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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기부기 Jul 09. 2024

뜨거운 것이 좋아!

난 진정 어른이 되어가는 것인가?

어렸을 땐 차가운 게 좋았다.


겨울이 아닌 모든 계절에 아이스 커피를 즐겨 마셨고,

추운 나라 여행을 가서도 차가운 와인이나 맥주를 마셨다.

음식은 탕/찌개/전골/심지어는 구워먹는 고기까지도 기피했던 것 같다.

나의 단골 메뉴는 무조건 덮밥/비빔국수/냉면 등이었고,

찬 국물에 나오는 붓카케우동이나 냉소바 같은 것도 즐겨먹었다.


한겨울에도 스타킹 없이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었고,

여름에는 찬물 샤워 후 쿨링젤을 온몸에 바른 채

헐벗다시피 잠을 자던 나였다. (이불 또한 절대 덮지 않았다.ㅋㅋㅋ)


패딩은 입어도 하의실종은 포기 못했던 어린 시절 ㅎㅎ (10년 전 화질 주의) 추억 돋아 꺼내보는 밴쿠버의 할로윈과 크리스마스


그렇다고, 내가 몸이 뜨거웠느냐!?


나는 몸에 열이 없는 체질이었다.

체질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진 않았지만,

혈액 순환이 좋지 않은 편이었던 것 같다.

내 손과 발은 항상 차가웠고, 여름에 땀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속도 겉도 냉한 인간이었다.

열기라고는 내 몸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 내가, 근 3년에 걸쳐 완전히 체질이 바뀌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아마도 임신과 출산과 육아일테다.




바야흐로 우리 '물꼬(: 아들 태명)'를 임신했을 때,

효자 아들은 엄마에게 먹덧을 선물했다.

임신 초기엔 메스꺼운 속을 달래기 위해 먹었는데,

중-후기로 갈수록 먹성 자체가 좋아지며,

입덧은 미세할 정도로 사라져버렸다.

혼자 김치찌개 한 냄비에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우던 나는 만삭까지 체중이 15kg 정도 불었다.


그 때부터였다. 몸이 무거워지니, 몸뚱이를 이끌고 다니는 일 자체가 운동이 되었다.

몸이 어쩔 수 없이 칼로리를 태우게 되니,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났다.

아 그런데... 땀 흘리는 게 이렇게나 개운한 일이었나?

땀을 빼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한 후의 기분은,

땀 한방울 안 흘리고 찬 물로 샤워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시원함이 느껴졌다.


몸에 열이 생기니, 컨디션이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몸의 면역력을 높이려면 기초체온을 높여줘야 한다는 게 정말로 맞는 얘기인 듯,

힘든 환경에서도 신체와 정신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더욱 좋아졌다.

좋은 컨디션을 누리다 보니, 나도 이젠 찬 것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오히려 뜨거운 것에 맘이 가기 시작했다.


늘 먹고있는 임산부. 임신 후기로 진입하며 시부모님께서 기획해주신 갯벌 체험중에도, 조개 캐는 남편 옆에서 열심히 컵라면을 먹고있다 :)



출산 직후 10kg 정도는 바로 쫙 뺐지만,

나머지(마의 5kg) 지방이들은 나의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고, 공생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지방이들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내 몸엔 열이 많고, 땀도 쫙쫙 잘 난다.


육아는 무조건적으로 체력이 뒷바라지를 하기 때문에 (정신력 또한 체력에서 비롯된다.)

1순위를 건강과 체력으로 두고, 이를 강화하는데 엄청나게 집착하게 된다.

 속 온도가 0.5ºC 올라간다 느끼면, 컨디션은 120% 상승한다.



이젠 애매한 계절에는 (더워 죽겠는 여름이 아니면)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특히나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 따끈한 아메리카노를 홀짝 홀짝 들이켜주면,

기름기가 쏴악 녹아내리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몸을 항상 뜨듯하게 보온하기 위해 여름에도 얇고 긴 옷을 입게 되었다.

샤워 또한, 찬물로 하면 한기가 드는 느낌에 몸서리쳐지고

뜨듯한 물로 마사지 후에 미지근한 물로 마무리해주면 몸이 충분히 풀린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뜨끈한 국물로 속을 채우고 덥히는 게 좋다.

예전엔 후보에도 올리지 않았던 추어탕/육개장/대구탕/설렁탕 등을 점심 메뉴로 선택하고,

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생각만 해도 든든하다.ㅎㅎㅎ)



여름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엄마,

계절 불문하고 뜨끈한 국물을 찾는 어르신들.

이해가 가지 않던 그 삶을 공감하게 해 준,

또 한 번의 새로운 변화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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