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무슨 ‘충’에 대한 얘기가 아니고
자기자신에게 그런 것 같다.
워낙에 히피들은 기성세대를 혐오해왔다.
여기서 말하는 히피란,
기타들고 홍대 원룸에 살고 밤엔 노포에서 시간을 보내는, 단지 그런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신의 나이나,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이나, 이 사회가 요구하는 그 무언가에 대해서
압박감을 견뎌내는 쪽이 아니라, 늘 자연스럽게,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탈출구를 모색하며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해왔던 사람이다.
그 모습은 사람 개개인마다 다르게 표출되어왔다.
나는 잡스가 죽을 때까지 히피였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인도에서 자아를 찾으러 7개월을 있다가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지만,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와 시선으로 살다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히피들은 기성세대를 늘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에 대해 틀렸다고 하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기성세대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게 하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자신들의 미래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모든 잘못과 실패에 대해 유보 받는다.
가진 것과 해냄이 없어도 그들의 무능력함이나 불성실함은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가졌기에 늘 보호받는다.
즉물적으로는 무시 받더라도, 본질적으로 무시받지 않는다. 젊음의 무기란 그렇다.
히피들은 이 무기를 더 강력하게 사용할 줄 안다.
그래서 나이든 것들, 고정관념, 효율적이지 않은 관습, 시대를 반영하지 않은 강요 등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그런 걸로 똘똘 뭉쳐진 집단을 영혼을 끌어모아 혐오한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겪지 못했던 ‘신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다.
히피들의 진짜 무기는 여기서 나온다.
68세대엔 텔레비전이 그랬고, 세기말에는 인터넷이었고 (지금은 SNS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많다)
히피 문화가 텔레비전의 탄생 이후에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전까지 젊음은 아동 노동착취나 당하는 대상이었지, 어른들을 감히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중요한 것은,
히피들이 나이를 먹고 있고 자신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기성세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히피들에게 이만큼 두려운 일이 없다.
그들에게 두려운 건 남의 평가가 아니라, 사실이다.
그들은 사실 앞에 강해지고, 사실 앞에 나약해진다.
그래서 나이 먹은 히피들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
신문화의 무기를 가진 존재 아니게 되는 것이,
새로운 젊음으로부터 무시당하는 기성세대가 되는 것이,
이 모든 게 사실인 것이 미치도록 두려울 것이다.
내가 11년 전에 인도여행에 만났던 그 많던 히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것을 생각하며 쓴 글이다.
자신들이 그 세대가 되기 일보직전이기 때문에, 여전히 히피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에 대해 형언할 수 없을만큼 공포스러울 것이다.
만약 공포를 느끼지 않다면, ‘강력한 에고와 방어기제로 자신은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너가 그토록 혐오했던 기성세대’로 탈바꿈 된 것이다.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