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전업작가가 되고픈 욕망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는, 꽤 이름 있는 작가들 중에서도 오롯이 글쓰기로만 생계를 이어가는 이는 흔하지 않다.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데, 그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 이번 북토크의 주인공인 김호연이다.
아마도 그의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21년에 선보인 <<불편한 편의점>>은 ,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2022년 속편 출간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재까지 총 150만 부 가까이 판매된 이 작품들로 김호연은 명실상부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가 최근,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소재로 한 새 소설, <<나의 돈키호테>>를 출간하며, 동네 뒷골목의 한 자그마한 서점에서 북토크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부리나케 참가 신청을 했다.
작년 여름 참석했던 장류진 작가의 북토크처럼 넓은 공간에서 열리는 행사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처럼 작은 공간에서 작가와 독서인이 함께 호흡하며 진행되는 북토크를 선호한다. 마치 살롱 모임에 참석한 듯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작가의 표정, 손짓까지 생생하게 지켜보며 작가에게 궁금한 것을 마음껏 질문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유명세를 얻은 작가가 되었음에도 작은 동네 서점에서 북토크를 연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알고 보니, 무명 시절 자신을 알아봐 준 서점과의 의리로 이번 행사를 열게 된 것이었다.
북토크는 '스토리텔러의 삶과 일'을 주제로 내세우며, 최근 세계적 위상을 떨치고 있는 한국의 문화콘텐츠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불편한 편의점>>(이후 "불편"으로 지칭)도 현재 국내뿐 아니라 대만, 일본, 미국,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로 수출되어 판매고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그의 첫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가 1만 부 넘게 팔리며 1억이 넘는 수익(여기에는 지적재산권 판매료도 포함된 듯하다)을 올렸다는 그의 말에, 여태껏 150만 부가 판매되었다는 "불편"으로는 도대체 얼마를 벌어들였을까, 속세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문학 작품을 대하며 돈을 떠올렸다는 사실에 순간 마음의 가책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내 ‘대중소설'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경제적인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씩씩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무명'이라는 이름을 떨쳐버리고, 자타 공인의 유명작가가 된 그가 내심 부럽기도 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유명세에 가려진 처절한 고뇌, 절절한 갈망과 뼈를 깎는 노력에 경외심이 드는 동시에, 몹시도 겸허한 마음이 되었다. 그는 그의 에세이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를 읽고 난 후에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계속 앞으로 나아가도 좋다고 말했는데, 이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싶으면서도, 책을 읽고 나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어떡하나, 약간의 두려움도 밀려들었다.
최근 북토크 행사에 참여하며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작가들이 꽤 달변가라는 사실이다. '문학성'이 있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신춘문예가 중요시한다는 문학성에 얽매인 작품보다는 대중에게 다가가는 소설을 추구하는 김호연, 박상영, 정명섭 등의 작가는, 연예 프로그램 MC를 맡아도 손색없겠다 싶을 정도로 재치와 유머감각이 살아있는 진행으로, 시시때때로 참가자들의 웃음과 공감을 자아낸다.
