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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품쟁이 May 28. 2023

[5화] 니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

가보자. 갈 때까지... 한 번 가보자


챗GPT가 세상을 뒤흔들 거라는 2023년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 귀신, 영혼, 외계인, 시간여행자, 환생, 평행이론, 사후세계 기타 등등.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말 같게 쓰는 프로그램을 했던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작가가 천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믿거나 말거나 어떤 사건을 디테일하게 그리는게 즐거웠고 사건 당사자나 주변인 인터뷰는 애초에 불가능했기 때문에 (말그대로 미스터리이므로) 알아서 등장인물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진정한 창작의 세계에 입문한 나는 도서관 구석에 쳐박혀있는 각종 괴담집들에 몰두했고 아무도 대출 하지 않는 비인기 서적들을 미친듯이 탐독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진짜 이런 일이? 세상은 참으로 신비롭고 기묘하고 기상천외한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여튼 그렇게 창작열을 불태우던 어느 날. 나는 해외 뉴스 하나를 아이템으로 야심차게 내놓았다.

“뇌가 없는 여자가 있대요! 근데 평범한 사람들하고 똑같이 일상생활을 한대요!”

피디가 눈이 똥그래지거니

“그런 여자가 있어? 그거 하자!”

아이템이 한 방에 통과된 나는 신나게 원고를 썼다. 그런데.

“뭐야, 머리에 뇌 있는데?“

“있는데 의학적으로 기능이 전혀 없는...”

“아니지. 아예 뇌가 없어야지”

“뇌가 아예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럼 아이템 엎어야지. 머리에 뇌가 있잖아“

“아니 뇌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이죠!“

“그러니까 외계인 같은 건줄 알고 하라고 했지”

“외계인이 아니라 사람인데 뇌가 없는 거라니까요”


뇌에 기능 없음과 실제 뇌가 없음을 가지고 옥신각신 하던 나와 피디는 한시간 넘는 설전 끝에 합의 아닌 합의를 봤다. 뇌가 있지만 없는 거나 다름없는 신비한 여자. 이게 무슨 말장난인지 모르겠으나 뫼비우스 띠 같은 토론에 지친 나는 그 여자가 남자든 외계인이든 뭐든 좋으니 아이템을 털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때 그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우연히 본 옛날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때문이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이맘때면 생각나는 드라마.


“한 번만, 딱 한 번만 말 할 거니까 잘 들어.  너 좋아해. 니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 해. 정리하는 거 힘들어 못해 먹겠으니까 가보자 갈 때까지... 한 번.. 가보자”

  

고은찬과 최한결의 이 로맨틱한 씬에서 왜 이런 엉뚱한 생각이 터져버린 건지!


그나저나 커프는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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