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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스틴 Jan 25. 2021

외외잘

외국에서 외롭지 않게 잘 살기

외로운 타향살이


외국에서의 타향살이, 어언 10년째다. 20대를 거의 외국에서 보낸 셈이다. 새내기 딱지를 갓 뗀 스물한 살,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멕시코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7개월 단기 연수이긴 했지만 생애 첫 타향살이였다. 그때만 해도 내가 한국을 떠나서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외국인 남편을 맞이하게 되리라고는 더더욱) 그러다 20대 중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어느덧 결혼의 연까지 맺게 되었다. 그리고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지금까지 약 3년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그럭저럭 살고 있다.


유럽으로 이사 온 이래, 프랑스에 살고 있는 20년 지기 친구와 자주 통화를 한다. 지구의 정 반대편, '대척점'이라 불리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참 극단적인 시차 덕에 당최 통화할 상대가 없었는데, 스페인에서는 그래도 동일한 시간대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든든하다. 우리는 종종 타향살이 중 문득이 찾아오는 외로움을 토로하며, 서로를 다독인다.  


타향살이 중 가장 그리운 건, 바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는 존재다. 사회생활의 불안감과 사회적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피로감을 그 어떤 계산 없이 허심탄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퇴근과 동시에 득달같이 만나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인생살이 고단함을 맘껏 토로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내 편'. 그렇게 실컷 이야기하다 보면  '아, 이놈의 세상살이 나만 힘든 게 아니지, 더 한 경우도 많아' 하고 끄덕이며 본인의 상처에도 좀 더 무던할 수 있지 않을까.  


유달리 어두운 일요일  


일주일 중 감정 기복이 유난히 심한 요일이다. 일요일마다 극심한 불안감과 우울감을 진득이 앓곤 했다. 주로 일에 대한 망상이 나를 부정적인 감정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일 걱정에 아침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신경질적인 생각들이 뒤엉켜 날카로운 잡음을 일으키고,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곤 했다. 질끈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해도 봤지만, 집요한 망상은 베개 맡을 떠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침대에 있기가 힘들다.  


그럴 때면 잠든 남편을 두고 홀로 아침 산책을 떠나곤 했다. 햇볕을 쬐고 아침 내음을 깊게 들이 맡았다. 이슬이 내려앉은 잔디 위를 천연덕스레 나뒹구는 동네 개들을 관찰했다. 이내 마음의 동요가 가라앉곤 했다. 팽창한 머리는 줄어들었고, 내 불안의 세계도 고요해졌다. 비로소 나를 둘러싼 주변 세계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어김없이 오후 5시를 기점으로, 마음은 갑갑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굴복하게 되었다.


월요병이 고약하다지만, 적어도 월요일에는 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실제로 처리하느라 바빠 감정을 살필 틈도 없다. 비로소 무엇이든 자유롭게 사색할 시간이 있는 일요일이 왔건만, 평일에 벌여놓은 일에서 파생된 갖은 망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시간을 쫓는다. 주중 내내 꼬박 40시간이 넘는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고도 왜 구태여 자유시간에도 자진해 스스로를 옭아매는지? 당최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운 잡음들  


곁에 가족이 있다면 이런 걱정과 불안에서 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레질을 하고 있을 우리 엄마, 소파에 누운 채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히죽대고 있을 동생, 그리고 평일과 다름없이 가게에서 일을 보고 있을 우리 아빠.


가족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둘러싸여, 내 시선도 밖으로 향하겠지. '거 일요일이 뭔 대수라고, 나한테만 월요일이 오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 모두 다음 한 주 또 다른 많은 과제들을 직면하겠지만, 어쨌든 이렇게 하루를 오롯이 살고 있잖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지 않을까?


오전 11시 느지막이 일어나, 엄마와 함께 점심으로 라면을 먹을지, 김치 국수를 삶아 먹을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김치볶음밥을 한 그릇 먹고 좀 쉬다가, 오후 4시 즈음 심심하면 친구네 신혼집에 놀러 가 커피 한 잔에 시답잖은 수다나 떨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남편과 나, 단 둘 뿐이다. 하나보다야 둘이 나을 테지만, 가끔은 외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그렇다고 외국살이가 힘든 것만은 아니다. 그랬다면 진작 한국에 돌아갔을 거다. 글쎄, 내가 경험한 한국은 자극이 가득한 곳이었다. 스트레스의 강도는 세지만, 보상이 확실한 곳. 친구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거나, 진득이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그렇게 나름대로 감정을 게워내고 나면, 다시금 0에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곳. 하지만 고국을 떠난 내 삶은 단조롭고 담백했다. 분노나 격한 스트레스를 느낄 일도 없지만 또 화통하게 해소할만한 계기도 없는 곳.


자극이 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상 속 소박한 재미에 정을 붙이고, 쉬이 행복해하는 것 같다. 동네를 산책하다 발견하는 알록달록한 대문들, 퇴근길마다 마주치는 하얀 길고양이, 한정된 재료로 뜨끈한 오징어볶음 한 접시를 뚝딱 만들어 낼 때의 성취감. 그런 게 내 일상을 채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편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나의 남편. 그가 없다면 난 외국에서 살 일이 없었을 것 같다. 내가 용기를 내서 새로운 터전에 적응할 수 있게끔 곁을 지키는 남편. 그가 고맙다.  


글쎄. 시원하게 이유를 댈 순 없지만, 어쨌든 난 외국에서 사는 게 지금은 더 좋다. 지난 20년간 내 고국에서 살았으니,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 일상의 영역이지만서도, 영원한 외국일 이 곳에서의 삶이 재밌다. 적어도 아직은.


외롭지 않게 잘 살아보려고


외롭지 않게 잘 살아보려고 한다. 그래서 브런치도 시작했다. 주말에 남아도는 내 에너지를 창작에 쏟아, 그 힘이 외로움이나 부정적인 감정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노력할 거다. 또 운동도 정기적으로 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사람들 너무 가리지 않고 만나려고도 노력할 거다.


그렇게 나의 '외외잘' 프로젝트를 시작해보련다. 그러다 보면 낙관과 긍정이 넘치는 일요일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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