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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상열 Nov 13. 2024

혹시 지금도 제자리걸음이라 생각하는가?

“황 과장! 아직도 도착 안 했어?”

“제가 다른 프로젝트 일로 지금 경기도청에 왔습니다. 원래 4시에 끝나기로 했는데, 일이 좀 늦게 끝나서 이제 출발했습니다. 30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나와의 약속이 더 중요한 것 아니야? 일을 왜 그렇게 해?”

“제가 혼자서 처리하는 프로젝트 4개입니다. 몸이 하나가 아니다 보니 계획대로 잘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본업으로 선택한 도시계획 엔지니어로 일한 지 올해로 딱 만 20년 차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엄청난 세월이다. 12년 전 다녔던 회사에서 과장으로 재직하던 중이다. 혼자서 4개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구리시 내 아파트 재개발 사업이다. 발주처였던 조합장이 성격이 급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내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가 바쁘게 돌아갔다. 프로젝트 중 급한 우선순위대로 매일 계획을 정해서 처리했지만, 돌발 상황이 꼭 생겼다. 회의가 예정대로 끝나지 않거나 약속했던 미팅이 취소되기도 했다. 그날도 구리시 재개발 사업 조합장을 오후 5시에 조합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미리 잡힌 회의가 지연되어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회의가 4시 30분에 끝나서 회사 차로 운전하여 조합 사무실로 이동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6시가 가까웠다. 길이 막혔다. 마음이 계속 급해졌다. 5시 30분까지 간다고 했는데, 이미 시간은 30분이 더 걸렸다. 조합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합장이 소파에 앉아 있다.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렸는데, 갑자기 화를 낸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우리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냐고.      


그게 아니라고 몇 번 이야기했지만, 회의 시간 내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앞서 회의가 지연되고 길이 막혀 늦었을 뿐인데, 죄인이 되었다. 할 말은 전달했지만, 조합장에게 엄청나게 시달리다 나왔다. 들을 수 있는 욕과 나쁜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밖으로 나왔는데, 발에 힘이 풀렸다. 회사 차에 타서 바로 사무실로 이동해야 하는데, 잠시 눈을 감았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매일 이렇게 제자리걸음만 하는 느낌이다.      


뭔가 나아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일은 계속 꼬이고, 문제가 생긴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를 해결하면 풀리지 않는 숙제가 들어온다. 매일 뭔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계속 제자리에서 맴돈다. 겉으로 해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12년이 흘렀다. 오늘 아침도 부리나케 회장님 보고로 새벽부터 출근했다. 보고 후 강원도 모 군청으로 바로 이동했다. 서울로 올라와서 다른 미팅 진행 후 밀린 일을 처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한숨이 나왔다. 연차는 올라갔지만, 예전과 크게 바뀌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20년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그 당시에도 지금도 그 상황에서 매일 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걸음이 제자리를 맴돌지 않고, 계속 앞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과장 시절 익혔던 그런 일의 경험이 하나씩 쌓이다 보니 지금은 더 큰 문제가 생겨도 쉽게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문제를 해결하고 뭔가를 얻기 위해 열심히 매일 같은 자전거 페달을 돌렸다. 페달의 반복이 나를 성장 시켰다.      


현재 순간에는 제자리걸음 일지라도 시간이 누적되면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성과를 내본 사람은 처음에는 제자리에서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어느 순간 우상향 곡선을 그리면서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같은 본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성향은 바뀌지 않으니까. 그러나 달라진 게 있다면 경험과 지식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그 상황에 맞게 알아서 조절할 수 있는 노련미가 있다. 지혜가 생긴 것이다. 제자리걸음이 나쁘지만 않다. 그 시절은 계속 헤맨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만큼 아프고 견디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뭔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제자리걸음으로 성과가 없다고 고민하는가? 그렇다고 한다면 당장 멈추자. 근사한 인생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자. 김종국의 ‘제자리걸음’ 이나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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