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뉴 Mar 28. 2024

더듬이 - 5

부제: 고시원 블루스

- 무슨 말씀이세요?

  어리둥절한 내 모습을 보며 인상을 구기던 아저씨가, 문에 붙어있는 ‘고시원 규칙’을 가리키며 또박또박 말했다.


 - 이곳은 반려동물 반입금지야. 총각이 그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네요.

  나는 아저씨의 손끝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반려동물이라면, 강아지와 고양이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 얘기 다 들었어. 이상한 걸 키우고 있다지?

  이 말을 하는 아저씨의 표정에서 어쩐지 소정의 웃음이, 컵밥집 사장의 눈빛이 떠올랐다.


 - 더듬이가 있는 녀석이라고? 다른 건 몰라도 더듬이가 있는 것들은 안 돼. 항상 그 더듬이가 문제라고!

 ‘더듬이’를 언급하는 아저씨는 평소와 다른 높이의 목소리였고, 그런 아저씨의 모습은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그때였다.


  - 없애!

  그것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침대 아래로부터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아저씨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가 커다란 검정 봉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봉지가 바닥에 닿자마자 철제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봉지 입구가 열렸고, 정체 모를 스프레이 한 통과, 쇠로 된 커다란 도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원을 가꿀 때 쓰는 가위와 유사하게 생긴 도구는, 번뜩이는 날이 무척이나 날카로워 보였다.


  - 이걸로 뭐 하시려고요?!

  아저씨는 내 물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창문도 열지 않은 채 방안 가득 스프레이를 분사하기 시작했다.


 - 뭐 해? 없애라고!

  또다시 침대 아래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에 홀린 나는, 미처 생각할 새도 없이 아저씨에게서 스프레이를 빼앗아 방구석으로 던졌다. 깡, 하는 소리가 방을 울렸다. 아저씨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더니, 이번에는 예리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며 정원 가위 같은 도구를 주워 올렸다. 그 순간, 퍼지는 강렬한 향을 참지 못했던지 그것이 침대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이, 녀석은 내 종아리 만한 크기로 자라 있었다. 녀석을 발견한 아저씨가 두 손으로 요상한 도구를 움켜쥐고 그것의 더듬이를 향해 쉭쉭, 바람 소리를 내며 날을 휘둘렀다. 나는 도구를 잡아채려 했으나, 아저씨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내가 가까스로 도구를 뺏어 들어 반대편 구석을 향해 내던지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저씨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오른손으로 아저씨 입을 틀어막았고, 동시에 그것이 아저씨의 발 위로 기어올랐다. 이내 길쭉한 주둥이를 아저씨의 다리 깊숙이 꽂아 넣은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아저씨의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얼마 후, 그것은 구겨진 종잇장처럼 쪼그라든 아저씨를, 거대한 입으로 변해버린 주둥이로 삼켰다. 그러자 그것의 덩치가 내 키를 넘볼 정도로 순식간에 자라났다. 그것의 더듬이가 마치 기다랗고 날카로운 사무라이의 장검처럼 나란히 곧추섰다. 아저씨를 삼킨 그것의 주둥이 밖으로 아저씨의 머리카락들이 흡사 축 늘어진 더듬이처럼 삐져나왔다. 거대해진 그것은 이제 내 흔들리는 감정을 감지하는 것 같았다. 자유로이 공기를 가르는, 칼날 같은 더듬이가, 내 몸 구석구석 치명적 상처를 낼 것처럼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그것은 내게 속삭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녀석의 속삭임이 나를 쉴 새 없이 옭아맸다.

  

- 불안해할 것 없어. 없어져야 할 인간을 없앤 것뿐이니까. 얼마 남지 않았어.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기는커녕 너를 두려워할 날이.

  나는 입처럼 변해버린 그것의 주둥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제야, 잊고 있던 불안감과 공포가 나를 집어삼킬 듯 엄습했다.


  내 살갗에서 떨어진 부스러기와 피를 삼키면서 그것은 몸집을 불리고 또 불렸다. 고시원 방이 비좁아 보일 정도로 자라난 그것을 보고서야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머지않아 경찰이 들이닥칠 것이다. 사라진 아저씨에 대해 내게 질문하고 추궁하며 흔적을 찾으려 들 것이다. 내가 감추려 애써도 감춰지지 않을 것이다. 아저씨의 기이한 도구도, 내가 어디에 숨기든 곧 그들 손안에 들어갈 것이다. 내가 그들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도망쳐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빈대처럼 숨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기까지, 아니, 내가 그것이 만들어놓은 상황에 완벽히 장악되기까지 겨우 한 달 남짓 걸렸다. 그것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를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내 머리가 그 사실을 깨우치기 전에 내 몸이 이미 그것에 굴종했다. 나에게 더듬이를 휘두르던 인간들을 실컷 비웃어주고 싶었건만, 책상 위를 빽빽이 채워가는 더듬이의 행렬을 보며 나는 소용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것이 더 이상 몸집을 불릴 필요가 없음을, 내 피와 살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나는 알아차린다. 내가 의지했던, 보이지 않는 미래는 더 깊은 어둠 속에 잠긴다. 지금 그것의 아래에 깔린 수험서에는 내가 보다 만 시인의 시가 적혀 있다.     


  ‘…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살갗과 피를 내어준 채, 굶주린 지 오래된 입으로 이렇게 읊조리는 내 몸이 점점 쪼그라든다. 후회가 폭풍처럼 밀려든다.


  그것은 나와 함께 존재했다. 나는 결코 적극적으로 그것에 나를 내맡긴 적이 없다. 그저 그것의 존재를 묵인하며, 공생했을 뿐이다. 이런 결말을 맞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중얼거리고 있는 내 입이 점점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다. 몸이 천장과 멀어져 바닥에 가까워진다. 내 머리 위로 가늘고 긴 무엇인가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나는 시야에서 점차 멀어지는 책상 위를 올려다보기 위해 힘겹게 몸을 위로 빼며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지른다. 그러나 아무리 소리쳐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는 이제 없다. 나에겐 더 이상 무엇인가를 할 힘이 없다. 할 수 있었을 때 그러지 않기로 선택한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음을 처절하게 느낄 뿐이다.


  그것의 더듬이에서 떨어져 나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불어난 그것의 분신들이 책상 전체를 뒤덮는다. 서로의 다리에 다리를 붙이고, 더듬이를 칡덩굴처럼 엉키어 하나가 되어간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떼어놓지 못할 만큼, 철벽처럼 단단히 굳어져 간다. 잠시 후, 칠흑처럼 새까매진 책상 가운데로부터 하얀 선이 서서히 번져 책상 아래 바닥까지 흐물흐물 흘러내린다. 선이 점점 영역을 넓히며, 나를 향해 새하얗게 웃는다. 어쩐지 그 웃음이 내 미소를 닮아있다. 욕지기가 올라오지만 나는 가까스로 눈만 껌뻑인다.


  이윽고, 눈앞이 아득해지며 나는 정신을 잃는다. 의식이 암흑 속으로 빠져드는 그 순간에야 나는 깨닫는다. 저것의 징그럽도록 끈질긴 생명력을. 그리고 그 생명은, 다름 아닌, 내가 탄생시켰음을….     


- 끝

매거진의 이전글 더듬이 -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