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간계층의 분열과 불안
미국 하와이대학 사회학과 명예교수인 저자가 미국에서 먼저 출판한 책을 이후에 한국에 다시 출간한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함께 나타난, 한국의 중간계층이 양적으로 축소되고 질적으로 불안정해지는 사회 문제의 흐름과 이를 둘러싼 원인을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196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빠르게 고도의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결과, 1980년대 말 한 조사의 결과에서는 국민의 70%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반면 2010년대 말에는 체감중산층의 규모는 20~40%로 크게 떨어졌다. 중산층의 몰락이라는 키워드로도 등장하고 있는 이런 사회 현상의 이유가 정말 궁금해졌다.
먼저 실제로 중산층의 규모가 양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OECD에서 제안한 중간층의 구분법은 중위소득(전체 중 중간 순번에 위치하는 사람의 소득)의 50%에서 150%에 속하는 사람들로 나누는 것인데, 이에 따르면 한국의 중산층은 80년대에 75%였으나 2010년에는 60%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이는 전 세계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자 한국에서 특히 빠르게 진행된 경제 성장의 결과로 소득의 불균형이 심화된 것이 원인이다.
그리고 중산층 안에서도 계급의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책에서 인용된 다양한 세계지역 연구와 논문의 주장이다. 경제적 부는 자본가인 최상위 1%와 나머지 99%로만 격차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99% 중에서도 상위 5~20%와 나머지로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최상위 1% 소득계층을 제외한 상위 5~20%가 이 책의 제목이자 저자가 구분 짓고 있는 특권 중산층에 해당한다. 한국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의 소득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 격차가 특히 그 구분을 짓고 있다고 말한다.
중산층의 불안은, 더 이상 하나의 중산층 집단으로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 내의 계급화가 진행되고 그중 상위 중산층을 준거집단으로 삼으면서 더욱 심화된다. 한국의 중산층은, 유럽의 부르주아처럼 근대화 정신과 독실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집단이나 사회적으로 존경받고자 했던 미국의 중간계급과는 달리, 전쟁 후 경제 성장 속에 등장한 오로지 경제적 소유와 소비 수준으로만 사회적인 위치가 구분되는 집단으로 상위 중산층은 이 위치를 고수하지 못할 걱정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그 외 중산층은 상위 중산층을 비교하며 자신의 위치에 불만을 갖게 된다.
현재 한국에서 중산층 체감 의식이 계속 낮아지는 중요한 이유는 많은 중류층 사람들이 생각하는 준거집단이 변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그들에게 준거집단은 자신과 비슷한 경제 상태에 있는 이웃사촌들이었다.
(중략)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 사람 중에 억대 단위 봉급자가 나타나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의 집값이 2배 3배 오르는 일도 벌어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특히 부유층이 돈을 쓰는 스케일이나 사는 모습이 달라졌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커지고 현대식으로 고급화되었으며, 몰고 다니는 차는 더 이상 현대 소나타가 아니라 고급 국산 차 아니면 비싼 외제 차로 바뀌었고, 입고 다니는 옷이나 핸드백, 구두, 시계 등의 소지품도 소위 명품 아니면 그에 준하는 고급스러운 것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 <1장 한국 중산층의 형성과 와해> 중에서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신분 경쟁에 사용되는 많은 과시적 재화들이 대중화되었기 때문에, 부유층은 될 수 있으면 일반 중산층이 접근할 수 없는 재화들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부유층이 취하는 태도는 흔한 과시성 사치품보다는 자신과 가족에게 더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물품과 서비스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녀들 사교육, 가사 도우미, 정원 관리사, 고급 의료 서비스, 해외여행, 은퇴 후를 위한 보험 등에 많은 지출을 한다. 그리고 이런 생활양식에 필요한 것에는 금전적 여유뿐만 아니라 고급 정보와 문화지식이 포함된다.
- <3장 특권 중산층의 등장> 중에서
조귀동이 결론적으로 주장하듯이 "결국 한국에서 90년 대생들은 전문직이나 대기업 일자리를 가진 부모가 확보한 경제력과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자본을 바탕으로 명문대 졸업장과 괜찮은 일자리를 독식하는 '세습 중산층의 자녀세대'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이 이전 세대가 경험한 불평등과 질적으로 다른 이유다."
- <3장 특권 중산층의 등장> 중에서
현재 한국의 중산층이 자신이 중산층에 속하느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 사용하는 주된 비교 대상이 바로 강남의 부유층이다. 강남의 부유층은 많은 이들이 보기에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즉 잘 나가는 사람들이나.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좋은 아파트에 살며,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자녀교육도 남보다 더 전략적으로 잘 시키며, 자산 증식도 약삭빠르게 잘하는 사람들이다. 강북이나 지방 도시에 사는 일반 중산층 소득자가 보기에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짜 중산층을 형성하고 있는 부류는 바로 이들 강남 부유층 또는 그에 걸맞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고, 자신은 이미 중산층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사람이다. 하지만 강남 부유층은 어제까지만 해도 일반 중산층의 일부였고 아직 상류층이 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는 많은 중산층 사람들이 강남의 부유 중산층을 자신의 주요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 <4장 강남 스타일 계급 형성> 중에서
대중매체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대상은 돈 많고 화려한 생활을 하는 부류이다. 매체에 비친 그들의 소비생활과 사는 모습은 마치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정상적인 생활수준이나 라이프스타일처럼 받아들여진다. 결국 디지털 시대에 범람하는 미디어에 대한 노출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의식 중에 자신을 가까운 이웃보다는 먼 위치에 있는 부유층과 비교하는 경향을 갖게 만든다. 이렇게 준거집단의 기준이 상승하게 되면, 자연히 부유층을 향한 모방소비도 증가하고, 국민 전체의 소비 수준은 역시 따라서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 <5장 명품, 웰빙, 계급 구별짓기>
상위 중산층은 경제적인 위치와 사회적인 특권을 세습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급 격차는 교육을 통해서 자녀 세대로 이전된다. 청년 세대에서 아무리 불공정과 공정에 대한 담론이 부상한다 한들, 이미 기득권인 계층에게는 별 소용은 없는 것 같다. 경제적 계급 격차를 해소할 수는 없어도 완화시키기는 커녕, 점점 더 견고해지기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