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영화 ‘난징대학살’이 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시대극을 좋아하면서도, 중국인의 시각으로 그려진 일본제국주의에는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의식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으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일정 정도의 편견이 작용했을 것이고. 여전히 내게는 어린 시절 '중공'이라 불렸던, 이제는 세계 패권국가를 넘 볼 정도로 슈퍼파워가 된 이 나라가, 중화사상과 사회주의적 선전구호로 점철된, 다소 질이 떨어지는 콘텐츠를 생산할 것이라는 이미지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다 최근한국사검정능력 시험을 준비하며 일제 강점기 시절 주변국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저질렀던 만행들에 대한 호기심이 일던 차에, 영화 '난징대학살'이 국내에서도 개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쩐지 이 영화를 꼭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불현듯 고개를 내민 나의 호기심이 이러한 변화를 일으켜, 중국 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는 매개체가 되어준 셈이다.
영화 ‘난징사진관’은 중국 내에서는 꽤나 흥행을 한 모양이지만, 국내에서는 개봉관도, 상영시간에도 제약이 많았다. 이는, 최근 극우세력이 몰아가고 있는 혐중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라고, 때마침 짝꿍과 나 둘 다 가능한 시간, 그리 멀지 않은 극장의 분위기 좋은 상영관에 영화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평일, 중국의 시대극을 관람하러 온 사람은 나와 짝꿍 그리고 할머니 한 분이 전부였다. 그러나 작품 중간에 어르신이 극장을 나가시는 바람에 짝꿍과 나 둘만 남게 되었고, 우리는 아늑한 숲 속으로 피크닉 온 듯한 기분을, 이 귀한 공간을 단 돈 몇 푼으로 전세 낸 듯한 극상의 가성비를 체감하며 둘만의 역사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영화는, 137분의 러닝타임을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아주 대단했다. '중국 영화 어떤지 한번 지켜볼까',라는 심리적 장막을 세운 관찰자의 입장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건만, 젊은 시절의 감우성 배우를 닮은 남자주인공 뒤로 일본군의 포탄이 터지고, 도시를 빠져나가는 인파들로 아수라장이 된 1937년의 난징이 눈앞으로 펼쳐지던 순간부터, 나는 최면에 걸린 듯 작품에 푹 빠져들었다. 서사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했고, 촬영은 세련되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촬영된 작품이라 그런지, 실제 내가 1937년의 난징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으며, 잔인하거나 안타까운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절로 작은 비명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1937년 당시 난징은 '국민정부'의 수도였다. 중일전쟁(1937년~1945년)이 전면전으로 장기화되면서, 일본군은 베이징과 상하이를 점령한 후, 국민정부의 수도인 난징을 함락하면 중국의 항전의지를 꺾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고 한다. 일본군은, 장기전에서 입은 막대한 피해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동시에, 민간인 틈에 숨어 도망하던 중국 병사들을 처형하기 위한 수단으로 난징에서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 공식적 추산으로만 30만 명 가까이(난징 인구는 대략 60만 명이었다) 희생된 난징대학살은, 다채로운 일상의 풍경으로 가득했던 도시 곳곳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당시 난징에서의 일본군의 잔혹함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치하에서 벌어졌던 지독한 만행과 몹시도 닮아 있었다.
영화 '난징사진관'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난징사진관에 머무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학살의 현장에서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들을 담아낸다. 이는, 전쟁터에서 자신들이 행한 잔인무도한 행위의 결과물마저 훌륭한 전리품처럼 여기며,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포기한 일본군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실제 일본군은 난징대학살 당시, 중국인의 목을 베고 총으로 민간인을 사살하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포착해 두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그저 쾌락을 위한 '내기'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혹여 선동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적절한 지점에서 절제된 감정선은 결코 신파로 흘러가지 않았고, 서사의 여백은 깊고 뭉근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난징사진관'이 보여주는 것은 중일전쟁 중에 펼쳐진 난징의 역사지만, 그것을 단지 타국에서의 일로 넘겨볼 수 없는 이유는, 난징의 풍경에 우리의 역사가 포개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1937년에서 건너온, 인간학살의 처절한 장면들이 펼쳐지는 스크린과 21세기의 우리가 앉은 좌석 사이, 이십 미터 남짓한 공간을 비무장지대 삼아 편안하게 영화를 감상하는 우리에게, 기묘한 아이러니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저토록 참혹한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사를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더 단단해진 것도, 그 아이러니가 내게 준 역사의 선물이었다. 우리도 대량학살의 시대를 겪었을는지 모른다. 2024년 12월 3일, 그자의 명령을 거역한 군인이, 장갑차를 막아선 시민들이, 국회의 담을 넘은 이들이, 헬리콥터가 뜨는 것을 지체시킨 누군가가, 한강 다리를 넘어가기를 포기하고 돌아선 그들이 없었다면, 그랬다면, 과연 지금의 내가 마음 놓고 햄버거를 입에 문 채, 역사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차마 입 밖으로 내뱉기조차 싫은 그 대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