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4.30
(벌써 30년 전 00 일보에 실었던 칼럼 중 하나입니다. 우연히 찾은 반가움에 저장을 위해 올립니다. 80년 지리산 노고단에 숨어있던 광주의 친구들을 그리며 쓴 글입니다. 30년간 조금도 늘지 않은 글솜씨도 반성하면서요)
내일이면 다시 오월이다. 오월은 언제나 좋았다. 꼬맹이 때는 소풍 갔다 온 누나가 남겨온 김밥 때문에 좋았고, 초등학교 때는 내가 그 소풍을 가서 좋았고, 중학교 때는 등나무 아래로 풍금을 들고나가 청바지 빵빵한 음악선생님에게서 '봄처녀'를 배워서 좋았다.
그때 나는 2절 가사 중 '꽃다발 가슴에 안고'를 '봄처녀 가슴에 안고'라고 불러버려 선생님을 웃게 했다. 선생님이 웃으면 너무 예뻤다. 수염이 거뭇거뭇하던 고등학교 때야 다들 아는 것 아닌가, 그 시절 오월은 마냥 견딜 수 없었다. 거의 미칠 지경인 학교 뒷산 아카시아 꽃내음에 머리가 돌지 않고 입시지옥을 견뎌낸 것만 해도 기적이다.
그랬다. 우린 오월이면 견딜 수 없는 젊음으로 몸을 떨었다. 오월이 왔는데도 즐겁지 않다면 죄가 되는 양 푸르고 아름다운 그 계절을 욕심껏 누리며 지냈다.
내일이면 다시 오월이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답던 우리의 오월을 빼앗겨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더 이상 '봄처녀'를 부르지 않고, 등나무 그늘 아래 예쁜 음악선생님도 잊혀 갔다. 오월은 이제 부끄러움이 되었다. 젊은 날의 타오르던 욕망으로 떨리던 몸은, 이제 수치스러움과 분노로 떨릴 뿐이며, 꽃향기 대신 슬픔으로 인하여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누가 우리의 아름다운 오월을 빼앗아갔을까? 모른다면 분노는 일되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끄럽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용서'를 말하고 '화합'을 말하기도 한다. 세상에 인정하지 않는 죄를 용서하는 법이 있다면 나도 그렇게 슬며시 용서를 핑계로 달아나겠다. 그러나 오월은 다시 오고 짙붉은 꽃향기는 끝내 비겁했던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