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지만 폭신한 음악을 찾아간 북유럽에서
#1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낸 건 고작 반년이지만, 그곳을 그리워하게 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사소한 점 하나까지 궁금해지듯, 한국에 온 뒤에도 나는 스웨덴을 탐구했다. 무슨 말만 하면 스웨덴 얘기로 귀결된다고 별명이 ‘기승전 스웨덴’이었다. 스웨덴은 아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에겐 교통비를 받지 않는 곳이었고, 개인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교육을 하는 곳이었고, 자연을 해치는 대신 녹아드는 디자인을 선호하는 곳이었고, 평등한 기회 없이 인간은 자유를 얻을 수 없다고 믿는 곳이었다.
스웨덴도 좋았지만, 나는 스웨덴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아꼈다.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믿었다. 그때의 나를 요약하자면, “스웨덴이 좋아서 스웨덴어를 배우는 사람으로 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공인 어학 성적 같은 자격증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의 표출이었다. 언젠가 스웨덴으로 가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약 없는 소망이 지루한 하루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렇게까지 빠져 있다 보면 사람들은 묻는다. 어쩌다 스웨덴에 가게 됐는지. 이런 사실을 다 알고 스웨덴으로 갔냐고? 전혀 아니었다. 나에게 스웨덴은 유럽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사는 북유럽 중 한 곳에 불과했다. 스웨덴에 발을 딛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2
나를 7,880km 떨어진 곳까지 기꺼이 날아가게 한 건 음악이었다. 20대 초반 수없이 반복 재생을 했던 음악들이 탄생한 곳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였다. 이 외에도 많지만 지금까지도 꺼내 듣는 곡들을 위주로 적어봤다. 이 중에서 Kings of convenience와 Silje Nergaard는 노르웨이 출신이고, 나머지는 스웨덴의 보컬과 그룹이다.
Club 8 - Love in December (10대 시절 한 cf에 삽입돼 알게 된 곡, 겨울만 되면 싸이월드 bgm으로 선곡했다. 몽환적인 사운드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12월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Lasse Lindh - C’mon through (드라마 ‘소울메이트’ 덕분에 알게 된 서울 신촌에 사는 스웨덴인 가수.)
Kings of convenience - Cayman Islands (사람의 마음이 어느 정도로 평온할 때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걸까?)
The Cardigans - Carnival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 삽입된 lovefool을 부른 그룹, 묘하게 모든 곡에 우울한 정서가 깔려있다)
Myrra Malmberg - How insensitive (드라마 ‘커피프린스’에 삽입된 taxi driver를 부른 가수. 수많은 How insensitive 중 제일 좋아한다)
Silje Nergaard- Be still my heart (어디에서 처음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10대 후반부터 내 플레이리스트를 항상 지키고 있는 곡)
이 음악을 모두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 귀를 홀리는 음악의 공통점은 발견할 수 있다. 우울한 감성을 특별히 더 좋아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거의, 단조다. 채도가 선명한 음악보단 몽환적인 색채에 훨씬 매료된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보단 역시 겨울이다. 고요함이 내려앉은 한 겨울밤의 멜랑꼴리. 심장까지 바로 날아 들어오는 음악은 이런 느낌이다.
궁금했다. 이 음악을 만든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살고 있을까? 녹아 사라질 기미가 전혀 없는 흰 눈을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으면 이런 영감이 떠오르는 걸까? 북유럽의 어느 한적한 숲 속 호숫가에 앉아 기타를 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교환학생을 갈 학교를 골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타는 코드도 잡을 줄 모른다. 북유럽의 음악적인 영감이 잔뜩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아끼는 것들에 대한 확신을 얻고 돌아왔으니, 음악으로부터 받은 것이 결코 작지 않았다.
#3
북유럽 음악에서 묻어나는 감성은 재즈에서도 마찬가지로 느낄 수 있다. 북유럽 재즈는 마음을 더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다. 관악기 소리는 폭풍우처럼 몰아치지 않는다. 대신 음악을 폭신하게 감싸 안는다. 다른 악기들도 놀라운 기교를 선보이며 질주하기보다는 숨을 고를 공간을 남겨준다. 그래서 듣고 있으면 더 낭만적이고, 서정적이고, 무엇보다 덜 난해하다.
스웨덴을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북유럽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될지는 망설여졌다. ‘덜 난해함’이 문제였다. 난해한 곡을 듣는 사람일수록 더 수준 높은 청자라고 여겨진다. 머릿속에 ‘재즈’를 떠올리면 20세기 초중반 미국이 가장 먼저 그려지는데, 스윙과 비밥으로 대표되는 그 시기의 음악을 10년 전의 나는 난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다. 반면 이 이미지 속의 재즈와 비교하자면 북유럽 재즈는 주된 멜로디가 더 분명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멜로디컬한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듣기 쉬운 것만 좋아하는 ‘하수’라고 평가될까 봐 두려웠다.
생각해보면 하수가 맞다. 그럼 뭐 어떠한가. 재즈 고수들은 북유럽 음악을 듣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오류였고, 난해한 곡일수록 수준 높다는 인식도 착각이었다. 최근 레슨에서 피아니스트 Lars Jansson의 곡 ‘More human’을 접했다. 스웨덴 출신인 그의 곡 역시 상당히 멜로디컬하다. 멜로디는 간결하지만, 미세하게 박자를 당기고 밀며 감칠맛 나게 연주하는 건 흉내내기 어렵다. 코드도 복잡하지 않아 보이지만 단순한 코드 진행 안에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드는 게 오히려 내공을 필요로 했다. 게다가 중간에 등장하는 예상치 못한 코드 연결까지. https://youtu.be/Ge46itD1MlU
선생님과 그의 곡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한참을 이야기했다. 프로 연주자도 북유럽의 재즈를 아름답다고 느낀다는데!라는 안도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깨달았다. 실은 내 취향마저 인정받고 싶어 하는 그 욕구가 문제였다는 걸. 다른 사람들로부터 더 인정받을 수 있는 걸 공부하고 정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를 떠다닌다. 그럴 때 반대편에선 Lars Jansson의 곡이 이렇게 속삭인다. 아니야, 네가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해도 괜찮아.
오늘은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해 볼 요량으로 새로운 연주자 탐색에 나섰다. 스웨덴에서 제일 잘 알려진 재즈 피아니스트는 Esbjorn Svensson인 줄 알았는데, Jan Johansson이라는 선구자가 있었다. 스웨덴 민속음악과 재즈를 결부시킨 그의 음악은 스웨덴의 재즈가 형태를 잡아가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1950년대였지만, 그의 곡 역시 ‘난해한 재즈’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Jansson과 Johansson의 음악으로 다시 스웨덴을 떠올릴 수 있는 밤은, 참 충만하다. https://youtu.be/SQixX3CxY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