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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r 27. 2024

더듬이 - 4

부제: 고시원 블루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컵밥을 사 먹기 위해 길거리 노점상 앞에 줄을 서 있던 때였다. 내 앞뒤로 각각 한 명의 여성이 서 있었다. 나는 혹여나 그것이 튀어나올까 마음을 졸이며 얼른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내 순서가 돌아오기 전, 뒤편에 서 있던 여성이 소리를 내질렀다.


  - 엄마아!!

  뒤를 돌아보는 나를 바라보던 여자의 시선에 두려움과 혐오가 동시에 스쳤다.

  곧이어 앞의 여성이 나를 쳐다보며 괴성을 질렀다. 여자는 급기야 매고 있던 가방을 내 쪽으로 휘둘렀다. 그러나 허공을 향해 솟아오르던 가방은 그것이 아닌, 내 가슴팍을 내려친 후 무심히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컵밥집 사장의 시선이 여자의 머리를 넘어 내 쪽으로 향했고, 내 몸 위를 돌아다니고 있는 그것을 포착했다.


  - 씨팔, 저게 뭐야!

  컵밥집 사장은 욕까지 동원된 외침과 함께 삿대질하듯, 집게손가락 끝을 먼 방향을 향해 거칠게 흔들어댔다. 나는 밥알 한 톨 구경도 못 한 채 황망히 고시원으로 향해야 했다. 고시원에 돌아온 후 놀란 시선들이, 공포와 혐오가 가득했던 얼굴들이 눈앞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괴성을 지르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동안, 내 입가에는 짓궂은 미소가 피실피실 새어 나왔다.


  문제는 소문이었다. 소문은, 대학가의 좁은 바닥에서 빈대나 바퀴벌레의 번식력만큼이나, 중학생 시절 교실에서 파도치듯 밀려들던 괴성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내가 미처 대처할 틈을 주지 않았다. 괴상한 벌레를 달고 다니는 남자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일대로 퍼져나가는 데에는, 그 소문이 내 귀까지 흘러 들어오기까지에는 채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은, 고시원 주인아저씨와 함께 있던 자리에서였다.

    

  주인아저씨는 늘 친절했다. 반듯하게 빚어놓은 메주처럼 단단해 보이는 사각형의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무심한 내 시선에도, 며칠 머리도 감지 않은 초라한 행색에도 "어디가, 총각?"이라 말하며 하이톤의 목소리를 실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물론, 손님을 대하는 몸에 밴 매너 같은 것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저 친절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저씨에게 다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저씨는 자신이 세운 규율에 지나칠 정도로 경도된 사람 같았다. 정해진 시간에서 단 일 분도 어긋나지 않은 시간에 아침 비질을 하고, 같은 표정으로 현관 입구에 앉아, 오가는 학생들을 보며 토씨 하나 바뀌지 않는 인사말과, 늘 일정한 목소리 톤으로 말을 건넸다. 그러다 이따금, 고시원 거주자들의 지인으로 보이는 낯선 이들이 등장할 때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럴 때면 아저씨의 시선이 집요하도록 낯선 이의 뒤를 좇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 아저씨는 종종 <터미네이터 2>에 등장하는 ‘T-1000’처럼 보이기도 했다. 웃고 있는 표정 그 자체가 기본값인 양 변함없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로봇처럼. 그런 아저씨의 표정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거기엔 그 어떤 특별한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것 같았고, 나는 굳이 마음 쓸 일이 없었다.


  그러던 아저씨가 어느 날부터 나를 보며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나에게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가볍게 목 인사를 하면 어설프게 눈을 찡긋하다가도, 이내 염탐하는 눈이 되어 나를 훑었다. 나는 마치 뒤통수에 더듬이라도 달린 것처럼, 아저씨의 눈이 나를 향해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익숙했던 것에 생긴 균열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분명, 직접적인 말이 아니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마음들이 만들어 낸, 공기 속에 부유하며 내 마음을 조종하는 어떤 힘이.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유도한다. 실체가 없기에 더 거부하기 힘든 오라를 지닌다.


나는 내 방안의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아저씨를 피해야만 했다. 고시원 내의 작은 부엌도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나는 점점 더 방으로 숨어들었고, 철저히 혼자가 되어갔다. 그럴수록 식사를 건너뛰기 일쑤였고, 나날이 체중이 줄었다.

 그것의 몸집은 눈에 띄게 커져 더 이상 주머니 속에 감추고 있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내가 방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그것의 몸집이 커지는 것 같았다. 흡사, 그것의 성장 속도와 내가 홀로 있는 시간이 비례 관계를 이루며 맞물려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하루에 한 번쯤, 주린 배를 참지 못하고 그것을 잠시 방에 남겨 둔 채, 부리나케 편의점을 다녀오곤 했다. 고시원 입구에서 아저씨를 맞닥뜨린 것도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에서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잽싼 발걸음으로 돌아서 가려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저씨의 시선이 내 뒤를 좇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바쁜가, 총각?

  얼음처럼 서 있던 아저씨는 이내 무언가 작정한 표정으로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 아, 아니요.

  - 방으로 가서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

  - 아저씨 방이요?

  - 아니, 총각 방 말이야.

  - 정리가 안 되어 엉망인데….

  - 그래서 가보자는 거야.

  - 예? 무슨 일 있으세요?

  - 가보면 알아.

  아저씨는 기침을 크게 두어 번 하더니, 커다란 검정 봉지 하나를 챙겨 들고는 나를 앞서 걸어갔다. 내 방문 앞에서 선 아저씨는 봉지를 든 손에 힘을 준 채, 흘깃흘깃 뒤를 돌아보며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불현듯 마음이 조마조마해졌다. 아저씨가 그것을 발견하게 되면 나는 이곳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돈으로 더 나은 곳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것이, 구석진 곳에서 꿈쩍하지 않고 숨어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내가 문을 열자마자 아저씨는 봉지를 들이밀며 방으로 들어서더니, 이내 매서운 눈빛으로 방 전체를 찬찬히 훑었다.


  - 나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

  분노가 서린 듯한 아저씨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접한 나는,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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