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스포츠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아가씨 시절의 나는 이따금 야구장을 찾았다. 부산이 고향인 덕에 자연스레 롯데팬이 되었고, 둥글게 부풀린 봉지(봉다리)를 머리에 둘러맨 채로 친구들과 함께 부르던 '부산갈매기'는, 툭 건드리면 톡 튀어나올 정도로 내게 체화된 것이었다. 오래전 만들어진 구슬픈 노래임에도 소리 높여 외치던 그 가사 마디마디에는 신묘한 힘이 있었고, 나는 경기장 내 수많은 관중들과 거대한 '우리'로 하나 되는 강렬한 순간들을 즐겼다.
결혼 후 육아의 세상에 발을 들인 이후로 단 한 번도 야구장을 찾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도무지 갈 상황이 안 되어 못 간 것이었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여건이 되었음에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야구 경기장은 내게 오랫동안 잊힌 공간이었다.
롯데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텔레비전 스포츠 채널을 고수하는 짝꿍 곁에서 그저, '야구 또 봐?' 내지는 '소리 좀 낮추고 봐.'라는 말이나 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던지, 그날도 야구 경기를 시청하고 있던 짝꿍에게 '우리 야구 경기 보러 갈까?'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여느 때와 별 다를 것 없는 집안 풍경이었고, 특별한 일 없는 날이었다.
그 순간 나와 짝꿍 둘 다 무엇에 씌었던 걸까. 스쳐 지나가던 나의 뜬금없는 제안을 철석같이 알아들은 짝꿍은, 이내 우리가 갈 수 있는 경기와 좌석의 종류, 해당 티켓 가격 등을 말해주었는데, 그건 결혼 십여 년 만에 짝꿍이 보여주는 실행력이었다. 짝꿍은 극구 부인했지만, 경기장을 찾고 싶은 마음을 오랜 시간 참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경우, 말이 아닌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임을 알기에, 나는 그가 빛의 속도로 시연한 결과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야구장 데이트를 즐기던 청년 시절의 그의 모습이, 희끗해진 뒤통수에 피곤이 깃든 눈을 하고 있는 지금의 그와 몹시도 대비되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무심히 던진 나의 제안에 그의 얼굴 가득 잠시 화색이 돌았던 것 같기도 하다.
경기 관람 일정은, 스포츠라고는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는 딸을 건너 중학생 아들에게 전해졌는데, 신기하게도 녀석은 흔쾌히 자신도 경기를 함께 보러 가겠노라 답했다. (학원 수업을 다음 주로 미뤄준다면, 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두 남자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덕분에, 나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십육 년만의 야구 경기 관람은 허무하리 만큼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사실 경기장으로 향하면서 그리 큰 기대가 있었던 건 아니다. 2030 여성들이 많이 찾는, 달라진 요즘 경기장의 풍경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탁 트인 공간에서, 오래전 추억을 곱씹으며 맛있는 거나 먹고 오자는 심산이 컸다. 방구석 컴퓨터에 시선을 박고 있을 아들 녀석을 집에서 들어내어 다만 몇 시간이라도 바깥공기를 쐬게 하고 싶기도 했고.
그런데, 눈앞으로 경기장이, 경기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들뜬 표정의 사람들이 보이던 순간, 내 심장이 속도를 높여 뛰기 시작했다. 생애 처음 놀이공원을 방문하는 어린아이가 된 듯 기대감이 차올랐다. 십여 년 만에 찾은 경기장 앞 풍경이 나를 신기하고도 낯선 세상으로 초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한 기분은 우리가 자리를 잡고, 경기가 진행되고 있던 순간에도 가시지가 않았다.
내 편 네 편 것 가릴 것 없이 탐나던 다채로운 굿즈들, 기발하고도 다양한 종류의 좌석들, 푸른 잔디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먹는 음식과 맥주 한 캔도 일품이었지만, 그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관중들이 보여주는, 감동스러울 만큼 일사불란하고도 열정적인 응원이었다. 그 광경을 목도하며, 처음으로 방탄소년단의 절도 있는 칼군무를 마주하며 느꼈던 신선한 충격이 되살아났다. 차분하게 이어지는 경기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웅장한 함성은, 은은한 등불을 밝히듯 젖어드는 석양과 푸르른 잔디의 조합만큼이나 아름답고 조화로운 것이었다. 일상에 찌들었던 마음이 활짝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던 순간,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움에 마음속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을 느꼈다.
우울감을 토로하던 친구를 위로하면서도, 자꾸만 나를 불안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친정 엄마 앞에서도, 엄마 마음은 생각지도 않는 듯 속을 박박 긁어대던 아이들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게 보이려 애쓰며 고갈되었던 나 자신이 넉넉히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경기 본연에 집중하지 않는다며 면박주는 짝꿍의 말에도 그저 웃음이 났다. (비록 경기는 7대 5로 졌지만) 짝꿍은 경기에 몰입했고, 나는 사람들이 아낌없이 뿜어 내는 에너지를 듬뿍 전해받았고, 경기 볼 줄 모른다던 아들 녀석은 무슨 생각에 잠겼던지 세 시간이 넘도록 불평 한 마디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혹여나 지루함을 느끼지나 않을까 우려했던 마음을 떠올릴 새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아마도 우리 모두, 나름의 이유와 마음으로 그 시간 그 공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럼 된 거다. 그것이면 충분한 거다. 경기는 아직 남아 있고, 우리는 다시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즐기고, 채우며, 음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