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24일이다. 크리스마스 전날로 보통 이브 날로 부르고 있다. 나이가 드니 사실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이젠 별 감흥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해서 바쁜 업무를 처리하는 평상시와 같다. 퇴근하고 나서야 케이크나 선물 꾸러미를 들고 가는 사람을 보면서 ‘아!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였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보인다. 서로 장난치는 친구의 모습, 즐겁게 대화하면서 팔짱 끼고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 등 다양한 사람이 내 눈에 보였다. 책 신간 출간 등 좋은 일도 있었지만, 요새 회사 업무나 인간관계 등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크리스마스 전날이니 즐겁게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열어 인터넷 창을 켰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뉴스를 검색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기사 제목이 보인다. “양주 00에서 일가족 4명 사망한 채로 발견!” 이런 제목은 가급적 보고 싶지 않다. 기사 내용을 보니 40대 부부가 11살, 5살 된 두 아이와 함께 이 세상을 하직했다. 아마도 아이들을 이 세상에 남겨둘 수 없다 보니 동반 자살한 것처럼 보였다.
대체 무슨 이유로 죄 없는 아이들까지 죽였을까? 아직 제대로 인생도 펼치지 못했는데, 부모 마음대로 이렇게 아이들의 인생을 망쳐도 되는가? 그것도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여행 간다고 좋아했을 텐데, 자신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 줄을 상상이나 했을까? 동반자살 원인은 수억 원의 빚 때문이었다.
수억 원 빚이 생기면 사실 힘이 빠진다. 삶의 의욕이 사라진다. 내가 그랬다. 올해 상반기는 참 많이 힘들었다. 작년 12월 8년 정도 오래 다닌 회사에서 비자발적으로 나오게 되었다. 마흔 중후반에 일어난 희망퇴직으로 인해 당장 생계가 위험했다. 같이 추진하던 여러 부업도 지지부진하여 매출이 거의 없었다. 이직했지만, 다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지옥같았다.
그렇게 매일 도살장에 끌려나가는 심정으로 살다가 4월 말 홀린 듯이 당했던 보이스피싱 사기로 인해 내 일상은 멈추게 되었다. 금전적인 피해도 많았지만, 상실감과 죄책감이 더 컸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다 못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몇 달간 회사 업무를 제외하고 폐인처럼 지냈다.
아마 오늘 이 세상을 하직한 40대 부부도 참 많은 고민 끝에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수억 원의 빚을 감당하기 너무 벅찼을지 모른다. 그 부부를 알고 있었다면 나는 총력을 다해 그들이 이 세상을 하직하지 않게 막았을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 바닥이더라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7월 중순까지 방황했다. 실직과 이직 후 적응 스트레스도 상당했지만, 사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오랜만에 죽고 싶다는 생각도 살짝 했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이 있기에 그런 어리석은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이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을 겪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어떤 목표가 있으면 미친 듯이 달성하기 위해 거기에 매달렸다. 쉽게 지쳤다.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기에 나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그 댓가는 좋지 않았다. 모은 돈을 다 날렸기 때문이다.
열심히 말고 오늘 하루 충실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 1~2가지만 골라서 거기에만 집중했다. 잘하지 못해도 어떤 일을 하더라도 충실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내 기준에서 충실하게 마무리했다면 나를 위로했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렇게 몇 개월 지나고 나니 다시 원래 내 모습으로 많이 돌아왔다. 올해 힘든 일을 겪었던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자신을 더 몰아붙이지 말고, 오늘 하루에 할 수 있는 한두 가지 일만 골라 거기에만 집중하라고. 열심히 보다 충실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그렇게 한 개 일을 처리하면 자신을 칭찬해 주라고. 오늘 하루도 충실하게 보낸 당신을 응원한다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올한해힘든일을겪었던사람들에게 #하루하루 #지나간다 #어떻게든붙잡자 #자이언트라이팅코치 #닥치고책쓰기 #닥치고글쓰기 #황무지라이팅스쿨 #자기계발 #에세이 #단상 #황상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