 되고 싶어』는 ‘나’가 윤도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심화된 윤도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나’는 윤도의 다양한 모습들을 목격하게 된다. 윤도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순간부터 여자친구를 사귀는 등 ‘나’를 배신하는 모습까지. 윤도의 상반된 태도를 목격하며 점차 ‘나’는 사랑의 사건에 다가선다. 그 사건에서 ‘나’가 발견하는 것은 윤도라는 사람이 아닌, ‘나’라는 사람의 실체였다. 그것은 ‘나’가 윤도를 사랑하는 사건의 진실인 셈이다.


 ‘나’를 둘러싼 사랑은 평등적이고 낭만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에게 위해를 주고받는 가학피학적 관계에 가깝다. 이때의 ‘나’는 가학의 주체가 되는 동시에, 피학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사랑에 있어 ‘나’의 모습은 주변 인물들에 투영되는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


 ‘나’의 사랑에서 피학적 관계는 주로 윤도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나’는 윤도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는 인물이다. 이는 ‘나’와 윤도 사이에 사랑의 감정적 우위에 차이가 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상대적인 위치에서 ‘나’는 아래에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나’는 윤도의 행동과 반응 하나하나에 휘둘리고 고통받는다. 윤도 역시도 이러한 관계의 우위를 인지하는 것처럼 ‘나’의 연락을 수차례 무시하는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때에만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 나아가, 윤도는 ‘나’ 이외의 희영과 사귀는 등 다른 관계를 만들어 ‘나’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준다. 이처럼 윤도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의 우위는 사랑의 피학의 주체로서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윤도와 ‘나’의 관계는 태리와 ‘나’의 관계에서 역전되어 등장한다.


 긴 머리카락.
 ‘윤도가 여자 만나는 거 형도 알잖아.’
 (중략)
 대체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이곳에서 언제까지고 그와 함께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나는 도대체 왜 이곳에 온 걸까. 윤도와 무엇을 하려고? 애인이라도 되려고? 학교에서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며 우리 사귑니다.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선언하고 다니려고? …(중략)… 모든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p.358


 ‘나’는 태리와의 관계를 통해 가학적인 면모를 보이게 된다. 태리는 ‘나’의 아는 동생으로 어릴적부터 자주 따라다니던 사이였다. 태리 역시도 동성애자이며, ‘나’와는 달리 자신의 정체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로 인해 태리는 학교에서 동성애자로 소문이 나며,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태리는 그럼에도 ‘나’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갈구한다. ‘나’ 역시도 태리의 마음을 인지하고 있으나, 윤도라는 존재와 태리가 처한 상황이 전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학을 행하게 된다. ‘나’는 태리가 준 생일 선물을 쓰레기 통에 버리는 등 학교 내에서의 태리와의 관계를 끊어가고자 관계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앞으로 태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앞으로 내 삶에서 태리를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할 수만 있다면 조가칼로 태리라는 존재를 파내버리고 싶었다. 멀어져야 한다고. 절대 엮여선 안 된다고, 누구에게도 태리와의 관계를 들켜선 안 된다고. 나를 위해서 오직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p. 206


 ‘나’의 가학피학적 관계의 사랑은 결국 실패로 귀결된다. ‘나’와 윤도의 관계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나’의 감정적 골이 쌓여감에 따라 윤도에게 날카로운 말을 뱉음으로써 싸움으로 번진다. 둘은 싸움을 통해 서로의 정체성과 관계를 모욕하며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채 멀어진다. ‘나’와 태리의 관계도 상처를 남긴 채 단절된다. 태리는 ‘나’를 부르고 같이 해외로 떠나자는 제안을 하지만, ‘나’는 거절한다. 이에 태리는 학교에 ‘나’와 윤도의 관계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태리를 물리적으로 수성못으로 밀어 빠뜨리면서 둘의 관계는 멀어지게 된다.


 흥분해 말까지 더듬는 윤도 앞에서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계절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화선지에 먹이 번지듯 검게 덮여 가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의 귀에 속삭였던 대화들이 순식간에 혼잣말이 되어버렸다. 너와 하나가 되었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다 없던 일이 되었다.
그래 더 해. 더 심한 말을 해. 내가 힘을 낼 수 있게. 힘을 내서 모든 걸 망쳐버릴 수 있게.
p. 374-375


 ‘나’를 둘러싼 사랑의 실패는 사랑의 주체인 두 인물이 끝내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나’의 사랑에 있어 인물들은 모두 가학과 피학을 반복하며, 이러한 인물의 폭력성은 사랑의 실패라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D시에서 사랑을 갈구했던 ‘나’의 민낯인 동시에 동성애가 죄악시 되었던 D시라는 사회의 비극적 현실이기도 하다.


