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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초 Jan 28. 2023

시골 농장 필수템, 씨씨티비

"딸기" 잃고 씨씨티비 단다

  "씨씨티비 촬영 중"

 "어때? 잘 보여?"

"어? 오오! 어어 잘 보인다. 이야 카메라가 움직이네!"

 새로 설치한 씨씨티비 카메라는 움직임이 포착되면 바로 핸드폰에 알림을 울린다. 동생의 핸드폰 액정 화면 속에 내가 카메라 앞을 지나는 장면이 나온다. 하우스 앞에 크게 씨씨티비 촬영 중 문구도 달았다. 4동짜리 작은 하우스에 카메라를 세개나 설치한 것은 그저께 딸기 도둑의 흔적을 발견한 뒤였다.  동생은 한동안 진작 설치하라지 않았냐는 아빠의 타박을 들어야했다. 그게 동생이 타박 받을 일인가? 딸기 몇 알 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 도둑을 원망해야는 것은 아닐까?


  고향이 이래서 좋은건가, 싶을 때는 역시 무료나눔이다. 배추가 필요하면 진이네 전화하고, 시금치는 기타 선생님한테 물어본다. 상추가 먹고 싶을 땐 딸기 좀 따서 고모네로 슬렁슬렁가면 상추 머리를 숭덩숭덩 잘라 담아주신다. 김치 없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주신 김장김치가 일년치는 된다. 선택 받은 자가 아니면 구하기도 힘들다는 국내산 들기름은 이 동네에서 다 나눠먹느라 귀한거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각각 맛이 다른 상표 없는 고추장에 된장까지, 덕분에 나는 식재료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이것은 다 우리 아빠와 동생 덕이다. 그 둘이 흙에서 살며 땀을 뿌리고 기꺼이 열매를 나누고 살아왔기에 나는 슬쩍 콩고물을 받아 먹는 것이다. 이것이 이 동네에선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나 주지도 않고 아무나 얻을 수도 없다. 시골에서도 지키는 선이 있다.

   시골이라고 하면 다들 인심 후하고 밭에 나는 건 다 공짜일 것 같지만 아니다. 땅에는 주인이 있고, 그 땅 위에 난 풀 한포기에도 임자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외지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도시에선 자기 땅 위를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분쟁이 일어나는데, 왜 시골땅은 공공재라고 여기는 걸까. 때마다 농촌에 작물 도둑 뉴스가 나온다. 앞마당에 심어놓은 돼지 감자를 모르는 아줌마들이 몰려와서 싹싹 캐갔다는 이야기, 어느 새벽 밭떼기채로 배추를 뽑아간 전문 농작물도둑 이야기, 하나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감을 땄다가 주인과 싸웠다는 이야기. 엄연한 절도이고 범죄다.

 뉴스에선 어쩌다 나오는 이야기들이 시골에선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씨씨티비가 없는 집이 없고, 외지 차량이 들어온다 싶으면 모두 경계태세를 한다. 우리집도 많이 털렸다. 한 때 철물이 값이 나갈 때는 고물상 차가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말도 없이 부자재들을 싣고 가버렸다. 녹슨 파이프 몇개 주워간 걸로는 성에 안 차는지 멀쩡히 쌓아놓은 자재를 털어갔으니 아빠가 몇날며칠을 맘고생 하셨다.

 밭에 난 냉이도 맘대로 와서 캐간다. 어차피 잡초니까 캐가는 것까지야 뭐라고 안한다. 밭을 온통 헤집어놔 기껏 만든 두둑을 망쳐놓고 가는 게 문제다. 그래서 밭에 못 들어오게 하면 또 야박하다며 되려 화를 낸다.

 사람들은 흙이 묻어 있는 것은 하찮게 보는 것 같다. 흙이 묻었다해서 그 가치가 땅에 묻힌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 흙 묻은 것을 맘껏 어찌 할 수 있는 사람은 흙이 얼마나 소중한지, 흙에 얼마나 땀을 뿌려야 그 열매가 나는지 아는 사람 뿐이다.

 내가 농사를 짓지 않겠다며 도망다니고 있는 것도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도 말이다.

  딸기 도둑은  멀쩡히 단도리 해놓은 딸기 하우스 안에  침입(!)해서 딸기를 훔쳐갔. 딸기가 그렇게 많이 열려있는데 어떻게 아냐고? 어떻게 모르겠는가? 농부는 딸기 한 알 한 알 다 안다. 이건 내일 따야지, 저건 모레 쯤 따면 되겠다 하고 다 점찍혀 있는 아이들인데, 밤사이 실종됬으니 기가막힐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뒤늦게 하우스 앞뒤옆으로 보란듯이 씨씨티비를 달았다. 딸기는 맛있었나요, 도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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