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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릎 Jan 11. 2017

너와 내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나는 감히 그리고 멋대로 희망을 얘기하려 한다. 너와 내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런 게 가능한 일인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감히’ 말해 보려 하고, 인용한 글들이 그런 희망에 대해 말하는지 알 수 없으면서도 ‘멋대로’ 재단해 보려 한다. 다음은 희망의 장면들이다.




희망의 장면들



1. 죽음


  어느 날 나는 초대에 몰두하였다 내 생일에는 모두 모이지 않았다 내 장례식에도 모두 모이진 않았다

  안 죽을 걸 씨발

  어떤 동그란 게 굴러와서는 자기가 내 고조할머니라고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다

  같이 굴러다니는 다른 공들은

  친할아버지랑 외할아버지

  나는 나도 공인지

  살펴 보았다

  어딜 가든 왕은 있어서

  왕의 신발에 공이 채였다

  고조할머니였다 신하 놈들이, 공을 여기 둬서 죄송합니다 왕한테 무릎을 꿇고 사람을 찼으면 사과해야죠 왕자가 화를 낸다 짐이 미안해 왕이 왕자에게 무릎을 꿇자 숲은 젖으려 한다

  숲이 비에 젖어

  죄 엎드린다

(…)

  군인들이 젖은 숲에

  숨으러 간다

  숲이 토해낸 하천 속에서

  가시를 단 물풀들이 손짓을 한다

  숲이 타고 있어

  들어가지 마

  젖은 숲이 불에 탄다

  녹는 것처럼

  새까만,

  들판이 된다

  풀과 나는 수면 위로 머릴 내밀고 숲이 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무섭지? 우리들이 지른 불이야 물풀들이 나를 문질러준다 우리가 사람일 때 지른 불이야

  물속은 물 반

  물풀 반이다

  물풀들은 미끄럽다 물풀들은 가래처럼 물풀들아 그만 문질러 문지르고 싶어서 물풀이 된 건 아니잖아?

  발목에 감긴 물풀을 끌고 나는 검은 들판 위로 걸어 나온다 사람들이 줄줄이 따라 나온다 갈색 빛깔 물풀을 걸친 우리는

  한 무리 도롱뇽,

  도롱뇽 같은

(…)

  나는 여기 검은 들판에

  젖은 옷을 말리려고 불을 피웠어 수십 명의 집배원과 둘러앉아서 우편물을 모닥불에 집어던졌어 축구 유니폼을 입은 군중은 응원 수건을 집어넣었어 여배우가 모닥불에 모랠 뿌렸어 모닥불을 끄는 게 내 일이에요 대본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의사들은 전염병에 걸린 환자를, 개한테 물린 애는 개를 넣었어 그런데 왜 우니? 중학생들아 우리들은 수학여행 온 게 아니야 엄마 아빠 생각으로 우는 애들과 죽은 지 두 달 된 부모 귀신이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나는 보았지 부모가 죽고 석 달이 흘러 부모가 죽고 백 년이 흘러 엄마 아빠 생각으로 울던 애들이 죽어서 죽은 부모 옆에 앉아서 젖은 옷을 말리는 걸 나는 보았지 옆에서 옷 말리는 죽은 부모를 아직도 죽은 부모 취급하면서 외면하고 있는 모습은 무척, 히히히히 고추 달린 여자애들이 모닥불 주위를 빙빙 돌면서 불알을 말리는 모습은 무척, 혼절할 때까지 덜렁거리며 온 세상과 격 없는 불알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는 수고 속에서 덜렁덜렁 춤 좀 그만 췄으면……

(…)

  모닥불이 결코 꺼지지 않고 젖은 옷은 한참 동안 마르지 않고 영원히 함께 서로 어깨에

  기대서 잠을 자서 친해졌을까

  꿈에서 불알을 팔천 개 달면 우정이 팔천 배 견고해질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불알아

