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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으뜸 Sep 26. 2015

포도예찬 - 포도가 완벽한 이유

포도덕후의 뻘글 찬양기

나는 포도덕후다.

인도 여행에서 폭풍고열을 안고 돌아와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때, 포도 만큼은 계속 입에 들어오더라. 알고 보니 포도당이 많이 들어있어 수액 맞는 효과를 내는 거였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이때부터 포도에 대한 깊은 사랑이 시작되었다.



포도는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재배한 과일이다. 8000년 전 이집트 상형문자에도 포도를 재배하는 이집트인의 모습이 나온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부터 시작해 조선시대에는 활발히 재배했을 만큼 포도는 전 세계적이고 역사 있는 과일이다. 축구선수로 치면 '라이언 긱스' 정도


포도에는 공산주의적이면서도 자본주의적인 경쟁이 은밀히 숨어있다. 우선 포도알이 많아 여러 명이서 평등하게 나눠 먹을 수 있다. 누구에게나 기회 균등한 과일이다. 사과처럼 깎고 있는 사람에게는 집어먹을 시간을 주지 않는, 시작부터 기회의 격차가 있는 과일과는 다르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행복하게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다.


하지만 누가 빨리 먹느냐에 따라 더 많은 포도알을 쥐게 되는 경쟁의 요소도 있다. 여기서는 '포도씨까지 삼키기' 스킬을 가진 자가 경쟁우위를 차지한다. 그들은 포도알 하나 당 2초 만에 삼켜버리기 때문에, 씨를 뱉느라 한참을 씹는 이들보다 더 많은 배를 채울 수 있다. 그게 나다



대량생산시대와 포도



포도는 시중의 공산품에서는 얻을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숨어있다.


만약 당신이 커피나 감자칩을 좋아한다면, 365일 언제나 그것들을 먹을 수 있다. 대형마트든 집 앞에 편의점이든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포도는 여름 끝자락에 한 번에 쏟아져나온다. 물론, 겨울에도 저장포도를 먹을 수 있지만 그건 터무니없이  비쌀뿐더러 맛도 좋지 않다. 그러나 당신이 포도를 좋아하면 포도를 먹으면서 자연의 흐름을 이해하고 순응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량생산시대에 사는 우리는 무엇을 취득할 때 감사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잘 짜여진 유통 시스템 아래서 우리는 돈만 있으면 뭐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 돈 앞에 시간과 장소 따위는 중요치 않다. 이런 편리에 익숙해진 우리는 세상의 이치를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대량생산의 편의는 우리에게 때를 기다리거나, 역경을 이겨내거나, 인내를 하거나 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세상 일은 즉각적이고 체계적이어야 받아들이기 쉽지만, 자연에 그런 성질은 없다.


하지만 포도를 제대로 먹으려면 우리는 늦여름을 기다려야 한다. 대량생산에 익숙한 우리는 이 과정이 매우 불편하고 아쉽다. 하지만 이것이 원래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포도에 감사하고, 포도와 만나게 되는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고, 겨울이 옴과 동시에 포도와의 이별을 아쉬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운다.


인간이 언제부턴가 자연을 소유물로 인식하면서 모든 것이 망가졌다. <정글의 법칙>이 좋은 프로그램인 이유는 먹을 것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뼛속까지 도시인인 우리가 언제 그들처럼 음식을 구하느라 자연으로부터 진땀을 뺀 적이 있던가? 우리가 자연에서 얻는 것에 감사하지 않고 계속해서 오만을 저지른다면 인간의 종말은 비참해질지 모른다. 어차피 인간이 사는 곳은 자연이고, 자연을 삐치게 만들어서 좋을 일 없기 때문이다.



포도예찬



포도는 그 알찬 수분과 달콤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일말의 '수줍음'도 가지고 있다. 마치 자연의 산물에 감사라도 하라는 듯이 우리에게 조심히 다뤄줄 것은 당부한다. 조금만 세게 건드렸다간 포도알들이 다 떨어져나가기 때문에 다른 과일처럼 물에 박박 씻지를 못한다.


포도는 소화도 잘 되는 과일이라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20분만 지나면 또 먹을 수 있다. 몸에 좋은 음식은 쓰다고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몸에 좋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단언컨대, 포도는 가장 완벽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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