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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영 May 19. 2022

쌓아온 세월은 개발과 공존할 수 없을까

봉명주공

“곧 사라질 그곳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봉명주공을 찾아오기 시작한다”  

1980년대에 지어진 청주 봉명동의 1세대 주공아파트, `봉명주공` 

철마다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나무들, 

놀이터에서 쉬어가는 새들과 골목을 지키는 길 고양이들, 

곳곳에 울려 퍼지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


떠나가는 거주민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봉명주공에서의 추억을 남긴다

우리가 남기고 가는 것은 무엇인가요?

(출처 : 다음영화 movie.daum.net)




텅 비었음이 느껴지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까르르 웃음소리와 함께 누비는 사람들이 있다. 단지 곳곳에 심어진 꽃이며 화초들을 한가득 캐어 가는 사람들. 그 웃음소리가 지나고 나면 건물 2,3층 높이는 족히 될 커다란 버드나무가 보이고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느긋하게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아, 좋구나' 내 뺨에 닿는 바람의 촉감을 상상하며 미소를 짓고 있던 순간! 갑자기 전동톱 소리와 함께 그 커다란 나무가 순식간에 우지끈 쓰러져 버린다. 영화 시작 후 5분도 안되어 세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재개발이 결정된 후, 오랫동안 정을 나누며 살던 이웃들은 하나 둘 짐을 싸고 석별의 정을 나눈다. 이삿짐을 모두 빼고 나니 그제야 드러나는 잃어버렸던 추억들까지 모두 아쉽기만 하다. 생활환경을 정비하고 더 나은 주거 환경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지만, 전국 어디서나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하늘 높이 뻗은 채 단단한 울타리로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드는 아파트들만 늘어나는 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수도권에 비해 현저히 적은 인구를 가진 지역에서조차 너도나도 고층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은 과연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비판하는 주민의 목소리에 나는 너무나도 공감한다. 사람도 짐도 모두 떠난 뒤, 오랜 시간 머물러 있던 작은 마을은 파괴되기 시작한다. 


건물을 부수기 전에 먼저 없애야 하는 것은 단지 곳곳의 커다란 나무들이다. 모두가 떠나 고요한 낡은 아파트 위로 삐죽 솟아나 있던 나무들이 하나둘 쓰러져 건물 사이로 자취를 감추는 광경들은 어느 신파 영화 못지않게 눈물 나는 광경이다. 이렇게 오래된 나무와 식물들을 자르고 갈아엎은 뒤 다시 또 돈을 들여 조경을 만드는 건 얼마나 낭비인가. 영화 처음에 등장한 그 사람들은 그렇게 흙 속으로, 건설 폐기물과 함께 사라질 생명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이 영화가 더 마음에 와닿았던 건 내가 태어난 도시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봉명주공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오래된 주공아파트에 여전히 가족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향집도 요즘 재개발 추진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한다. 불과 몇 년 뒤엔 나 역시 이 영화에 등장한 누군가처럼 이삿짐을 나르며 영원히 사라져 버릴 나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란 생각에 영화 보는 내내 벌써 마음 한 켠이 허전해졌다. 



봉명주공 Land and Housing

김기성 / 83분 / 다큐멘터리 / 한국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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