이번 북토크에서 김호연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신춘문예 등의, 정해진 공식적 경로를 통해서만 작가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통로를 통해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작가들이 등장하고 있는 요즘의 한국 문학계는, 21세기에 발맞추어 대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첫 소설로 대박을 터뜨린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이미예 작가나, 이곳 브런치에서 역시, 처음 쓴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로 멋진 행보를 보이고 있는 황보름 작가가 대전환의 시기를 뒷받침해 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호연 작가도 20년이 넘는 시나리오 작가 경력, 출판사 소설 편집자의 이력을 뒤로하고 전업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는데, 단편보다는 장편, 문단에서 환영할 만한 작품보다는 대중들에게 어필할 소설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문장은 이해하기 쉽고, 머릿속에 영상이 그려질 만큼 생생하며, 책장을 덮고 나면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연극이나 드라마를 보고 난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인지 그의 전작 <<망원동 브라더스>>는 현재 연극으로 상연 중이고, "불편"의 경우에도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의 소설은, 다양한 콘텐츠의 원천소스로써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소설 쓰기를 포기하려던 순간 그에게 불현듯 찾아온 기회에 관한 것이었다. 처녀작 <<망원동 브라더스>>로 꽤 성공적으로 데뷔했지만, 그 이후 그에게 고질적 목디스크를 안겨준 <<연적>>, <<고스트라이더즈>>, 무려 550쪽에 달하는 <<파우스터>>가 연이어 실패하며, 그는 소설 쓰기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던 찰나,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지던스에 입주작가로 선정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그는 "불편"과 이번 신작 <<나의 돈키호테>>를 쓰기에 이르렀다. 그의 말에, 언젠가 들었던 배우 김명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김명민 배우도 계속되는 실패로 연기를 포기하려던 마지막 순간에 <불멸의 이순신>에 캐스팅되었고,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그해 KBS 연기대상을 받은 이후, <하얀거탑>과 같은 훌륭한 작품을 거치며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았다. 중요한 건 역시, 끝까지 버텨내는 끈기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마음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되는 지점이었다.
김호연은, 그와 함께 성장해 온, 작은 출판사 '나무옆의자'와 "불편"을 출간하며, '만 권만 팔아도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앞선 작품들에서 맛본 좌절감으로 목표치가 낮아진 탓이었을 거다. 그 자신은 오히려 전작들에 대한 기대치가 무척 높았고, 그만큼 실망감도 컸었다고 하니, 그로서는 한 번 더 패배감이나 좌절을 겪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한 번 더 자신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었고, 대중은 그가 상상조차 못 했던 반응을 보여주며, 그에게 소설가로서의 성공적 결실을 안겨주었다.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그 모든 어려움에도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네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결정하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린 중요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작가 김호연에게 그의 작품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글을 쓴 것은 작가 자신이나, 세상에 태어난 이후의 작품은 생명을 얻은 유기체로서 스스로 움직이고 나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생명체가 된 작품들은 이제 자가 호흡을 하며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각 나라에 맞게 조금씩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가며.
북토크의 마지막은 질문과 답변 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도 그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소설) 작가를 꿈꾸는 내게 그는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을 많이 읽어보는 것이라고. 그러다 보면 점차 작품을 보는 눈이 생긴다고. 자신도 그렇게 홀로 글을 쓰며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그의 말을 곱씹어 보며,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를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글쓰기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지 않기를 바라며, 조만간 출간될 그의 에세이에 실릴, 아직은 이곳 브런치에 남아 있는 그의 글들도 완독 하리라 다짐해 보며. 브런치 공모전에서 탈락했다는, 출간과 함께 곧 이곳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그의 이야기들을.
작가 사인 시간에 흥미로운 장면 하나를 목격했어요.
불편한 편의점 1,2는 메가 히트작이라 여러 에디션이 나왔는데요, 에디션 별로 모두 구입해 사인을 받는 독자분도 계시더라고요.(제 앞에 서 있었던 분이라 상세히 봤네요.^^) 열 권 가까이 되어 보이는 책들을 쌓아두고 사인을 받기에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는데 같은 작품을 여러 권 구입한 거였어요. 김호연 작가의 표정이 환해졌음은 당연하겠지요. ㅎㅎ
예전에, 좋아하는 아이돌의 앨범을 10개씩 구입하는 친구는 봤는데, 책을 이렇게 구입하는 분도 계시는구나 싶어 신기했어요. 그런데 저만 그런 건 아니었나 봐요. 김호연 작가도 '출판사에서 에디션을 남발하는 것 아닌가 염려스러웠는데, 이렇게 구입하시는 분을 직접 뵈니 잘한 것 같다.'라며 앞으로 출간될 책들도 부탁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여러분도 같은 작품을 에디션 별로 여러 권 구입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런 분들이 많으시다면 출판계의 불황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