  이 게임만 끝나면

  각자 쉽시다

  잇기 쉬운 단어로만 이어 나가는 끝말잇기 놀이는 평화로워서 규칙을 잊은 걸까 같은 단어를 반복하면 죽는다는 그런 규칙이 분명히 있었는데 우린 어째서

  이번 판만 끝나면

  잠을 잡시다

  잇기 쉬운 단어로만 이어 나갈까

  규칙을 어겼어요 없는 단어를 만드는 건 사악한 반칙이에요 살아 있는 사람이 아직 많은데

  단어를 만들어서 나는 죽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직 있는데

  한밤중에 모닥불이 사그라지면 나는 여기 무척 넓고 컴컴한 곳을 홀이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 같아 여기는 지금 무척 캄캄해, 이제 나는 알 것 같아 내가 공처럼 동그랗고 자꾸 발에 채인다는 걸

  한밤중에 장대비가

  마구 때리면

  짝짝짝짝, 박수갈채처럼 들리면 나란 공은 홀 안에서 굴러다니며 고마워요,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깍듯하게 답례를 하는 것이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너란 공들도 제각기 저를 위한 갈챈 줄 알고 고마워요, 고마워요 비가 그치면

  그때 나는 알 것 같아 내가 정말로

  공처럼 동그랗게

  생겼는지를

  우리들은 서로에게

  가르쳐줄까

  지금 막 우리들이

  알게 된 것을

                                                    -김승일, 「홀에 모인 여러분」 중(『에듀케이션』, 문학과지성사, 2012.)

 

  “동그란” 고조할머니가 굴러와 사랑을 고백한다. 동그란 건 동그란 거고, 사랑은 사랑이지만, 이 시에서 둘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다시 써 볼 수 있다. 고조할머니는 동그랗기에 사랑할 수 있다.

  “나는 나도 공인지 / 살펴보았”지만 알 수 없는 채로 수면 아래서 젖은 숲이 불타는 걸 보다 물풀을 끌고, 덩달아 사람들을 줄줄이 끌고 밖으로 나왔다. 불을 피웠고 여러 사람들과 둘러앉아 젖은 옷을 말렸다. 너와 나는 그래서 친해졌을까? “불알을 팔천 개 달면 우정이 팔천 배 견고해질까”? “아니 / 그럴 리가 없지”. 없는 불알을 만들어 단다고 너와 내가 닮지는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은,

  끝말잇기 놀이에서 “단어를 만드는” “사악한 반칙”을 하고 죽으면 모닥불이 사그라진 곳에 컴컴한 홀이 생기고, 그제야 나는 “내가 공처럼 동그랗”다는 걸 알고, “너란 공들”을 만나게 되어, 애써 불알을 달지 않아도 우리가 같아질 수 있을 때,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들은 서로에게 / 가르쳐” 줘야지. 너와 나를 우리로 만드는 건 불알이 아니라 규칙을 어기고 죽는 일이란 걸. 죽음이야말로 너와 나를 동그랗게 만든다는 걸.



2. 어둠


  언젠가 우리는 극장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너는 나를 모르고 나는 너를 모르는 채. 각자의 손에 각자의 팝콘과 콜라를 들고. 이제 어두운 실내로 들어갈 것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 채. 의자를 찾아서 두리번거리지. 각자의 연인에게 보호받으며. 동공을 크게 열고, 숨을 잠깐 멈추고.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볼 것이다. 우리가 함께 본 적이 있는. 어둠 속에서 사건들은 빛나고. 얼굴의 그늘을 밝히고. 우리가 잊힌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팝콘 한 움큼 쥐려다 서로의 팝콘 통을 잘못 뒤적거리고. 손이 엇갈릴 수도 있겠지. 영화가 뭘 말하고자 했는지 모르는 채. 깊이 없는 어둠으로부터. 너와 나는 혼자 나올 것이다. 두리번거리며, 눈 깜빡이며. 그때 너와 나는 텅 빈 극장의 내부를 보게 된다. 한 손에 빈 콜라병을 들고서

                                            -송승언, 「우리가 극장에서 만난다면」(『철과 오크』, 문학과지성사, 2015.)


