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도 태어나지도 않는 시간. 무엇인가 명백하게 어긋난 시간.
영원한 건 결국 익사하게 되어 있어. 넌 이 세계가 얼마나 갈 것 같아? 다들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클라우스처럼 자기만의 무덤을 찾게 될 거야. 영원에 지쳐서 말이야. 거리에 쓰레기처럼 굳어진 사람들 봤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유사 죽음 상태의 쓰레기들. 어떤 인간도 영원을 견뎌낼 순 없다는 증거들이지. 유사 죽음은 늘어나고 제정신인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그러다 멸종하게 될 거야.” 128쪽.
광장에는 ‘시체 나무’와 교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시체 나무’에는 목을 매단 사람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고, 교수대에도 역시 주검이 즐비하다. 물론 전부 가짜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에서 죽음을 흉내 내는 유희. 난교와 폭동에 질려버린 대중의 최신 유행인 모양이다. 102쪽.
중독자들을 끌어들이던 펍들은 ‘고문실’로 바뀌어 있었다. 고문실에 들어간 손님들은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신체를 훼손할 수 있다. 살인자와 피해자라는 역할극을 하며 번갈아가며 상대를 유린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고문실은 한결같이 지하에 있는데 들어가면 종업원이 다양한 길이와 종류의 칼, 바늘, 밧줄, 총과 망치, 전기 도구들이 적혀 있는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종업원이 손톱을 뽑는 도구 중 중세의 교회 열쇠가 가장 유행이라고 귀띔해주었다. 나는 구경만 하고 나왔지만 에디는 기꺼이 실험에 몸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 시간 뒤에 데리러 가보니 에디는 성한 데라고는 없이 피갑칠을 한 채였다. “으, 끝내줘.” 넝마처럼 변한 살점은 붕대로 감겨져 있었지만 피가 계속 베어나왔다. 103쪽.
무한의 인간은, 무한을 이길 수 없다. 오직 유한한 인간만이 무한에 대해 상상할 수 있다. 천장도 바닥도 없는 허공에 떠 있는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니다. 땅에서 태어난 인간은 하늘로 골아가야 한다. 하지만 죽음을 박탈당한 우리는 죽음과 비슷한 것들만 찾다 소모될 것이다. 1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