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에 빠져라. 여러번 좌절하며 애쓰면서 빠져나와라.
2025년 1월13일 일룸 전시장에서 강의가 있었다. 일명 [수능에서 빛나는 초등수학]. 그동안 매쓰모션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한아름선생님과 내가 함께 정리해서 했던 강의였다. 이 강의의 주제는 '애씀의 구덩이'였다.
그동안 나는 유튜브 쑥샘tv를 통해, 나이대에 따라서 수학 학습을 코칭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어떤 이는 수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느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수학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학적 관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수학과 수학교육은 다르다. 학생은 교육학을 아는 사람이 가르치는 게 맞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학교도 다니지 않는 어린 아이에서 시작해서 아직 학교 수학에 물들지 않은 초등학교 저학년, 이제 좀 수학 기호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초등학교 중학년, 겨우 수학 공식을 이해하고 만들 수 있게 된 초등학교 고학년, 문자와 식으로 수학을 표현하기 시작한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의 성장과 더불어 수학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는 교육법을 찾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아이의 성장과 상관없이 수학은 수학 자체의 학습법이 있고 그것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의 수학 교육에 대한 부모의 선택은 이러한 관점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선행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학원을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 인강을 들을 것인가 과외를 할 것인가, 문제집을 풀릴 것인가, 풀린다면 어떤 문제집을 몇 권이나 풀릴 것인가? 부모의 교육관은 큰 문제에서 작은 문제까지 수많은 선택의 기준이 된다.
사실 수학은 원래 어렵고 힘들다. 많이 하면 쉬울 법도 한데 할 때마다 녹록치가 않다. 아이들은 더 그렇다. 처음부터 수학이 편하고 쉬운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수학이 불편하다. 그 이유는 아이들은 '구체'의 세상에 있고, 수학은 '추상'의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은 <초등교사를 위한 수학과 교수법>이라는 책에서 발췌했는데, 아이들이 수학을 어려워 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아이들은 구체적인 조작활동을 통해 개념을 이해하고 일반화할 수 있으며 수학 기호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적어도 3~4년은 걸리기 때문에 부모는 기다리기 힘들고, 아이들은 자신을 믿을 수 없으며 수학이 싫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처음 개념을 잘못 이해하면 오개념으로 자리잡아 나중에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일 때도 삐그덕 거릴 수 있다. 어릴 적 수학으로 힘들었던 기억은 수학 불안이나 수학 공포증이 되어 두고두고 아이를 괴롭힐 수도 있다. 12년간 학교에서 수학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구체에서 추상으로 다리를 건너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 불안의 골짜기를 어떻게 건너가야 할 것인가?
여기 수많은 고통의 순간중 한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 있다.
<수학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저자 조볼러는 학생들에게 수학의 구덩이에 뛰어 들라고 말한다. '나는 할 수 있어.' '아, 또 실수야.' '도와줘요.'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이 문제는 너무 어려워.' '나는 수학에 재능이 없나봐.' '오, 이제 좀 알 것 같아.' '학교는 시행착오를 겪는 곳이야.' '기다려, 할 수 있다고.' '오, 결국 내가 해냈어.' 아이는 실망과 좌절을 딛고, 희망과 투지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며 구덩이를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학 공부를 하면서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구덩이에 빠질까봐 불안해 하지 말고, 어려운 문제나 개념을 만나면 대충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지 말고, 그 속에 뛰어들어 정면 승부를 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빨리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고,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결국 빠져나오게 될 거라는 것이다. 이 구덩이를 조볼러는 '애씀의 구덩이'라고 했다. '애씀의 구덩이'는 제주의 '오름'만큼이나 많다.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들 얼굴에 난 여드름 만큼이나 많아질 거다. 그러나 통과하는 방법은 초등때나 고등때가 같다. 아이가 스스로를 믿고, 왜 그럴까 탐구하며 실마리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같다.
이것은 아이들이 수학 공부를 할 때 어떤 태도로 공부를 해야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선생님, 수학을 재미있게 공부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수학에 흥미가 떨어지면 어쩌죠?" 라고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다. 그런데 흥미나 재미도 나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흥미나 재미는 말초적인 느낌이라면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 흥미나 재미는 두뇌를 자극하는 지적호기심일 수 있다. 성취감이나 뿌듯함도 흥미나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흥미나 재미가 진화되려면 수학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수학이 어려워져도 힘들다고 포기 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궁리하는 태도는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걸리며 도움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야기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해보면, 부모는 아이의 수학 학습에 있어서 우선 큰 그림을 보고, '아, 수학은 구체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거고 원래 어려운 거구나. 빨리 안 된다고 아이를 채근하지 말아야지.' 마음 먹는 게 중요하다. 또 멀리서 보고 있지만 말고 손 잡고 한 번은 같이 구덩이에 들어가서 어떻게 빠져나오면 좋을 지 모델을 보여주면 좋다. "걱정마, 엄마가 옆에 있잖아. 겁먹을 거 없어. 피하려고 하지말고 지금은 엄마랑 함께 해. 나중엔 너 혼자 충분히 할 수 있을거야."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는 빠지고, 아이가 애쓰는 그 과정을 꾹 참고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 적절히 응원하면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부모의 응원이 없이 스스로를 응원하는 아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의 강의는 3년에 걸쳐 애써 온 매쓰모션의 정신이었다.
구덩이에 빠져라.
구덩이를 꾹꾹 밟으며 한 발자국씩 전진하는 아이를 응원해라.
그렇게 애씀의 에너지가 아이에게 덕지덕지 붙어서
꾸덕꾸덕 딱지가 앉을 때까지 지켜봐라.
아이가 스스로를 믿을 수 있을때까지 먼저 아이를 믿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