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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르는 마음 Aug 14. 2023

멀리 있을 때 좋은 당신

아빠에 대한 몇 가지 기억들.


하나, 다섯 살인 내가 욕실 앞에서 악을 쓰며 울고 있다. 문을 사정없이 두드린다. “엄마, 엄마!” 엄마는 문을 잠가둔 채 목욕을 하고 있다. 아빠가 다가오더니 내 뺨을 때리기 시작한다. “시끄러워, 조용히 해!” 나는 더 큰 소리로 운다. 아빠는 양쪽 뺨을 번갈아 가며 더 세게 때린다. “시끄럽다니까!” 엄마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가진 아빠에 대한 맨 처음의 기억이다. 단편적이라 전후 사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엄마가 오랫동안 보이지 않아 당황했을 것이다. 아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빠를 대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또 언제 그렇게 때릴지 몰랐으니까. 아빠 등의 따스함이 아닌 둔탁하고 얼얼한 손바닥의 감촉만이 내 두 뺨에 남았다.


둘, 어느 일요일 아침. 아빠가 식탁에 있던 그릇을 엄마에게 던진다. “당신 미쳤어?” 엄마도 씻고 있던 그릇을 아빠에게 던진다. “그래 미쳤다. 니가 내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는데?” 아빠는 엄마를 밀쳐 넘어뜨리고 발길질을 한다. 나와 동생은 아빠의 바지춤을 붙잡고 말린다. 방에 있던 할머니까지 나와 아빠를 두들기며 말린다. “아이고, 아이고, 고마해라, 내 자식 죽는다.” 아빠는 할머니마저 밀쳐버린다. “뭐, 내 자식?” 아빠는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씩씩거리며 집을 나간다. 할머니와 엄마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그 뒤로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주기가 점점 길어졌다. 몇 주, 몇 달, 몇 년. 들어오더라도 하루 이틀 정도 거의 혼자 방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TV를 보며 시간을 때우다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에서 때묻고 구겨진 신발을 발견하면 긴장했고 조심했다. 최대한 소리가 들리지 않게 걸었고 문도 천천히 닫았다. 나의 존재를 알려주고 마주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엄마와 나, 동생이 한 방을 썼는데 아빠가 있는 날이면 잠들기 전에 방문을 잠갔다. 우리가 잠든 사이 방에 들어와 해코지를 할까 봐 무서웠다. 나는 그 사건으로 아빠를 악당이나 범죄자처럼 생각했다.


내가 열여덟 살이 되고 나서 우리는 이사를 갔다. 엄마는 아빠에게 이사한 걸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와 동생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아빠는 정말로 나타나지 않았다. 아빠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였다.


셋, 아빠와 내가 진주 남강을 바라보고 나란히 서 있다. 오랜만에 만난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처럼 피상적인 짧은 말들만 오간다.


오랜만에 만난 아빠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키도 덩치도 나보다 작아져 있었다. 절뚝거렸고 야위었다. 나를 알아보고는 “성준이가? 머리는 와 밀었노?”라고 말하며 웃을 때 앞니가 빠져 있는 것이 보였다. 당뇨를 앓고 있다고 했다.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품어왔던 증오와 분노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대로여야 했다. 언제나처럼 못난 모습으로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알려줘야 했다.


아빠는 우리에게 어떤 경제적인 지원조차 주지 않았지만 그건 괜찮았다. 그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면 그가 해줄 수 있는 일 중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그래야만 문을 잠그지 않고 편안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고 엄마의 불만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타고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 것들은 아빠를 닮지 않으려고 애썼다. 살을 뺐다. 대학을 갔고 원하던 직업을 얻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직 사랑하는 중이다. 결혼식을 알리지도 초대하지도 않았다. 아빠를 내게서 최대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내 삶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이름도 생소한 어느 지방의 관공서에서 우편물이 도착했다. 봉투를 뜯어보니 ‘기초 생활 수급’에 대한 안내문 몇 장과 ‘부양 포기 각서’라고 적힌 서류가 들어 있었다. 짐작은 갔지만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안타깝지만 어쩌겠냐는 투로 아빠가 기초 생활 수급을 받기 위해선 부양 의무자가 ‘부양 포기 각서’란 것을 작성해서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대략이라도 좋으니 사유를 써달라고 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길 바라는 심정으로 펜을 들었다. 최대한 공적인 느낌이 들게끔 적었다.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당신의 부친이 이렇게 된 데는 당신이 아들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난받는 듯했다. 우리를 버리고 떠난 것은 아빠인데 그에 대한 책임은 따지지 않고 어째서 나에게만 의무를 요구하는 것일까? 억울했다. 억울했는데 화가 나지도 밉지도 않았다. 그의 앞니가 빠진 웃는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런 곳에 가있는 겁니까? 또 무엇으로부터 그렇게 달아난 거죠? 까맣게 텅 비어버린 그 작은 구멍에서 그가 살아오면서 느꼈을 고독과 무상함을 짐작해 보았다.


이제는 안다. TV에 나오는 진짜 범죄자처럼 어떤 악의를 가지고 그랬던 것이 아니라는걸. 이 땅의 남성으로 태어나 타고난 욕망과 가족에 대한 책임 사이에서, 당신도 온통 처음 겪는 일들에 대한 당혹스러움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도망친 것뿐이라고.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 채 삶에 떠밀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나는 아빠의 그림자가 내 인생에 드리우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다. 나를 덮기에 아빠의 그림자는 너무 작아져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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