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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Apr 08. 2023

안녕,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뒤돌아보며, 안녕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 중 씬짜오, 씬짜오

    “1995년 1월, 우리는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92년에서 93년까지 베를린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겨우 일 년이 지나서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플라우엔이라고 불리는, 오 년 전까지만 해도 동독 지역이었던 작은 도시였다.” (쇼코의 미소, 67쪽) 플라우엔의 학교에서 나는 아빠 직장 동료인 호 아저씨의 아들 투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나와 우리 가족은 호아저씨의 집에 초대받아 다정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이 한 번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두 가족이, 특히 응웬 아줌마와 나의 엄마가, 서로의 집을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일상의 시작이 되었고, 낯선 도시에서 먼저 이방인으로 살아온 사람의 시간과 나중이 된 이방인의 시간은 한 자리에서 서로의 과거와 미래로 만나 지금 이 순간만은 실제보다 견딜만한 온도와 습도로 이해한다, 존재한다. ““저도 처음 독일 왔을 때 그랬어요. 한국도 여름이 습하죠? 여기는 뭘 발라도 건조하더라고요.” 응웬 아줌마는 엄마에게 직접 만든 크림을 줬다. 샤워한 후에 꾸준히 바르면 가려움이 줄어들 거라고.”(70쪽) ““독일에 처음 왔을 때,” 아줌마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추웠어요. 아무리 껴입어도 벌벌 떨리는 거야. 아직도 그래요. 투이야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아무렇지 않겠지만 난 이상하게 아직도 여기 적응 안 돼. 난생처음 눈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너무 예뻐서 춥다 춥다 하면서도 손이 다 얼도록 눈을 만지고 놀았어요.”” (74쪽)  


    나의 부모는 서로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은 채, 타지에서, 곧 끊어진다 해도 놀랍지 않은, 결혼 생활을 위태롭게 이어나간다. 하지만 호아저씨와 응웬 아줌마 앞에서만은 서로를 긍정하는 부모, 잦은 전학으로 누구에게서도 별명을 부여받지 못한 나를 우드스탁이란 생애 맨 처음 애칭을 붙여 부르는 투이, 사려 깊은 관심으로만 이루어진 질문을 내게 선사하는 응웬 아줌마는 불행한 두 어른만의 보호 아래 숨죽여 지내는 나의 시간을 내며 나를 보살핀다. 이건 나뿐만 아니라 나의 엄마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라 응웬 아줌마는 우리 가족에게 필수인 타인이 되고 만다. “플라우엔에서 맞은 두 번째 겨울에 나는 거의 매일 투이네 집에 들렀다. 우리 집은 오래된 라디에이터 때문에 언제나 냉골이었지만 투이네 집은 온몸이 노곤해질 정도로 기분 좋게 따뜻했고, 투이네 식구들과 함께 지내는 쪽이 집에 있는 것보다 편해서였다.”(74쪽) “아줌마와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의 집을 오갔다. 엄마는 김을 좋아하는 아줌마를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김을 구워 갖다 줬고, 아줌마는 단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쌀푸딩을 만들어줬다.”(74쪽)


     ““다행히 2차 대전 이후로 이처럼 대규모의 살상이 일어난 전쟁은 없었단다.” 투이가 손을 들어 선생님의 말을 끊었다. “아닌데요” 그게 투이의 첫마디였다. “뭐가 아니라는 거지?” “베트남 전쟁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이모, 삼촌 모두 다 죽었대요”(77쪽) 투이의 이 말은 나에겐 “뜻밖의 이야기”, 투이에게 그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볼 것을 권유하는 선생님에게는 수업의 일부, 베트남이 전쟁으로 미국을 이긴 유일한 국가라는 것과 베트남전의 참상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 있는 반장의 발언은 지식으로서의 전쟁, “베트남전은 미국 정부의 실책이었고, 미국으로서는 아무런 득도 보지 못한 전쟁이었다”는 수업의 결론에 부재하는 사람들, 인생들. “나는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너희들은 투이의 마음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겠지. 독일 애들에게 희미한 분노마저 느꼈던 기억도.” (78쪽)  


     응웬 아줌마 집 서재의 제단과 아줌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말할 때, 나와 내 동생을 바라볼 때 보이는 슬픈 표정의 정체는 비극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저녁 호아저씨 집에 모여 식사 중이던 어른들의 일본 식민 통치에 대한 대화에 끼어든 “한국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어요.”(78쪽)라는 나의 말로부터  “한국 군인들이 죽였다고 ” 다는 투이의 차가운 속삭임에서 “저희 형도 그 전쟁에서 죽었습니다.”하는 나의 아빠의 고백으로 “그들은 아기와 노인들을 죽였어요.” 하는 응웬 아줌마가 이웃인 그들, 한국인들에게 숨겨온  상처에까지 마침내 도착한 전쟁은, 학살은 두 가족의 사이를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든다. 내가 아는 것은 나 스스로가 알고자 해서 알게 된 것일까,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고 아는 것만을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의 말과 글과 생각의 쓸모는 도대체 무엇인가.     


     베트남어도 한국어도 아닌 한자로 이름을 쓰면 서로 같은 성씨인 나와 응웬 아줌마는, 시대의 비극의 영향력 아래 알게 모르게 신음해 온 삶들은, 어떤 작별인사를 나누며 헤어져야 하나. 씬짜오, 씬짜오 “그 흔한 포옹도, 입맞춤도, 구구절절한 이별의 수사도 없었다. 그저 안녕, 그 한 마디였을 뿐.” “투이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은 채였다.”(89쪽) 그렇게 누구도 멈추지 않은 걸음을 계속 걸어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서른셋이 되고, 엄마는 세상을 등지고, 그때까지 독일을 떠나지 않은 응웬 아줌마와 나는 플라우엔에서 재회한다. “아줌마의 눈에서 나는 나와 함께 여기에 서 있는 엄마를 본다. 응웬 씨, 반갑게 이름 부르며 저쪽 길로 건너가는 엄마의 모습을. 씬짜오, 씬짜오. 우리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반복한다. 다른 말을 모두 잊은 사람들처럼.” (92-93쪽) 그러나 이다음은 응웬 아줌마의 눈에 비친 내가 어려서는 한국군에게 잃은 그의 가족, 나이 들어서는 세상에 둘도 없던 이방인 이웃 여자임으로 해서 그 모든 상실이 서로에게 더욱 또렷해지는 포옹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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