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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un 24. 2024

'정상(正常)'에 관한 두 이야기

정상(正常):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

#1. 개인적인


나는 ‘정상'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종종 쓰곤 한다. 곰곰이 돌이켜보면, 주로 이 표현을 의문문 형태에 담아 상대방에게 전달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그게 정상이냐?"처럼.

몇 해 전, 한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이 말이 소환되었는데, 그때 상대방의 반응이 나를 꽤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는 내게 훈계라도 하듯, 정색하며 몹시도 단정적으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정상, 비정상 같은 게 어디 있어?! 이 세상에 그런 건 없는 거야!"

그러니까 그의 말에 따르면,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개념 같은 건 지구상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그는, 어떤 사람이나 사건 혹은 현상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 짓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다. 거기에 내가 동의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이고. 그보다 나는, 나의 말에 대한 다소 과장된 그의 반응이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다소 불쾌감을 준 그의 태도에도, 그의 의견이 비록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굳이 그의 면전에서 반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나에게는 다소 이상해 보이지만, 자신이 한 말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던 건, 그의 말이 최종적으로 자신만의 ‘생각 여과기’를 통과해 나온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꽤 오랜 시간 그와 대화를 나누어온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그의 과잉 반응은, 스스로의 숙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즐겨보는 매체에서 들었던 다른 이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수용한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근래에 우연히 나눈 대화에서 내게로 날아든 그의 말 때문이다.

  "... 정상이 아니야..."

최근 있었던 어떤 상황에 대해 그는 한심하다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정상, 비정상 같은 건 없는 거라며?"

의아해진 내가 대꾸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얼버무렸다. 현재 본인의 말로 과거 자신의 말을 부정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내게, 그는 한 마디의 부연 설명도 하지 못했고, 어쭙잖은 변명조차 할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저 창피해진 그 상황에서 가능한 한 빨리 도망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 순간 나는, 예전에 그로부터 들었던 핀잔이 억울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그가 진지한 대화를 나눌 만한 상대는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혹시나 나도 그러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었을까 되짚어 보며 결코, 지금의 내 말로 과거의 나를 반박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2. 덜 개인적인


연일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로 지칭) 게시판이 난리법석이다. '해학의 민족'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조롱과 재치 넘치는 질문들이 공공기관의 게시판을 달구고 있다. 국민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 임무인 권익위에서, 영부인의 명품백 수수와 관련해 '직무관련성이 없으므로 신고대상도 위법도 아니'라고 발표한 지난 12일 이후, '공직자 부인에게 ooo만원 상당의 금품을 전해도 괜찮냐'는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 우리 딸이 명품백을 너무 좋아해서 골치가 아픈데, 권익위 직원과 결혼해서 명품백을 받아도 상관없는 것이냐’는 질문까지 눈에 띈다. 간혹 정말 궁금해서 묻는 이도 있겠으나, 절대다수가 국가기관의 비상식적인 결정에 대한 분노를 조롱과 해학에 담아 표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익위가 어떻게 답을 할지, 주말에 발표될 로또번호만큼이나, 궁금하다. 지금의 이 상황을 지켜보며, 짧은 웃음 뒤에 이어지는 긴 씁쓸함을 어찌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위 사태를 지켜보며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학교현장에서 겪었던 웃지 못할 기억들이 소환됐다.
스승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 반 아이들이 함께 준비한 케이크 한 입도 거절하며, 반 아이들이 작은 케이크를 N등분해서 먹는 것을 지켜보았던 스승의 날, 수고하신다며 아이가 용기 내 수줍게 건네던 캔커피 하나도 박절하게 돌려보냈던 순간, '생수 한 병도, 카네이션 한 송이도 절대 안 된다'며 학생들에게 으름장 놓던 나 자신의 모습이. 청렴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만, 일선현장이 지나치게 각박해진 건 아닐까,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들면서도, 그래도 이 사회가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담임선생님에게 촌지를 건네는 일은 허다했다. 아이의 학교생활에 그다지 관심 없었던 나의 엄마마저도, 새하얀 봉투가 끼워진 책을 내게 건네며 선생님에게 선물을 꼭 전하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선생님께 책을 전달하기 전 등굣길에서 봉투를 슬며시 열어보았고, 그 안에 고이 숨어있던, 빳빳한 초록지폐들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돈으로 내가 살 수 있는 먹을거리, 장난감과 문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대범하게 한 장을 슬쩍하고 나머지를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그 와중에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존경을 받는 선생님들은 돈을 받아도 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 '선생님'에는 나의 외삼촌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승의 날이면 이웃에 살던 외삼촌은 학부모들에게서 받은 선물들을 방 하나 가득 펼쳐놓고 나를 부르곤 했다. 엄마 아빠에게 가져다 줄 물건을 고르라는 의도에서였다. 손수건, 양말, 책, 넥타이, 벨트 등등 종류도 세기 힘든 선물들로 들어찬 삼촌의 방은 흡사 보물섬이라도 된 것 같았다. 꼬맹이였던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지만, 초록색 돈도, 선물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교사가 되면 꽤 부자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우리 삼촌은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어린 나는 잘 몰랐지만, 엄마가 내게 건넸던 책을 비롯한 그 모든 선물들은 분명 '내 사정을, 내 아이를 잘 봐 달라'라는 뜻이 담긴 뇌물이었다. 선물을 받는 당사자와 그가 속한 집단을 부패하게 만들고야 마는.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나는 그때의 선생님들이 여전히 몸담고 있던 학교에서 배웠다. 부패한 집단이 이끄는 나라는 결국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그 옛날 로마 제국처럼 말이다.



캔커피 하나에도 손사래 치게 만드는 분위기가 공직사회에 자리 잡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했건만, 순식간에, 그것도 국가가 나서서, 다시금 시계를 몇십 년 전으로 되돌리려 하는 이 상황을 '정상(正常)'이 아니라고 표현하지 않으면 달리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는 더디더라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며 어느 정도의 가시적인 성과를 일궈내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이러한 방향이,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제대로인 상태'일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은 지금, 어쩐지 비정상이 정상의 탈을 뒤집어쓰고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한 최근의 우리 사회가, 내 걱정과 불안을 자꾸만 부추긴다. 나는 내 나라가 정상이 정상인 것으로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이기를, 그런 곳에서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기를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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