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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기부기 Jul 14. 2024

어바웃 타임

시간을 돌리는 초능력은 없지만,

허억!


번쩍 뜨인 눈으로 시계를 보니, 13시 30분이였다.

아까 11시가  넘은 걸 보고 아이랑 뒹굴거리다 잠들었는데, 벌써 두 시간이 지나있다..


주말인 오늘, 아들에게 김포에 있는 곤충농장을 가자고 약속했다. 그 곳은 하루 4개의 타임슬롯을 예약제로 운영한다. 티켓팅과 동시에 결제를 해야하기 때문에, 무모하게 미리 예약은 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네이버 어플을 켜고 예약 자리를 보니, 역시..없다.

아들에겐 미안하지만, 내일 예약을 다시 시도해보리라.



역시나 잠에서  남편과 나란히 소파에 앉아, 대안을 검색한다. 날이 너무 더우니, 목적지까지 드라이브 하는 시간을 늘리고 (너무 멀면 안되니 경기도권으로!)

목적지는 자고 일어나 출출한 우리 가족의 배를 채워줄 맛집으로 찾아본다. 적당한 지역과 메뉴를 찾느라 머리를 굴리다가, 몇일 전 회사 동기에게 추천받은 영종도의 해물칼국수집을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이른 저녁을 먹을테니, 돌아오는 길에 위치한 식물원 컨셉의 야경도 좋은 카페를 들르는 것으로 코스를 정했다.


룰루랄라 이젠, 잠든 아이 덕분에 나에게 허락된 시간에 집중하며 나갈 채비를 한다. 개운하게 세수를 하고, 기초부터 선크림까지 화장품을 얼굴에 촵 바르다 보니, 뒹굴거리며 칙칙해지고 늘어졌던 볼살들이 촤아악 탄력있게 올라 붙는다.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시간은 노화를 불러오지만, 나 역시 그 시간을 노화를 역행하는 노력으로 쓰고 있다. 이 정도면 원래 속도로 늙지는 않겠지?' 바쁜 준비시간을 '아씨 빨리 해야 돼!! 애 깨기 전에!!'하며 쫓기듯 보내는 것 보단, 그 와중에도 준비하는 과정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하며 즐기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칼칼한 해물칼국수와 (사진엔 없지만) 눅진한 파전의 조합은 역시나 최고의 선택이었다.


물론 과거에는 이렇게 시간을 분/초 단위로까지 아껴 쓰며 의미 부여하지는 않았다. 궁극적인 변화는 워킹맘으로의 본격 생활을 시작하며 나타났다. 시간의 소중함은 내 삶의 소중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첫 번째는 내 인생을 자식에게 본보기가 되는 삶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지, 두 번째는 다른 생명체를 돌보느라 할애된 내 시간, 떼어 준 시간만큼 나를 위해 남은 시간을 밀도 있게 채워보자욕구에서 시작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수면 시간이 짧아지는 건 어쩌면 남은 삶의 시간동안 뭐라도 더 보고 하는 본능 때문이 아닐까? 특히나 한 시기를 무언가에 몰두하며 매몰되었던 시간을 가져본 사람은 더욱 그러한 욕구가 강할 것 같다. 

나 자신에게만큼은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더라도, 오감을 통해 경험하고 느끼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있다. 그것은 (건강한 신체가 전제된다면) 오롯이 시간만이 필요한 일이다.


시간의 본질은 이토록 상대적이다. 남에게 쓸 땐 고되고 힘들게 느껴지던 시간이 나를 위해 쓸 땐 너무나 가볍고 산뜻하게 느껴진다. 같은 시간이라면 육체와 영혼을 갈아 넣은 일에 대한 만족도보다, 나에게 집중하며 좋아하는 것을 보고, 듣고, 맛보며 보낸 시간이 훨씬 만족도가 클 수 있다.



자, 그러면 매일을 공평하게 흘러가는 시간(아마도 지구상 인류에게 가장 평등한 자원)을 어떤 태도로 보낼 것인가? 그건 저마다의 방식에 달려있고, 이건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엄청난 임팩트가 있는 요소라 생각한다. 


보여지는 모든 조건이 내가 살고있는 환경의 평균에 겨우 미치는 지극히 평범한 33살의 애기엄마인 나. 나도 예쁘고 싶고, 주목받고 싶고, 때론 즐기고 싶다. 가끔 자괴감으로 상처도 받고, 노화하는 모습에 두려워질 때도 있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겠지만, 누구보다 내 삶을 열심히 살고 있다. 나의 자존감은 끝도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아무도 그 사정을 알지 못한다. 그저 그것을 직시하는 나 혼자 천국과 지옥을 오갈 뿐이다. 고로, 아무도 모르게 (어차피 아무도 관심 없을 것이다) 나의 모든 시간을 구원하기로 작정했다.


아이와 함께 외출하기 위해 준비하는 일이 나를 단장하고  꾸미는 일이 된다면, 그것은 나의 여행이 될 것이다. 여행은 꼭 멀리, 오래만 가는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복잡스러워도 아이의 물건, 남편과 다니며 먹을 간식 등을 준비하며 오늘의 동선을 그려보고, 그 안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휴일을 만끽하는 나를 떠올린다. 함께 편안함을 즐기는 남편의 눈에는 그날따라 꾸민 내가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매일 같은 파자마/헐렁한 나시에 반바지 따위를 입고 동여멘 머리로 분주히 집안일을 하던 아내가 말이다.)


호기심을 가득 안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인간 핑크퐁♡ 자연과 가까워질수록 아이들의 눈은 더욱 초롱초롱 빛난다.
아들이 쫑알거리며 내려준 드립커피는 침이 많이 튀었지만, 그 어떤 커피보다 사랑스러운 맛이었다.


오늘 곤충농원에 가자고 했던 약속을 까맣게 잊은 듯, 아이는 해물칼국수를 야무지게 먹고 놀러온 카페가 맘에 드는지 재잘거리며 노는 중이다.


그래 이렇게,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한대로 되지 않아도

모든 이는 자기 시간 속에서 알아서 가장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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