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피카소 미술관 in Paris
이 글을 쓰는 나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그림을 보는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고 순수 미술 쪽은 문외한이지만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로 그저 그림 보기를 좋아하고 내 나름의 감성으로 그림을 보고 해석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요약하자면 나의 글들은 그저 개인적인 오그라드는 감정의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전에 왔을 때는 아이러니하게 피카소 그림들이 전부 한국으로 출장 가 있는 바람에 허탈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야 말로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피카소의 이름이 붙여진 미술관 치고는 생각보다 많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지는 않았다.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그림들이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감정이 소모되기 마련이라 반드시 머리와 가슴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온다. 그 뒤는 아무리 좋은 그림을 보아도 무감각해지게 된다.
피카소의 그림에는 그의 숨길 수 없는 본성이 정직하게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섬세함, 거침, 유연함, 완벽주의자, 워커홀릭, 도전자 그리고 나르시시즘...
자신의 그림이니 당연하지 않겠냐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도 그림을 보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다고 미뤄 짐작하게 하는 건 피카소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피카소의 어떤 작품들은 여러 버전으로 많은 습작들이 존재한다.
스케치부터 미완의 중간 단계의 그림, 완성 단계에 이른 여러 버전의 그림들, 그것들을 보면 이 사람은 지독한 완벽주의자이며 일 중독자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 없다.
피카소 그림 중에는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그가 그렸을 거라고 상상도 못 할 그림들이 많다.
유행에 민감하고 사고가 유연해 하나를 죽어라 파는 스타일이기보다는 도전하는 걸 즐기는 스타일이라고 생각된다. 정체했다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림들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장르를 넘나드는 파격은 신선해서 항상 피가 뜨거운 청년 같다.
그리고 가끔 뜬금없는 색 조합은 나에게 묘한 감동을 주는데 독특함을 뛰어넘어 감성의 연약한 부분을 건드리고 마는 섬세함이 있다. 좀 이름 있다 하는 미술관들은 피카소 그림들을 몇 점씩은 보유하고 있다.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의 화가를 확인하면 피카소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림을 좀 많이 보다 보면 이건 누구 그림이다라고 풍월 읇는 서당개 수준이 되기도 하는데 피카소 같은 경우는 예상치 못한 화풍의 그림들이 종종 튀어나온다. 그는 정말 다이내믹한 사람이다.
사진을 통해 본 피카소는 나에게는 더운 여름날 웃통을 벗어 재끼고 러닝셔츠만 걸친 세탁소 아저씨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작품 속의 인물들의 몸매와 그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투영이라고 하면 억지일까? 나는 여기에서 그의 극강의 나리시시즘을 느꼈는데 말이다.
Portrait of Mme Olga Picasso, 1922-23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공식적인 연인만 7명이고 그 외 셀 수 없는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닌 전형적인 나쁜 남자 피카소의 첫 번째 부인인 올가의 초상이다. 올가와 결혼하고 나서 피카소는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물론 한동안이긴 하지만.
뒤틀린 공간임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림 속의 올가는 편안하고 여유 있어 보인다. 손의 제스처는 장난기가 느껴질 정도로 발랄해 보인다.
Woman in an armchair, 1927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위의 초상화와는 딴판인 올가의 초현실적인 초상이다. 아무렇게나 걸쳐진 팔은 불안정적이고 표정은 고통에 차 울부짖는 듯한 모습이다. 반대로 공간은 뒤틀려 있지 않다. 답답한 회색 창과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꽃무늬 벽지가 이 그림을 더 기괴하게 보이게 한다.
유명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기 이름을 잃게 되는 것 같다. 올가는 그 당시로는 매우 획기적인 현대 발레단의 메인 댄서였다고 한다. 즉 그녀만의 추구했던 예술적 삶이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그러하듯 모든 것을 포용하기도 하지만 파괴하기도 한다.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거세하고 피카소에 속해서 살았을 올가의 인생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알았더라도 그녀가 다른 선택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올인했을지도...
