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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르는 마음 Aug 07. 2023

피아노 연습실

다현과 다음 글쓰기 과제로 무엇을 쓸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글감을 고르는 일이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서로 지나간 기억들을 이것저것 끄집어 내던 중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컴퓨터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영화 〈아멜리에〉의 OST였다. 무심코 흘려보내던 음악 소리가 조금씩 귓가에 머물기 시작했다. 어떤 음악들은 뜬금없이 잊었던 기억들을 불러들인다. 좋아하는 영화였고 내가 피아노로 연주한 적 있는 그 곡이었다. 생각난 김에 영상 하나를 찾아서 틀어보았다. 거기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수줍게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히사이시 조가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OST 중 하나인 ‘어느 여름 날’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해서 연주하는 영상을 봤다. 맑고 투명한 피아노 소리는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찬란하고 쓸쓸했던 어느 여름 날을 떠올리게 했다. 나도 저 곡을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첫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회사에서 가까운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8살 때 엄마가 피아노 학원 등록비로 준 4만원을 오락실에서 다 써버리고 집에서 쫓겨난 후 25년 만이었다.


퇴근을 하면 곧장 피아노 학원으로 갔다. 세 시간 동안 쳤다.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갔다.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이 좋았다.


나는 취업한답시고 부산에서 올라와 이모집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이모와 사촌동생, 반려견 세 마리와 함께 살았다. 이모는 엄마와 다름없이 편하게 대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집세 걱정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이모는 엄마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게 됐다. 집에 있는 동안 혼자 있는 것은 내 의지에 달려 있지 않았다. 회사는 더 했다. 직원들과는 잘 지낸 편이었지만 일이 엮여 있는 이상 어느 정도는 예민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어딘가 정신이 이상한 대표는 걸핏하면 트집을 잡았고 직원들을 이간질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불편했던 회사를 떠나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다. 마음 편히 등 기댈 곳 없던 내게 피아노 학원은 비밀기지 같은 곳이었다. 화가 나거나 서러워서 혼자 있고 싶을 때 찾아가는.


그러나 피아노 학원을 그토록 열심히 찾아 간 것은 피아노 연주 그 자체 때문이었다. 피아노를 거의 처음 치는 것이나 다름 없었던 내게 숙련자들 처럼 악보를 보는 동시에 연주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기본적인 악보를 읽는 법부터 배웠다. 음표 하나를 손으로 짚어가며 위치를 확인한 후에야 건반 하나를 칠 수 있었다. 양손을 쓰는 건 더 어려웠다. 페달까지 밟을 땐 피아노를 내려 치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연습을 하다보면 갑자기 잘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소리를 하나씩 하나씩 모아서 제법 음악처럼 들릴 때면 아, 비로소 내가 그 음악에 들어갔구나 싶었다.


방음벽이 설치된 1평 남짓한 연습실에는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와 피아노 의자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연습실은 8번이었다. 영창에서 나온 피아노였는데 울림이 크거나 화려하진 않았지만

퉁명스럽게 던지는 다정한 말같은 그 소리가 좋았다. 언제나 그 연습실을 찾았다. 누군가 사용 중일 때는 다른 방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연습실에 있는 세 시간동안 만큼은 시끄럽고 부산스러운 것들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호흡, 자세, 손가락의 떨림, 건반의 감촉, 건반의 88가지 소리, 리듬, 템포, 멜로디 등 방의 온갖 것들이 내게 전달됐다. 그리고 그런 상태일 때 피아노를 더 잘 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피아노를 치는 것은 일종의 명상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스스로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고백하자면 거기서 피아노만 친 것은 아니었다. 가끔 졸리면 피아노에 엎드려서 한 시간씩 자기도 했고, 유튜브도 봤다.


피아노에 대한 애정은 가장 쓸쓸한 방식으로 사라져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서서히. 피아노를 계속 치다보니 클래식 음악에도 관심이 생겨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나 슈만의 ‘어린이 정경’같은 쉬운 곡들로 연습을 했다. 쇼팽의 ‘녹턴 20번’이나 드뷔시의 ‘달빛’을 칠 수 있는 날도 머지 않아 보였다. 그러는 사이 회사에서는 한 달에 한 명 꼴로 퇴사자가 생겼고 대표는 점점 더 정신이 이상해졌다. 이직 제의가 들어왔고 수락했다. 피아노 학원과 거리가 멀어지면서 학원을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디지털 피아노를 들이면서 부족한 연습을 메꿨다. 연애를 시작했다. 피아노보다 더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생겼다. 그래도 학원에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가려고 했다. 그녀와 학원에 같이 가서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하지만 학원을 가는 횟수는 점점 더 줄어들었고 1년 6개월 쯤 됐을 무렵 더 이상 등록을 연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피아노를 치지 않고 5년이 지나갔다.


지금 우리집 작은 방 한 켠에 그때 사둔 피아노가 놓여져 있다. 피아노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 모습이 어쩐지 최신 게임기가 생겨 낡은 장난감을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중고로 팔까도 고민했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다. 거기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낸 시간이 많았지만 피아노는 언제가 거기 있었다. 수북이 쌓인 먼지를 닦아 내고 전원을 연결했다. 건반 하나를 눌러 보았다. 다행이다. 아직 소리가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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