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빌리엘리엇이 되겠지
[오늘 왜 울었나요?] #6. 뮤지컬 보고 울었어
<빌리엘리엇>은 시골 동네의 한 소년이 갖은 고난을 겪으며 결국에는 유수의 발레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영화 원작이며, 2005년 영국에서 뮤지컬 초연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뮤지컬 <빌리엘리엇>는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다. <빌리엘리엇>은 어린 배우들의 수준급 무용으로 유명하다. 매번 치열한 캐스팅을 통해 빌리 배우들을 선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 또한 무용 볼 생각에 신이 났지, 스토리에는 기대가 없었다. 아주 안전한 방식의 성장 스토리겠지, 했다. 하지만 나는 하하호호 웃는 어린이 관람객들 사이에서 수없이 눈물을 훔치며, 손수건이나 휴지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관극을 했다.
<빌리엘리엇>의 서사는 빌리의 성장기를 주축으로 진행된다. 성장물의 클리셰는 주인공에게 주어진 고난(집안 사정, 시대 상황 등), 빛나는 재능, 뜻밖의 조력자 등이다. 나는 '뜻밖의 조력자' 클리셰를 좋아한다. 이 조력 관계를 어떻게 그리느냐가 나의 성장물 콘텐츠의 호오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빌리의 조력자는 동네 발레 학원 원장 선생님이다. 빌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알맞은 교육을 제공하고, 빌리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격려하고 때로는 냉정해지기도 한다.
빌리가 합격한 발레 학교가 있는 도시로 떠나가는 날, 빌리는 발레 학원에 들려 선생님에게 '고향에 올 때마다 선생님 만나러 올 거예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러지 마라 빌리, 너는 나에게 배운 것을 다 잊고, 다 지워내야 해'라고 답한다. 그 대사를 듣는데 뼈마디가 시큰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꼈고, 눈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그렇다 잊고 있었던 성장물의 클리셰 하나가 있다. 그건 바로 이별이다. 성장하기 전 머물렀던 세상으로부터의 단절.
'이미 이해한 세계는 떠나야 한다.'(김소연, 식구들 中)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빌리엘리엇>의 선생님은 자신이 빌리에게 '이미 이해한 세계'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빌리에게 모두 다 잊으라고, 지우라고 말한 것이다.
이미 이해한 세계는 떠나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되고 또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한 세계란 얼마나 포근한가, 그리고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고여있음을 선택하고 싶어질 것이다. 권나무의 노래 가사처럼
'어쩌면 내 몸과 마음이 여기까지 자랄지라도 나 같이 가자 할 수 있어요.
그대가 날 사랑해준다면.'
나는 그간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돌아본다.
사실 선택이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해한 세계로부터의 떠남'은 내게 강제된 적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졸업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졸업을 거부하고 학교에 남는다고 하더라도, 친구들을 다 붙잡아 두지 않는 이상 내가 그곳에 남는다 하더라도 그 세상은 없는 세상이다.
취업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다 대구에 있는데 서울로 올라오던 가을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그때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내 노동으로 돈을 벌고 나를 먹이는 일이었다.
마음을 돌릴 수 없으니까.
누군가가 멀어지자는 제스처를 취할 때 몇 마디 말을 건넸지만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사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나에게도 필요한 이별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
그때마다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울음은 이상하게 맑았다. 마치 매일 유산소 운동을 하는 사람의 땀처럼. 한 점의 우울도 섞이지 않은 깨끗한 슬픔이었다.
나는 그 울음들을 기억한다. 나를 자라게 한 울음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의 30대에도, 50대에도, 70대에도 그 울음이 있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