Le matador, 1970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화려한 투우사의 앙다문 입술이 다부지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쉬고 있는 듯한데 손에서 칼은 놓고 있지 않다. 너무나 좋아하는 색감에 조합이다.
만약에 맞다면 제3의 눈이 그려져 있는 것 같은데 흐리멍덩하게 그려진 다른 눈보다 훨씬 선명하다.
황소와의 싸움은 무엇보다 정신적인 싸움임을 상징하는 것일까? 선명하게 그려져 있지만 초점은 맞지 않아 어디를 쳐다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Still Life with Head of a Bull, 1958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제단 위에 제물처럼 받쳐진 황소의 머리가 있다.
투우에 희생된 황소의 명복을 비는 것인지 가운데 화병에는 꽃이 꽂혀 있고 방의 색깔은 황소를 유인할 때 쓰는 물레따의 붉은색이다.
La Suppliante, 1937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볼을 발갛게 표현한 건 줄 알았는데 눈물자국이라고 한다. 한껏 위로 뻗어진 두 팔은 뼈가 도드라져 있고 터질듯한 손가락들은 애처롭다. 그리고 미완처럼 보이는 발은 맨발이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절망스럽게 만들었을까?
The Kiss, 1967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작품의 제목만큼이나 강렬한 색상이 다른 곳으로 한눈팔게 하지 않는다.
이제 막 시작한 연인들의 풋풋한 입맞춤은 아닐 것 같다.
꼭 부둥켜안은 모습이 한참 타오르는 연인들의 정렬적이고 에로틱한 키스다.
Bathers, 1918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한가롭게 바캉스를 즐기는 듯한 여인들의 그림이 예쁘다. 피카소 그림 중에 이렇게 고전주의 풍의 그림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들이 많아서 엽서로라도 구매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매번 샵에서 엽서로 구매하려고 하면 색 재현이 아쉬워 고민하다 결국엔 눈으로 본 기억만 남기게 된다. 이 그림도 아쉽게도 그러했다.
Still Life with Pitcher and Apples, 1919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물주전자의 주둥이가 사람 입처럼 입술을 쭉 내밀고 있는 것처럼 잔망스러워 뭔가 좀 웃긴 정물화다.
Owl, 1946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그냥 봐도 귀여운 동물인데 그림으로 봐도 너무 귀엽지 않은가.
의자도 상당히 인상 깊은데 배치되어 있는 가구들이 전체적으로 올빼미에 딱 어울리는 것들이다.
올빼미가 앉아 있는 횃대도 창인 것 같은데 날카로운 창 끝이 둥글둥글한 올빼미를 더 강조시킨다.
그래서 실제로 올빼미가 그림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작은데도 선명하게 부각된다.
정말 맘에 드는 그림이다.
Chat Saisissant un Oiseau, 1939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작품명을 찾아보기 전에는 고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고양이가 재빠르게 새를 낚아채 사냥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는 했지만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에 더 무서운 맹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양이라니...
새를 물어뜯어 내장이 나오는 그림이라 그냥 보기에도 잔인한데 사실 이 그림이 더욱 섬뜻했던 이유는 분명 동물인데 얼굴은 사람 같아서 이다.
Bathers on the beach, 1928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이 그림은 여러 버전의 그림들이 존재하는데 이게 가장 마지막 단계의 초현실적인 그림이지 않을까 싶다.
세명의 사람이 공을 가지고 해변에서 노는 그림이다. 초현실적으로 단순화되어 있지만 즐거워하는 표정이 보인다.
Self Portrait, 1906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처음에 봤을 때는 자화상인 줄도 모르고 묘하게 시선을 끈다고 생각했다. 다른 그림을 보다가 잔상이 계속 남아 되돌아 가서 사진을 찍을 정도였다.
그런데 자화상이라니...
젊은 시절의 자신을 그렸는데 이제 보니 상체가 두툼한 게 피카소가 맞다.
Musée National Picasso
5 Rue de Thorigny, 75003 Paris, 프랑스
2017년 08월 10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