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병속의 지니 Jun 22. 2024

바람이 부네요

(노래)

두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 물론 건강하게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큰 아들은 몹시 추운 1월 입대했다. 병영내 가혹행위로 한 젊은이가 죽음을 맞은 비극적인 사건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입대를 위해 모여든 예비 군인들과 부모들은 어느 때 보다 마음이 무거웠다

일찍 도착해 차마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말을 각자 마음에 담은 채 한참을 기다리자 드디어 입대를 위한 행사가 요란스럽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는 식이 진행되던 중 갑자기 예비 군인들에게 모두 연병장으로 내려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 모두 당황한 사이 제대로 이별의 인사도 못한 채, 마지막으로 뜨겁게 안아주지도 못한 채 큰 아들은 쓸려 내려가는 까까머리 대열에 휩쓸려 들어가 버렸다.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며 몇 걸음 뒤쫓아 내려가자 아들은 그때까지 끼고 있던 장갑을 황급히 벗어 나에게 건넸다. ‘잘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들은 거 같기도 하다. 그렇게 갑자기 내 아들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 흘러내리듯 나에게서 멀어져 버렸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완벽한 분리감은 난생처음이었다. 작아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내내 실감이 나지 않아 눈물도 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이 주고 간 장갑의 알록달록한 색깔이 눈에 들어오자 그때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이 녀석, 사내 녀석이 이렇게 컬러풀한 장갑을 가지고 있었네..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단 하나도 알 수 없는 이 순간을 견디고 있을 내 아들의 두려움이 감히 상상되지도 않았다.

그때 뒷자리에 앉아 부대에서 얻은 건빵을 맛있게 먹고 있던 둘째 녀석은 그로부터 수년 후 코로나가 창궐하던 어느 날  머리를 깎고 군에 입대했다. 아들을 차에서 부대 앞 길에 던지고 왔다는 경험담이 회자하던 때를 조금 지난 시기여서 그나마 간단한 입영식도 있었고, 길 건너에서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아들을 지켜볼 수도 있었다

부모들을 떠나 길 건너 부대로 줄지어 들어간 신병들은  부대 초입에 잠시 멈춰 섰는데 무슨 일인지 이들을 분리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둘째 아들이 계속 옆줄로 분리되고 있었고 급기야 맨 마지막 그룹에 남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그룹도 결국 같은 건물 안으로 사라지긴 했지만 도대체 왜 우리 아들이 최종 그룹에 남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죽을 지경이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해외에서 들어온 신병들이 마지막에 남겨졌다고 한다. 진짜 별일도 아니었다. 허탈하게)

이후 나는 그래도 큰 아들 군대 보낸 경험이 있어서인지, 핸드폰 사용이 가능한 믿지 못할 혜택을 누리고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절절함이 덜한 이병 엄마로 지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출근길, 아들이 녹음해 놓은 노래가 자동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바람이 부네요. 춥지 않은가요. 밤 깊어 문득 그래 얼굴이 생각나’ 가사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내 심장이 똑똑 떨어지는 것 같았다. 녀석 입대 후 첫겨울이었다. 아들.. 춥지 않니? (YouTube 레디메이드 바람에 분다)

아빠들은 모른다고 한다. 10개월간 한 몸이었던 자식에게 엄마만 느끼는 혼연의 일체감을, 그리고 그로 인해 더 사무치는 분리의 고통을..

코로나로 둘째는 면회도, 휴가도 없는 대신 여러 번 격리를 거듭하는 특이한 군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제 두 아들은 예비군 통지서를 받고 있다.  이제 보니 딱히 내 품으로 돌아온 것 같지는 않다 ㅎㅎ

작가의 이전글 데미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