  이미 본 영화를 보며 “잊힌 시간들을 생각”한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우리를. 조조영화였을까? 작은 프로젝트 빔을 하얀 벽면에 쐈을까? 여름이었을까 겨울이었을까? 다정하게 붙어 봤을까? 서로에게 조금 질려 떨어져 봤을까? 글쎄 그건 잊힌 시간들을 보낸 너희만 아는 일이다.

  너희만 아는 시간들을 생각하며 서로의 팝콘 통을 뒤진다.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쓰겠다. 너희만 아는 시간들을 생각하기에 서로의 팝콘 통을 뒤진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뒤져 본다.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 단지 전에 함께 본 영화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깊이 없는 어둠”에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내 멋대로 생각하겠다. 어둠에 들어서야 “얼굴의 그늘”은 밝혀지고 잊힌 시간들은 생각나며 서로의 팝콘 통을 뒤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만나는 애인과 함께 극장을 갔지만 나올 때 너희는 혼자다. 애인이 옆에 있더라도 혼자다. 너희는 어둠에 들어섰으니까. 그렇다고 예전의 우리가 다시 시작될 리는 없다. 극장은 텅 비었다. 하지만

  콜라병도 빈다. 네가 내 것을 내가 네 것을 모두 마시는 일이 벌어진다. 뒤늦게라도 우리가 우리의 바닥에 닿는 일이 일어난다.



3. 어쩔 수 없음


  검시관이 시체 수납장을 열자 곰팡이 냄새와 레몬향 방향제 냄새가 함께 풍겼다.

  -홍수에 휩쓸려간 시신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거든요. 물속에서 불어난 시체들은 복원사들도 포기하죠.

  -홍수가 이 동네에서 났습니까?

  -뉴스를 안 보시나보네. 비가 많은 것을 데려갔죠.

  검시관이 수납장 안에 손을 넣어 당기니 수납장 밖으로 하얀 천이 덮인 시신 한 구가 미끄러져나왔다.

  -사람들은 옷을 벗고 춤을 추던데요.

  - 어쩔 수 없는 거죠. 뭐, 다들 어쩔 수 없는 거예요.

(…)

  -혹시 야구 좋아하십니까.

  내가 수납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자 검시관은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투수와 어젯밤에 있었던 야구경기에 대해, 더 나아가 홍수가 났지만 매일 안치실에 나와 시신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이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위해서 오늘 하루 종일 나를 기다린 사람처럼 굴었고, 나는 듣고 싶지 않아 전화를 받는 척 휴대폰을 꺼냈다. 나가기 위해 등을 돌리는데 문득 나에게서 무엇인가 새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차 키, 지갑, 여권, 사진, 약상자. 주머니 속을 뒤져보니 모든 것들이 온전했다. 나는 손을 들어 천천히 얼굴 위를 더듬었다. 턱 끝부터 시작해 입술, 코, 눈두덩이, 귓불까지. 손끝으로 얼굴의 선들을 모두 따라 그어봤다.

  -제 이야기 듣고 계시죠?

  바짓단 밑으로 모래알들이 흘러내렸다. 검시관은 이제 가족사진까지 꺼내 보이며 지난 크리스마스날 덴마크로 떠났던 가족여행에 대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밟아보고 신기해하던 자신의 두 딸의 이름과 그 이름의 뜻, 그리고 그 아이들이 미래에 갖게 될 멋진 남자친구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검시관의 이야기는 멈출 줄 몰랐고, 메이가 장난쳐놓은 내 주머니 속에서는 모래알들이 계속 바짓단 밑으로 새어나갔다. 아주 희미하고 낯선 감촉과 함께. 나는 검시관을 의자에 앉힌 뒤, 나도 그 앞 의자에 앉았다. 그는 더이상 말없이 자신의 손에 들린 가족사진을 바라봤고, 나는 바닥에 굴러가는 모래알들을 지켜봤다. 말이 없으니, 파도에 실린 바닷물이 모래사장 위로 쌓였다가 다시 흘러나가고, 그것들이 또다시 쌓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이 가까워지나보네요.

