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느낀점
매주 금요일 밤 11시, 나는 사회인 동호회에서 농구를 한다.
대학교 때 함께 농구를 하던 형님들이 만든 사회인 동호회다. 30대 ~ 40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호회 명칭은 근성의 농구사나이, 줄여서 근농사이다. 금요일 밤 11시 농구를 4년째 이어오고 있다. 금요일에 술도 안마시고 농구를 한다? 그 자체가 근성이다.
근농사를 대표하는 중요한 가치는 두 가지다. 근성과 선함.
우리는 프로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승부는 진지하다. 사회인 농구를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경기가 안풀려 짜증을 내거나, 남에게 쉽게 잔소리하고 막말을 하거나, 심지어 부상을 입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정말 어디에나 있고 농구의 즐거움을 없앤다.
근농사는 다르다. 우리는 착한 사람과 함께하고자 한다.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을 원한다. 서로를 무시하지 않고 함께 농구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인 동호회이다.
선함이 기본이라면, 근성은 필수다. 농구선수가 아닌 이상 농구는 취미일 뿐이다. 그런데도 승리에 대한 열망이 크고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동호회는 매주 15~17명이 모여 5:5:5, 3팀 로테이션 경기를 한다. 4쿼터씩 3경기. 1승당 10점, 그날의 MVP는 추가 3점을 받는다. 점수를 모아 1등 ~ 3등까지는 상품도 증정한다.
두팀이 경기를 하고 있으면, 다른 1팀은 심판 3명, 점수 기록 1명, 영상 촬영 1명으로 역할을 나눠 경기를 운영한다. 승리에 대한 열망 덕분에(?) 이러한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모두가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기 때문에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감정이 격해질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해진 틀 안에서 항의가 가능하도록 했다.
보통 동호회에서 심판에게 항의하는 모습은 불편하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파울인지 아닌지를 끝까지 따진다. 경기 후에는 영상을 돌려보며 심판의 판단을 다시 확인하기도 한다. 말이 되는가? 단순한 동호회인데도,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한다.
우리 동호회에서 중요한 건 끝까지 하는 것. 슛이 안 들어가도, 몸이 무거워도, 수비를 놓쳐도 끝까지 뛰는 게 중요하다. 사실 농구는 득점이 많이 나오는 경기이다. 한 게임에 50점에서 70점까지 누구나 한두골은 넣을 수 있다. 그래서 골을 넣는 것에 크게 기쁘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열망 속에서 작은 플레이 하나가 기쁨이 된다. 쉬운 패스 하나, 수비 성공 한 번에 다 같이 환호한다. 그만큼 이기고 싶으니까! 우리는 이곳에서, 이 방식으로 농구를 즐긴다.
한 달 반 전, 근농사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했다. 몸이 회복된 후 다시 경기에 나왔지만, 경기 시작 3초 만에 주저앉았다. 뒤에서 누군가 발을 친 것 같다고 했다. 병원 진단 결과, 아킬레스건 70% 파열로 수술이 필요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근농사에는 40대 형님들도 많다. 우리는 농구를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연스럽게 그만두는 날이 오겠지만, 부상으로 농구를 끝내고 싶지는 않다. 부상을 당한 형님도 40대 이지만 아직도 농구를 정말 잘한다. 하지만 수술 후에 다시 뛸 수 있을까?
나도 20대 중반에 다른 사람 발을 밟고 다쳤다. 두 달간 깁스를 했고, 다시 뛰는 데 다섯 달이 걸렸다. 1년 반 정도 농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다시 뛸 수 있다고 믿었다. 단 1%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다시 못 뛴다면?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에도 남은 사람들은 경기를 마무리했다. 안타까움과 별개로 농구는 계속되었다.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어쩌면 개인사는 역사의 큰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 개인의 부상이나, 한 개인의 은퇴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국, 안타까움 그 이상도 아니다.
부상을 당한 형님을 보며 모두가 잠시 말을 잃었다. 다들 그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경기는 계속되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누군가는 스코어를 확인했고, 누군가는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우리는 여전히 뛰었다.
농구 경기가 진행되듯, 인생과 역사는 흐른다.
누군가가 코트를 떠나도, 남은 사람들은 계속 농구를 한다. 언젠가 우리도 뛸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또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공을 주고받을 것이다.
농구 따위가 무상하면서도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