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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속의 지니 Apr 25. 2024

할머니 송편

(사람)

추석을 앞두고 스텝으로 참여하는 외국인 학생 대상 한국어 교실에서 송편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강사 자격증이 없는 나는 보통 수업 보조교사나 액티비티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번 추석 송편 만들기도 내가 진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모드들 송편을 빚어 본 기억이 아득하다는 것, 그나마 만들어 본 사람도 나뿐인 상황..

선생님 중 한 분이 맵쌀 가루를 구해다 주셔서 급히 한번 만들어 보았다

맵쌀을 뜨거운 물로 반죽해서 깨+설탕 소를 넣어 쪄냈다.

쓰고 보니 아주 간단하지만, 먹을 만한 송편을 만들어야 하는 데다 사용되는 각각의 품목들을 계량해야 해서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송편 한 개당 23~24g의 반죽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어여쁘다는 (매우 개인적인 평가를 토대로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서 실습에 필요한 반죽과 소의 총량도 결정되었다.


다 만들어진 송편에 참기름을 바르고 보니 오동통한 것이 요즘 기계로 찍어내는 송편과 영판 다른, 오랫동안 잊었던 할머니표 송편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할머니에게 송편 빚는 법을 배웠다


할머니는 꽤 오랫동안, 우리 집 방이 3개가 될 때까지 나의 룸메이트였다.

일찍 시어머니가 되신 할머니는 꽤 고약한 시어머니셨지만, 손재주는 정말 좋으셨다. 그리고 그 손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으신 분이었다. 작고 작은 방의 가구를 혼자 힘으로 요리조리 어찌나 자주 옮기셨는지 나는 종종 자다 일어나서는 어느 쪽이 문인지 헤매는 날도 있었다.

할머니는 직접 한복을 지어 입으셨고, 국민학교에 입학한 나의 원피스도 만들어 주셨다. 소풍을 앞두고는 도시락 가방을 만드셨고, 온 동네 폐지를 주어 나를 우리 반 폐품왕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셨다.

할머니가 만든 송편, 만두는 맛있을 뿐 아니라 모양도 예뻤다. 쪽진 머리로 평생 사신 자그마한 할머니처럼..

할머니께서 조그만 너그러운 분이셨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에게 전형적인 시어머니 노릇을 하신 할머니를 우리 세 자매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언제나 우리 셋과 나중에는 손주사위들까지 온 동네에 자랑하고 다니셨는데.. 하늘나라 가셔서 보니 괘심 하셨는지 내 꿈에도 한번 나타나지 않으신다. 그래도 할머니 유일한 룸메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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