응답 – ‘나’와 마주하기

 소설의 진실 단계에서 응답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인물은 자신이 알게 된 그 진실로부터 끊임없는 추궁을 받는다. 인물은 더 이상 진실을 알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으며, 진실과 관련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인물이 진실에 대해 응답을 행한다.  『1차원이 되고 싶어』에서는 ‘나’가 윤도의 사랑이라는 사건을 겪으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진실을 목격했다. 그것은 D시라는 기형적 사회 속 사랑의 가학과 피학의 주체로 존재하는 ‘나’의 모습과 사랑의 실패였다. ‘나’는 진실을 마주한 이상 이전의 ‘나’로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이에 응답을 해야한다.


 ‘나’가 진실에 응답하는 방식은 ‘나’와 사랑을 실패한 인물과 마주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나’와 사랑에 실패한 인물들은 윤도와 태리이다. 윤도의 경우에는 ‘나’가 대학 생활 중 우울증 치료를 마치고서 행해진다. ‘나’에게 부고 문자가 왔고 상주는 윤도였다. ‘나’는 그곳에서 큰 슬픔을 겪는 윤도와 마주하고 그런 윤도에게서 자신의 미숙했던 감정들과 기억들을 목격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감정과 기억들을 현재로 다시 끌어드리지 않고 그 시절에 남겨두는 선택을 한다.


 나는 울고 있는 윤도를 내버려둔 채 고개를 돌렸다. 옥상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조도가 낮은 조명에 회백색으로 칠해진 벽면, 오래된 시멘트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나는 결심했다.
 진심을 다해서 사랑했던 기억은 그 시절에 남겨놓기로.
 자신의 미숙함과 절망과, 분노와 슬픔, 과오와 아픈 기억들까지도 모두 그곳에 두고 오기로.
p. 399


 ‘나’는 마지막으로 태리를 만난다. ‘나’는 태리를 수성못에 빠뜨린 사건 이후로 다시 만나지 못한다. 이후 태리를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소설 전반부부터 이어져왔던 1004라는 이름으로 온 협박 편지를 통해서이다. 이 편지는 희영의 설득으로 태리가 쓴 편지로, ‘나’가 그 시절 있었던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기억의 회상을 통해서 ‘나’는 태리라는 존재를 유기했던 폭력적인 자신을 마주하고 반성한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응답하듯 ‘나’는 태리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하게 된다. 약속 장소에서 태리를 마주한 순간, ‘나’는 오래전의 ‘나’를 마주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 이는 ‘나’가 태리를 직접적으로 만나는 순간, ‘나’의 사랑이라는 사건 속 ‘나’라는 존재의 진실에 대한 응답이 행해졌음을 보여준다. ‘나’의 응답은 겉으로는 윤도와 태리를 만나는 과정이지만, 실은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소리가 물결처럼 들렸다. 사람들의 그림자 사이로 대낮의 햇빛이 비쳤다. 나는 약속 장소인 카페의 유리창을 보았다 창가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천천히 내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마치 아주 오래전의 내가 지금의 내게 고개를 돌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깊이 숲을 삼킨 채 앞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p. 402


『1차원이 되고 싶어』 속 ‘나’와 윤도의 사랑은 이전의 ‘나’로서 규정할 수 없는 일이자, 새로운 존재로 나아가게 하는 사건이다. 윤도와의 사랑이 진행될수록 ‘나’를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사랑의 가학과 피학의 주체라는 진실을 깨닫는다. 그 진실은 D시라는 부조리한 사회에 살아야 했던 현실에 기초하고 있다. 나아가, ‘나’는 사랑을 둘러싼 윤도와 태리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회피해왔던 ‘나’라는 존재를 마주하며 응답이 이루어진다.


사랑의 사건, 진실, 응답

 다시 앞선 질문으로 돌아가, 장편소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떠올려보자. 장편소설은 무엇보다 적극적인 형식이다. 특정한 세계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모색하는 행동이다. 이는 장편소설이 단순히 긴 서사에 그치지 않고 서사 밖에서 일어나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상영은 이러한 장편소설의 요구를 독자와 함께 체험하는 방식으로 해낸다. 『1차원이 되고 싶어』 속 사랑의 사건, 진실, 응답의 과정은 작품 밖 독자에게서 한 번 더 반복이 된다. ‘나’가 사랑을 통해 마주한 어리석고도 부끄러운 과거의 자신은 모두에게 존재하는 표상이다. 이로써 독자는 ‘나’로부터 비롯된 자신의 기억을 통해 누군가에게 윤도로, 태리로, ‘나’로 존재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 순간, 작품 밖에서 독자와 작품의 “사랑의 사건, 진실, 응답”의 체험이 반복되고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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