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상대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책임을 지는 쪽을 선호합니다. 나 자신을 희생자로 보는 게 정말 싫어요. 차라리 뭐랄까, 내가 이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를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개새끼였어, 이렇게 말하는 게 나아요. 그건 '내가 한' 선택이었으니까요.'
- 은희경, 아가씨 유정도 하지
밤은 이미 자정을 지나 내일로 깊어져만 가는데. 온 봄방학을 무위로 만끽 중인 소년이 자기 방에서 게임을 다 마치고 밤늦도록 불 켜진 우리 방에 찾아들어와 둘 사이로 누울 때를 기다린다. 침대 위에 엎드려 소년이 우리 곁에 도착하자마자 무람없이 꺼버릴 전자책을 읽다가 풉. 한 사람이 누울 만한 자리만큼 떨어진 구석에 바로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남편이 나더러 왜 웃녜. 잘 들어봐, 내가 읽어줄 테니까.... 알고 보니 개새끼였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를 선택할 수 있다고 낭만적으로 상상할 순 없지만, 너나 나나 알고 보니 모두 다 개새끼는 맞아서 서로에 대한 죄책감도 책임감도 이제 더 이상 불필요하단 나의 속내는 그에게 전혀 밝히지 않은 채. 알고 보니 개새끼였어, 만을 반복해 소리 내어 음미한다. 깔깔
현실 속 개새끼에게는 소설 속 개새끼만큼 그럴듯한 서사가 없어 그 존재는 문학 아닌 불량 가공 식품 원료 목록.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아니, 혹시 쟤도 알고 보면 우리 결심 이전에는 절대 불가능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