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근육이 필요해

가까운 사람들부터 그려보기

by 듀로잉

혹자는 말한다.

운동을 하는데 근육이 필요하듯 글을 쓰는 데에도 근육이 필요하다고.

그 두 번째 '근육'이라는 것은 아마 바로 습관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운동을 통해 근육이 차츰 만들어지는 시간만큼, 습관이 내 몸에 베이는 데에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게 있어서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시작하는 일'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보다, 이미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게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졌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 마음을 먹는 일이 세상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입시미술을 준비하던 이후로는 매일같이 그림을 그린적이 없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에 딱 손을 놓아버렸다. 입시 준비 때는 그려야 하는 것이 명확했기에 반복할 수 있었지만, 그 몇 년간의 반복을 멈추고 나니 무엇이 그리고 싶은지 알 수가 없어졌다.

운동도 글쓰기도 그림 그리기도, 매일 조금씩이라도 해야 그 근육이 키워질 텐데 그렇게 십여 년간 내 그림 그리기 근육은 점차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스케치부터 컬러링까지 애플펜슬로 그려본 첫 그림



최근 들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가 두 가지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보다 그림 그리기 간편한 기기가 생겼다는 것(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이 생겼다)과 두 번째는 그 전자기기로 그린 첫 번째 그림에 대한 리액션이 그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까지 가 닿는데 오래 걸리는 나라는 사람에게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펜 마우스를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사용하기 복잡하고 어려운 그림 프로그램과 생각만큼 예민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펜마우스의 한계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까지의 접근성은 (최소한 나에게는)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만난 아이패드프로와 애플펜슬은 한 10단계 정도 있던 준비과정을 1~2단계로 확 줄여주는 역할을 해준 것이다. 종이처럼 간편한 태블릿과 그 위에 직접 그림을 그리듯 그리면 그대로 인지해주는 애플펜슬은 기존의 종이 위의 펜으로 그림 그리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었다.


두 번째 계기는, 아이패드로 그린 첫 번째 그림을 보고 매우 기뻐해 준 친구들의 반응이었다.

친구들이 함께 유럽여행을 갔을 때의 모습을 끄적끄적 그렸었는데, 그 그림을 받아본 친구들이 동시에 프로필로 걸어주며 아주 매우 많이 기뻐해 주었었다.

그림이란 것은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도 그리게 되곤 하지만, 역시 어떤 창작물이든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반응을 얻고 거기서 보람을 느낄 때 더 큰 의욕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 내가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일본에 유학가 있는 친구의 일상



의욕에 불탔던 올해 초에는 일주일에 1개 이상의 그림을 그리겠다고 혼자 다짐했었다.

혼자 다짐만 하면 안 그릴까 싶어 인스타그램 그림 계정에도 올리고, 그라폴리오에도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활활 타오를 때는 일주일에 2개도 그리고 3개도 그리고 잠자는 시간도 잊어가며 그렸는데, 본디 빠르게 타오른 것은 빠르게 사그라들기 마련인가 보다. 지금은 일주일에 1개도 겨우 지킬까 말까 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그림을 그려 무엇이 하고 싶은 건지, 무엇이 그리고 싶은 건지 그런... 목적 같은 것? 이유 같은 것을 나는 찾고 있는 중이다. 그림으로 돈을 벌고 싶은 걸까? 유명해지고 싶은 걸까?

잘 모르겠지만, 그런 나름의 이유를 찾을 때까지는 그림 그리기 근육을 소실하지 않도록 꾸준하게 노력하고 싶다. 그래서 그때가 올 때까지(안 오면 어쩌지) 친구들에게 신세를 져볼까 한다.

재미있지 않으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나를 위해 친구들은 그들의 일상을 내게 기꺼이 공유해준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애정을 담아 오늘도 친구들을 그리고 있다. 근육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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