  내가 그에게 이모의 사진들을 건네주자, 그는 주머니에서 가족사진들을 더 꺼내, 내게 보여줬다. 이미 다 젖어, 불어터졌거나 찢겨나간 사진들. 우리는 서로의 사진들을 돌려봤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가끔은 웃고, 가끔은 작은 한숨을 내어주기도 하다가, 때로는 우리 둘 다 손에 턱을 괸 채, 잠시 입을 다물고는 안치실 창 안으로 밀려오는 해변의 소리를 들었다.

                                                                                                                    -이상우, 「비치」 중.


  검시관이 이런저런 얘기로 커티스에게 말을 걸자 커티스는 “듣고 싶지 않아 전화를 받는 척”한다. 당연하다. 커티스의 성격 상 누군가의 주절거림을 들어 줄 리가 없다. 메이와 함께 하는 동안 보여 준 그의 비아냥거림과 냉소가 그것을 반증한다. 그런 그가 갑자기 검시관과 마주앉아 서로의 사진을 건네며 얘기하고 웃고 한숨 짓는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커티스의 두 행동 사이에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나가기 위해 등을 돌리는데 문득 나에게서 무엇인가 새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커티스의 “바짓단 밑으로 모래알들이 흘러내”렸고, 그후 그는 검시관과 마주앉는다. 그렇다면 모래알들이 새어나가는 느낌 때문에 그는 검시관과 마주앉은 것인데, 모래알들이 무엇이기에 그랬을까.

  큰 홍수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사람들은 축제를 즐긴다. 슬프지 않아서 “옷을 벗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거죠. 뭐, 다들 어쩔 수 없는 거예요.” 하지만 자살기도에 실패한 커티스는 춤추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래알들. 어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오늘 메이와 함께 해수욕을 하고 농담을 하고 간혹이나마 웃었다는 걸 떠올리게 만드는. 슬프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춤을 추는 것도 웃는 것도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그렇게 “희미하고 낯선 감촉”을 주며 모래알들은 “계속 바짓단 밑으로 새어나갔다”.

  메이가 커티스에게 준 건 모래알들이자 어쩔 수 없음이다. 죽지 않는 한, 어쩌면 죽으려 해도 삶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된다. 어쩔 수 없는 삶 속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춤을 추고 웃는다. 그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커티스는 어쩔 수 없음 때문에 냉소와 비아냥을 거두고 검시관과 마주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쩔 수 없음 때문에 너와 내가 만나게 되고, 대화가 시작된다.




성숙한 긍정


노래는 당신의 글이기도 하다. 김정환 시인은 그저 전원시일 뿐인 전원시를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그가 취흥이 도도할 때 자주 꺼내드는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는 <고향의 노래>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 서보라. 고향집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그가 이렇게 노래 부르고 있으면, 그의 읽기 어려운 시 속에 깊이 감추어진 서정성을 새삼스럽게 상기하게 된다.

                                                                                      -황현산, 「젊은 비평가를 위한 잡다한 조언」 중.


  ‘그저 전원시’와 ‘그저 전원시는 아닌 전원시’의 차이는 이것이다. ‘그저 전원시’는 전원시 자신으로 서 있지만, ‘그저 전원시는 아닌 전원시’는 그저 전원시일 뿐인 전원시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토대 위에 서 있다. 전자는 순수하기만 해 순진하지만, 후자는 구정물 위에 가까스로 피는 순수라 성숙하다.

  부정을 충분히 거친 뒤 부정을 부정하고 긍정으로, 순진한 긍정 말고 성숙한 긍정으로 갈 때, 너와 내가 만나는 일이 간신히 가능할 것이다. 죽음과 어둠과 어쩔 수 없음을 거친다면 우리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에 나는 희망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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