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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un 03. 2024

사라지는 것들을 지켜보며 글을 쓰는 마음

기어이 아파트가 들어설 모양이다.

이른 아침 눈도 뜨기 전부터 건물을 무너뜨리고 터를 다듬는 기계 소리가 요란하다. 밖을 내다보니, 며칠 전까지 온전히 자리 잡고 있던 가게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떡집이었다. 올망졸망한 집들과 인심 좋은 식당들이 죄다 쫓겨 나가고 쓸쓸히 남은 터를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었던 것은.



파헤쳐진 대지 위에서 건물 잔해를 치우느라 분주한 포클레인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후.. 한숨이 나온다. 마지막까지 꿋꿋이 버티고 있어 주길 바랐던 떡집이었건만.. 초록의 풍경 가운데 곧게 서 있던, 정겨웠던 떡집이 자취를 감추자, 아직 들어서지도 않은,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의 압도적 무게감이 느껴져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창을 열면 벌써부터 날아 들어오는 먼지가 예사롭지 않다. 청소를 한 뒤 물에 담근 걸레에서, 미세한 알갱이들이 섞인 구정물이 끝도 없이 흘러나온다. 떡집 뒤로 파르라니 펼쳐져 있던 논밭도 조만간 볼 수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이 나라가 징글징글해지려 한다.



아파트 공화국은 빈터에, 일상의 여백에 자그마한 인내심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휴식을 취하는 땅에도, 사람에게도 무엇이든 채워 넣으라고 강요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이러다 정말 영화 ‘가타카’에서나 보았던 삭막하고 황량한 세상이 도래하는 건 아닐까 우려스러워진다.



인구는 자연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는데, 올해 출산율은 역대급으로 최저를 찍을 거라는데 왜 이리 아파트 건설에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진심일까. 학교를 빙 둘러싸고 위험천만하게 지어지는 대단지 아파트를 기어이 허가해 주는 그들이 야속하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보다 건설회사의 존속과 번영이 더 가치롭게 여겨지는 듯한 이 분위기가 과연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머지않아, 여리여리한 푸르름이 물러난 자리를 견고한 회색빛이 무지막지하게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갑갑한 마음을 어쩌지 못한 채, 나는 장바구니를 들고 집을 나선다.



오래간만에 들른 마트 1층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있다. 나는 어리둥절해진다.

‘완전히’ 변화한 이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니, 그 많던 아동복 매장들이 보이지 않는다. 불과 몇 해전까지 아동복 코너는 활기가 넘쳤다. 동네 마트지만, 굳이 시내로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아이들과 가게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그랬던 공간이 몇 년 사이, 덩치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건강한 에너지를 발하던 공기가, 병든 자의 몸처럼 쭈그러들어 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들은 구석으로 밀려나있거나, 더 이상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창백한 속살이 드러난 마트 한편,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문구 하나가 내 시선을 불편하게 만든다. ’스크린골프연습장 입점 예정‘. 하… 단전에서부터 한숨이 솟구치는 것 같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옛 것들이 사라진 자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로 채워지고 있지만, 공허한 마음은 커져만 간다. 불현듯 마음속에 ‘저항감’ 같은 것이 고개를 쳐든다. 그래. 이 놈의 인생 그저 부드럽게 흘러가는 법이 있던가. ‘잘 저항’해야 그나마 살아있는 듯 살 수 있질 않나. 지치지 않고 우리를 끌어내리려 하는 어떤 힘에 있는 힘껏 맞서며 나아가는 삶. 그렇게 굽히지 않는 마음으로 행복을 찾으려 애쓰는 하루하루. ’흐름’ 혹은 ‘순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힘은 줄기차게 그러한 저항의 마음을 무너뜨리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흐름을 거슬러 굳세게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진정 숨 쉬고 살아가게 하는 것일 테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이 숨 막히는 갑갑함을 어떻게 견디고 거슬러 나아가야 할까.

괜스레 생각이 많아지는 휴일 오후, 일단 모니터를 켠다. 마음을 찬찬히 다진다.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 단단해진 두 손을, 키보드 위에 호기롭게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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