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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그 Apr 19. 2022

한나 언니

너는 고유해, 나는 그 고유를 사랑하고. - 1

 어떤 말은 잊히지 않고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나에게는 ‘소통에 있어서 마음 다음의 것’이라는 말이 그중 하나다. 

이 말은 언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한나 언니의 대답이었다

 언니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언니가 내가 일하던 게스트하우스의 새로운 스태프로 오던 날, 

나는 며칠 사이 부쩍 친해진 게스트들과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야트막한 마음 언저리에 빛나는 막이 하나 걸쳐진다. 

반짝반짝 빔프로젝터 없이도 마음 상영회가 시작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잘 말하지 못하는 깊은 이야기가 

술술 구식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쏟아져 나온다.

나는 당시 영화제의 한가운데 있었기에 

헤어짐이나 상실 같은 감정에는 무지한 채로 사람들에게 두려움 없이 애정을 건네고 또 받고 있었다. 

그렇게 바보같이 헤헤 웃고 있다가 문득, 우리의 며칠에 없었던 언니가 이 자리를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 한편에 앉아있던 언니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내가 무어라 말을 건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언니가 했던 말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좋아 보여, 근데 나도 아니까. 이게 정말 좋은데 지나가 버린다는 걸 알아서."


 나는 그 말에 마음이 상했다. 감정을 다 아는 듯이 말하는 것도 싫었고 그것의 끝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몇 트러블이 있었다. 같이 쓰는 청소기 필터를 매번 내가 청소한다든지, 나는 가지도 않은 피크닉에서 나온 설거지를 내가 한다든지, 언니의 근무일에 언니가 하지 않은 일을 내가 하게 되는 그런 일이 반복됐다. 언니가 일을 내게 미루려는 인상은 받지 못했기에 나는 언니를 그저 무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하면 상처받는 쪽은 언제나 내 쪽일 거라고 어렴풋이 판단하며 거리 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창 저녁 파티를 하는데 매니저 오빠가 문어를 잡으러 포구에 가겠다고 내게 슬쩍 말했다. 

전근대적인 농담을 던지는 게스트가 유난히 많았던 그날의 파티가 조금 버거웠던 나는 차에 함께 올라탔다. 그날 우리는 시비가 붙은 무리의 사람을 말리고 경찰을 기다리느라 물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2시간가량 포구에 잡혀 있었다. 겨우 동네로 돌아와 게스트하우스 내리막길을 걷는데 

마당에 조그맣게 웅크린 언니가 보였다. 

언니는 울고 있었다. 

파티에 놀러 왔던 다른 게스트하우스 스태프가 언니를 달래다 말고 나에게 다가와 언니가 많이 놀랐다고, 밤의 도로에서, 밤의 물속에서 사고가 난 건 아닌지 계속 걱정했다고, 별일 없을 거라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 굳은 표정으로 도로를 한없이 내다보았다고 말했다. 


언니가 다가와 둘 다 왜 휴대폰은 두고 간 거냐고 물으며 애써 웃어 보였다. 

눈물이 옅게 맺힌 언니의 눈을 보는데 마음이 위아래로 크게 요동쳤다. 

언니를 무심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었던 나는 조금 놀랐고, 

언니를 걱정시킨 게 미안했지만 속에서는 환한 마음이 차올랐다.     

 그날 이후 우리는 잘 기억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깊이 친해졌다. 

아침 청소를 끝낸 후 콘치즈에 맥주를 곁들여 마시며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거나, 먹지도 못하는 매운 닭발을 시켜놓고 맥주 한 잔에 취해 바닥에서 함께 잠들거나, 3차를 가자고 떼쓰는 인사불성 게스트들을 한 명씩 맡아 침대에 뉘고 돌아서서 3차를 가거나, 소등을 끝낸 후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문 채 세상 딱 둘 있는 한량처럼 뒷짐을 지고 동네를 순찰하거나 하는,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언니의 곁에서 나는 언니의 생생한 마음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언니는 말 아닌 다른 것으로 마음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말 아닌 눈빛, 손짓, 몸짓으로. 언니는 즐거우면 웃거나 춤을 추고 슬프면 울고, 사랑하면 손을 잡곤 했다. 항상 말이 앞서는 나는 언니 앞에서 자주 무력해졌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언니를 따라 울고, 웃고, 손을 내밀었다. 언어 없이 소통하는 방법을 연습 없이 익혔다.

두 달은 빠르게 흘렀고, 나는 대구로 돌아가기로, 언니는 두 달을 더 머물기로 했다. 

새로운 스태프들이 온 날 우리는 인수인계를 한 후, 바다 근처 돌상에서 술을 마셨다.


 "새로 온 스태프 언니들 착한 것 같아, 언니랑도 잘 맞을 것 같고."

 

언니는 내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너라서 좋았지."

 

 나는 언니의 그 말에 세게 맞았다.

 떠나는 건 난데 내가 너무 서운해서,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을 도저히 지내던 동네에서 보낼 수 없어 옆 동네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언니와의 명징한 헤어짐의 장면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나는 언니에게 차마 함께 가자고 하지 못했다. 하지만 너 어디 가냐?라는 언니의 말 한마디로 우리는 어느새 애월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떡볶이를 먹고 바다를 걷다가 리조트 지하에 있는 노래방에 갔다. 

언니는 그날 유독 말이 없었다. 평소라면 이런저런 말이 많았을 나였지만 그날은 언니의 소통법을 따르고 싶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노래방을 가득 채우는 언니의 목소리가 좋았다. 노래 사이로 새어 나오는 울먹임이 마이크를 타고 생생히 전해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 소리를 모른 척하며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2시간을 꽉 채워 노래를 부르고 탄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울음을 오래 참아서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비스듬하게 언니를 쳐다보았다. 

양손으로 바를 잡고 삐딱하게 선 언니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잊지 않는다.




언니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언어는 소통에 있어 마음 다음의 것이라는 말을 건네고, 그걸 몸소 느끼게 해준 사람. 

언어 없이 마음을 나누는 일을 알려주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을 남겨준 사람.

 

 그런 순간들이 생각날 때면 아무 덧붙일 말이 없어 안팎으로 고요해진다. 

고요함으로 충분한 순간들을 이렇게 언어를 빌려 기억하려는 나는 어쩌면 언니를 언어에 가두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잊고 싶지 않아서. 불안해서. 이건 언니의 큰마음을 서툴게 담아내는 나의 좁은 사랑법이다.

 

 나는 나라서 이 방법을 쉬이 포기하지 못하겠지만 가끔 언니가 생각날 때면, 그해 봄 제주의 언니가 옥상에서 춤을 추고, 맥주 한 잔에 가볍게 취해버리고, 내 손을 잡은 채 엉엉 울던 모습이 떠오를 때면 꽉 묶여있던 매듭이 단번에 풀리듯 마음이 풀어진다. 

불안이 가시고 그 빈자리를 애정이 채운다. 


이건 언니가 남기고 간 큰마음이다. 

나의 좁은 사랑을 다독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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