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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초 Jan 05. 2023

토끼풀반지를 금반지로 갚을뻔

나는 그게 꿈에서  한 약속인 줄 알았어요

"아이고 초롱아! 너는 어쩜 아직도 애기 같니?"


 송암집으로 마실 가 거실에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이사짐 정리까지 하고나서 멍하니 있자니 정말로 백수인게 실감이 나서 심난해졌다. 뭐라도 하면 나아질까 싶어서 고른게 마늘 까기였다. 올해 수확한 마늘 중에서  팔고 남은 것 중 종자로 쓸건 소독해서 빼놓고, 그러고도 남은 마늘 쪽이 송암집 작업장 구석에 있던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된장통만한 그릇에 가득 담아 집 안으로 들어왔다. 거실 중간에 쟁반 하나 신문지 한장 깔고 예능 채널을 틀었다. 한쪽 무릎을 세워 앉아 마늘 꼭지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한쪽한쪽 까서 그릇에 담다보니 울적했던 맘이 가시고 얼른 까 찧어서 얼렸다가 꺼낼 쓸 생각에 벌써 뿌듯하던 참이었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문이 벌컥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지만 어쩐지 작아진 어르신이 서계셨다.  

"초롱아!!너 나 알아보겠니?"

"그럼요!!아줌마!!"

 긴가민가 했던 것이 아줌마의 목소리에 확실해졌다. 우리 외딴집의 유일한 이웃에 살던 아줌마였다. 송암리 간사지에는 5가구 정도가 아주 띄엄띄엄 간사지를 지키고 있는데, 그 중에 우리집과 그 집은 간사지 오솔길을 따라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나란히 있었다. 아저씨 성이 정씨여서  정씨네로 통했고, 아줌마는 자연스레 정씨 아줌마였다. 반갑다며 손을 마주 잡은 아줌마에게서 소싯적에 보이던 특유의 드센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줌마가 아니라 이제 어르신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세월은 나를 자라게 했고, 아줌마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커다랗고 빠른 말씨로 나를 반겨주셨다. 

 "아이고 너는 아직 애기 같냐."

 "저 이제 서른일곱이에요. 하하하하"

 "니가?"

 "아저씨도 저기 왔는데, 가볼래?"

아줌마를 따라 아저씨를 뵈러 나서는 길에 나는 한걸음 디딜 때마다 삼십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너는 꼭 아저씨만 찾았어."

  내가 기억하는 정씨 아저씨와의 첫 만남은 하늘색 세렉스 트럭을 몰고 내 앞에 서서 "집에 가니? 태워줄까?"  "까까 사줄께 같이 갈래?"하며 장난스레 웃던 것이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던 길이었고, 아저씨는 일을 보고 집에 가시던 길이었겠지.  모르는 사람이 과자 사준다고 냉큼 따라가면 큰일 난다고 배웠지만 나는 그 당시 아저씨를 알던 것인지, 그냥 생각이 없던 것인지 아무튼 아저씨의 세렉스를 타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준 까까를 먹으며 집에 왔다.  그 파란 트럭 운전사가 옆집 아저씨라는 거는 그 뒤에 알았다. 나를 놀리려고 장난 친건데 냉큼 따라왔다면 그 얘기로 또 한동안 나를 놀리셨다. 엄마는 기겁을 하며 모르는 사람 차는 절대 타면 안된다고 몇 번을 당부 하셨다. 아저씨가 언제부터 거기에 살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기억하는 장면은 그때이다. 

  그 뒤로 나는 툭하면 아저씨에게 놀러갔다. 오솔길을 따라 집 앞에 작은 밭이 하나 있었고 그 끝은 아저씨네 논으로 이어졌다. 길 가에서 놀다가도 논 둑에 나와 있는 아저씨를 보면 쪼르르 가서 말을 걸었다. 10살도 안 된 애가 할 말이 뭐가 그렇게 있었겠냐만은 아저씨는 그런 나를 한번도 귀찮아 한 적이 없으셨다. 

