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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스틴 Jan 25. 2021

영상 중독자의 글쓰기

브이로그, 그 언저리 인생에서 벗어나기

다른 건 다 제치고, 나 글 쓰고 싶다.


매일 외면하고 피해온 일이다. 활자로 싹트지 못한 생각의 결정체들은 내 안에 독처럼 쌓여갔다. 축적된 무게에 못 이겨, 앓아눕기 여러 번. 침대 밖으로 나가기는 또 얼마나 어려웠던가? 오른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퀭한 눈으로는 누군가의 제주 한 달 살이부터 미라클 모닝 도전기, What I eat a day 시리즈까지 그네들의 참 시시콜콜하면서도 생산적인 순간들에 랜선 들러리를 서느라, 초라한 내 하루가 그렇게 송두리째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지겨웠다. 내 유한한 삶의 시간을 자처해 도둑맞는 일. 씁쓸한 패배감과 께름칙한 허무함. 하지만 그 찜찜한 기분을 안고도, 더 많은 영상을 찾아 부단히 스크롤 내리고 있는 나를 멈출 수 없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나름 의지가 강한 사람인데, 왜 그러지?' 이쯤 되면 이 스마트한 세상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그의 영향력을 총동원해, 나를 영원한 모니터 안 객체로 박제해버리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모시기의 브이로그, 모시기의 도전기, 모시기의 가계부 정리까지. 갖은 간접경험과 조언, 힐링의 팁이 범람하는 그 버츄얼 세상에서 정작 내 실재는 희미해져 갔다.


내 삶에 하등 보탬될 일 없는 영상들을 게걸스럽게 소비하는 나. 가장 경멸하는 모습이다. 소비하는 삶의 반대편에는 '창작하는 삶'이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의미 없는 콘텐츠 소비의 굴레에서 내 족쇄를 봉인 해제해 줄 유일한 구원책. 글 창작.


그렇다면 왜 '텍스트' 여만 하는가? 우선 나 스스로 항상 글쓰기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년시절부터 줄곧 내 천성에 가장 어울리는 일이 글쓰기라고 생각했었다. 백일장과 독후감 대회 등은 거의 놓치지 않고 참가했고,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입시가 절대적인 목표가 되면서부터 글쓰기를 멀리하게 되었고, 마침내 대학에 들어갔을 땐 이미 창작된 것들을 탐닉하기에 바빴다.


바야흐로 사회인이 된 이래, 직업적 글쓰기를 제외하곤 글 쓰는 일이 없어졌다. 또 내 개인적인 생각을 글로 표현해 누군가에게 내보인다는 게 참 부담스러웠다. 머릿속에 잔뜩 똬리를 트고 엉키고 설킨 생각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나를 어디까지 내보일 수 있는지도 혼란스러웠다. 여러 번 글쓰기를 시도했지만, 자기 검열의 채에 걸러진 미완의 텍스트들은 곧 진눈깨비처럼 흩날리다간 허무히 소멸했다.


어언 사회생활 10년 차. 매 저녁 명치를 조여 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폭식으로, 또 휘발성 강한 자극적인 영상으로 꾸욱 눌러 내리곤 했다. 서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산화된 단어들이 씁쓰름히 올라올 때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타향살이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썰을 풀어내렸다. 뒤죽박죽인 생각들을 주저리주저리 한 차례 친구에게 털어놓고 나면 그나마 얹힌 게 풀렸지만, 바로 다음 날이면 기도를 조여 오는 단어들의 행렬에 마른침만 삼켜댈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글쓰기만이 이 악순환에서 나를 건져 올릴 수 있으리라.  


여기에 영상에 대한 내 개인적인 반감도 관계된다. 나(소비자)가 상상할 틈, 일말의 개입 여지도 주지 않는 그 완벽한 영상들에 질려버렸다. 스크린 너머로 내 촉각과 청각까지 무장해제해버린 각종 ASMR부터 미각과 말초신경을 조작하는 그네들의 먹방까지. 과도하게 상세하고 친절한 그 영상들에 내 오감이 마비되었다. 15분, 30분이라는 시청 시간이 무색하게, 뒤돌아서면 증발해버리는 그 피상적인 메시지와 무의미함에 배반감도 느꼈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텍스트는 독자의 머리에서 고유의 형체를 피우고 그의 모든 감각과 상호작용한다. 이러한 주체적인 해석의 경험은 텍스트가 삶에서 영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대학 동기들이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인스타그램 피드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나는 선뜻 좋아요를 누르지 못했다. 실제로 글 쓰는 행위를 실천하고 있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괜히 질투도 났다.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패배감만 곱씹고 있는 나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제 지긋지긋하다. 나는 쓰련다. 골골대더라도 활자로 풀런다. 나에게 창작욕구가 있음을 인정하고, 또 실현되지 못한 그 욕구가 나를 억누르고 있음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나를 위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저 고약한 것들에 맞서서 나는 창작을 하련다. 콘텐츠 범람의 시대, 더 이상 소비 말고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련다.  


2021년,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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