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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르는 마음 Sep 05. 2023

5:33, #1

어쩌면 여행의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


숙소에 도착한 다현은 짐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다. 여행 첫날, 다현은 생리를 시작했고 그녀가 갖고 있던 체크카드 하나를 잃어버렸다. 이 정도면,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그녀라면 일찌감치 바닥에 주저앉았어야 했다. 그런데 다현은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용케 숙소까지 왔다.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참았다고 생각하니 애틋했고, 그럼에도 불평 없이 씩씩하게 걸어 준 그녀가 대견했다. 오히려 내 걱정이 지나쳤나 싶어 조금 무색하기도 했다. 다현은 내가 부러 도와주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배낭을 짊어지고 걸을 수 있었다.


자고 있는 다현을 보며 그런 생각들을 하는데, 문득 내가 대견하다고 할 만한 처지가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보살피고 책임져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뭐라고.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디뎠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각자의 배낭을 짊어지고 걷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배낭을 대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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