 "공부 열심히 했어?"

하며 들고 있던 농기구를 내려 놓고 둑에 같이 앉아 쉬셨다. 종알종알 거리는 이야기를 듣다가 얘깃 거리가 떨어지고 내가 아쉬워하면 "피리 불어줄까?" 논 둑에 난 산기장을 뜯으셨다. 벼 줄기 처럼 생긴 풀의 겉잎을 떼고 가로로 뉘여 입술에 대고 불면 삐이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참 좋았다. 아저씨를 따라 나도 불어봤지만 나는 아직 한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다. 이 풀이 아닌가 싶어 계속계속 뜯다 보면 어느새 풀이 수북히 쌓여있다. 

  풀피리 연주가 끝나면 아저씨는 토끼풀 꽃을 꺾어다 반지를 만들어주셨다. 두 송이를 엮어 반지를 만들어주시기도 하고, 여러 송이를 엮어 목걸이나 머리띠로 걸어주시기도 했다. 하얗고 보슬보슬한 토끼풀 반지를 낀 손가락은 행여 끊어질새라 접지도 못하고 집까지 가만가만히 넘어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어릴 적 추억이었다. 이 빛나는 추억은 곧 나의 빚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오랜만에 만난 아저씨가 여느때처럼 반겨주시며 말했다. 

"너어, 이제 대학 간다고? 너 크면 아저씨 금반지 사준다고 약속했지!"

"네? 금반지요?"

"너 요만했을 때 아저씨가 꽃반지 만들어줘가지고 니가 나중에 어른되면 금반지 사준다고 했잖여!"

 아저씨는 허리 깨에 키재는 흉내를 내며 으름장을 놓으셨다. 

"기억안나?"

"기억 안 나죠~ 언제적 일이에요."

"어허~ 너~ 이렇게 손가락도 걸었는디!"

나는 끝까지 모른척 했지만 사실 기억이 난다. 정말로 기억이 안났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아저씨를 자주 찾아가며 놀아달라 조르던 많고많은 어느 날이었다.  그 반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는지, 아저씨 시간을 뺏은 게 미안했던 건지 아저씨가 시키지도 않은 약속을 먼저 하고 말았다.

 "아저씨 제가 크면 아저씨 금반지 해드릴게요!"

 "아이구 그래? 너 손가락 걸어!"

 "진짜로요!"

그러고는 굳게 새끼손가락을 걸고 손바닥 싸인에 복사까지 해드렸다. 금반지를 해주겠다던 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사실 꿈인지 현실이었는지도 희미했었는데 아저씨의 확인 사살로 실제가 되었다.어쩌겠는가 꿈같은 어린 시절은 그렇게 꿈으로 남겨야지 더 아름답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여전히 기억이 안 나는 중이다.  

 그렇게 나는 기억이 안 나는 토끼풀 반지 계약을 읊어가며 아저씨를 만나러 갔다. 아빠와 이야기하던 아저씨는 나를 보자 언제나 처럼 크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이름을 부르셨다. 아저씨의 머리는 어느새 토끼풀 처럼 하얗게 새있었다. 요즘은 귀도 잘 안 들리신다고 여기저기 아프다는 아저씨를 보며 나는 또 다시 세월이 흐른 것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서른일곱의 나로 돌아왔다. 아저씨네 낡은 집 만큼이나 아저씨, 아줌마도 늙으셨구나 생각하는데 얼마전 새 집을 지으셨다며, 웃풍 하나 없이 난방이 너무 잘된다는 이야기에 난 혼자 머쓱했다. 

  더이상 풀 떼기로 즐거워할 나이가 아니라 그런지, 한동안 아저씨는 나에게 앞으로 무엇을 할건지, 어떻게 살것인지를 물으며 어른들이 으레 하는 조언같은걸 하시고는 다음에 또보자며 세렉스는 아니지만 여전히 파란색 트럭을 몰고 가셨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유쾌하셨다. 

 올해 토끼풀이 꽃을 피우면 잊지 말고 꽃 왕관을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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