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린다는 것

보통사람의 그림일기

by 듀로잉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언젠가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가진 '사회적 관계'였던 [만화동아리]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 생각은 더욱이 확고해졌던 것 같다.

누군가가 시켜서 라거나,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스스로 선택했던 첫 번째 '활동'이 바로 그림이었고(정확히는 만화), 그 '처음으로 직접 선택한 일'이라는 점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그림 그리는 일과 나를 따로 놓고 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내가 그림에 아주 아주 아주 천재적으로(?) 뛰어난 재능은 없다는 것을.

그래도 어릴 때는 뭔가 어른이 되면 스스로에게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불확실한 부분이 채워져서 스스로도 납득할만하고 만족스러울 뭔가를 그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기에, 그때의 어린 나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하며 눈 앞에 닥쳐있던 입시 미술에만 매달렸었던 거 같다. 남이 정해놓은 길 말고 어떤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던 어리숙한 시절이다.



그리는 과정을 타임랩스로 남겨준다.


하지만 입시미술을 거쳐, 최소한 나만큼 그림만 그리다 온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면서 깨달았던 점이 하나 있는데, 내가 생각보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면, 계속 계속 꾸준하게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야 하는 거 아닌가?

2년을 넘게 입시용 그림을 매일같이 그려왔었기에 그때의 나는 연필이고 물감이고 손에도 대기가 싫었고,

입시 그림 말고는 어떤 걸 그려야 할지, 어떤 걸 그리고 싶은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같이 공부하게 된 같은 반 친구 한 녀석은, 나와 비슷하게 입시미술 기간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작은 그림 노트에 그림을 그려댔다. 그 노트에는 컬러링까지 완성된 그림도 있고, 그리다 만 그림도 있고, 어떤 그림을 그릴지 대강 스케치한 것도 있었다.

이 친구는 시종일관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수업도 듣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었는데, 본인의 그림에 들어갈 소재거리를 서칭 할 때만큼은 눈이 아주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아, 이 정도는 사랑해야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이때 즈음, 나는 전공을 외부공간 디자인 쪽으로 결정했다.

이러저러하게 스스로 세운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 사람’의 기준에서 나는 스스로를 불합격시킨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전공과 관련된 일을 10여 년째 해오고 있고 나름 즐거움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림 그리는 일’ 그 끝을 붙잡고 이렇게 매달려있다. 어떤 마음 때문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좋아하는 사진작가와 그 배우님의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이제와 다시 생각해봐도 그 당시 나는 그림에 열정과 애정이 부족했다고 느껴지고, 사실 지금도 그때와 비교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어찌 되었거나 계속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으면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걸 최근에서야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기술적 재능뿐 아니라 어느 정도 영감과 센스도 발휘해야 하는 일이라 퍽 자신 있는 건 아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고, 내가 제일 부족했던 부분인 ‘꾸준히 그리기’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꾸준히 1년만 그려보자, 그러다 보면 내가 어떤 그림이 그리고 싶은 건지 왜 이토록 미련이 없어지지 않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


이 그림일기는 그래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같은 조금 웃기고 조금 오글거리는 이유로 시작하려 한다.

생각과 고민은 이미 너무 많이 했으니, 먼저 몸을 움직여 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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